나에게 보내진 천사
시골에 살아 행복한 의사 이야기
어느 날 우리 동네의원(당시 우리 생협 의원)에 그 사람이 나타났다. 약간의 장애를 보이는 게 뇌혈관질환이 살짝 있었던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접수대에서 여기서는 심전도 검사를 누가 하는지 확인했다. 그리고는 보건복지부에서 실사를 나왔으니 협조해달라고 했다.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뒤져봐야 나올 게 있겠나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정권이 맘에 안 드는 기관을 표적 심사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어쨌든 아무것도 걸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몇 가지가 걸리고 말았다. 심전도 검사는 의사가 직접 해야 하는 것이었다는데 조무사가 해오면 판독을 하곤 했었다. 수련과정에서 파견 나갔던 대학병원의 분원에서도 의사가 하지 않고 다른 직원이 하는 걸 보았기 때문에 의사가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당시 개인의원에서 원장이 하는 곳은 거의 없었을 테니 어딜 가든 그 문제로 잡을 수 있는 걸 알았으리라. 또한 가정간호사와 함께 노인 시설을 방문하여 모든 어르신의 의무기록을 만들고 후에 가정간호사만 방문하여 혈압과 당을 체크해 오면 약을 처방해 주곤 했는데 그것도 불법이었던 것이다. (요즘은 법이 바뀌어 합법이 되었다.)
어쨌든 그 과정에서 그 사람은 악마처럼 느껴졌다. 합리적인 조사나 단속이 아니라 무조건 건수를 올려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노련하게 사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태도에 몹시 상처를 받았다. 그 일로 우리 생협 의원은 3개월 간의 영업정지와 1달 간의 의사면허정지를 당하게 되었다.
남편이 1994년 의사로 의료 협동조합에서 일하게 되자 부부가 한 공간에서 일할 수는 없어 다른 곳에 취직해 일을 하며 의료 협동조합의 연구위원회 활동을 했다. 그러다가 2000년에 따로 개원을 하였고, 2년 후에 의료 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을 이루어 지점의 원장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개인 의원으로 일할 때 환자가 많았고 내가 버는 일부분을 나누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합류를 했었다. 그런데 경영상태가 왠지 자꾸 악화되어가던 중 그런 일을 당하게 되었으니 조합원들께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때처럼 많이 울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2009년 그 일이 있은 이후로 나의 내면에는 큰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나의 것을 조금 양보하여 좋은 일을 하는 의사로 살고 싶었던 화려한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조합원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 전에는 항상 옳은 것을 추구하였기에 옳지 못한 것에 대한 관용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지적질 대마왕’이라는 별칭도 있었다. 그 이후의 나는 스스로 옳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리 옳지 못해도 서로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여유로움이 생긴 것 같다.
3개월간 문을 닫는 동안 의원을 2층에서 1층으로 이전을 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조합원들은 함께 인테리어도 하고 홍보도 하는 등 열심이었다. 원장이 잘못했음에도 함께 다독이며 더 좋은 조합을 만들자 했다. 경영상태도 많이 좋아졌다. 처음 내원을 하는데 들어오면서부터 웃고 들어오는 환자들이 많아졌다. 조합원들의 소개를 받고 온 분들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조합의 주인이 정말 조합원일까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 일 이후로 3동 조합원들은 명실상부한 주인이 되었다. 어디에 가서도 떳떳하게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었다고 자랑한다. 실사를 나왔던 그 사람이 당시엔 악마처럼 보였지만, 나에게 보내진 천사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와 서야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