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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꺼실이 Oct 30. 2020

의사가  할 일이 아니야

시골에 살아 행복한 의사 이야기

안성의료협동조합에는 방문간호사업소가 있다. 방문간호는 가정간호와 달리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비용을 지급받는 것으로 주로 65세 이상의 노인에서 장애가 있어 요양등급을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1회 방문에 본인부담 5천여원 정도면 방문을 받을 수 있어 집에서 나오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아주 유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방문간호사업소가 항상 적자를 면하기가 힘들다. 그 이유는 환자들이 등급에 따라 한 달에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이 한정되어 있고, 그 안에서 요양보호사를 받을 지 방문간호사를 받을 지 복지용품을 구매할 지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요양 보호사가 매일 와야 하는데 방문간호사가 가려면 요양보호사의 방문을 하루 빼야 가능하다. 이럴 때 환자와 보호자의 선택은 간호사보다는 요양보호사이다. 욕창이 생겼거나 혈압, 당뇨약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환자의 기본적인 것, 즉 먹는 것 씻는 것 운동 등을 도와줄 사람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같은 재원에서 요양과 간호가 나눠먹기를 해야하는 시스템으로 수가가 매겨져 있는 것도 문제지만 말이다.

     

 의과대학 시절 학생실습을 할 때 상황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환자에 관해 ‘의학적이지 않은 문제’를 얘기했더니 레지던트 선생님께서 “그건 의사의 일이 아니야”라고 잘라 말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여럿이 함께 일하는 기관에서 분업을 하고 서로 다른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의학적이지 않은 일이 환자에게는 훨씬 더 중요할 때도 있다. 병의 회복에 약보다 수술보다 중요한 일도 있다. ‘돌봄’의 영역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수준이 낮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전문가들에게는 있다.  

     

 담도암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가 치료할 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퇴원을 한 환자가 있었다. 병원에 올 수가 없어서 왕진을 가게 되었다. 방문간호사가 갈 수 있도록 방문간호지시서를 발급해드려야 하기도 했다. 우리 병원을 다니던 분이 아니기에 그 분에 대해서 아는 정보가 하나도 없어 난감하던 중 소견서를 받아왔다고 하길래 반가이 받아들었다.

     

 허나 그 소견서에는 진단명 : Biliary Ca.(담도계 암) 향후계획 : Conservative care(보존치료; 암을 낫게 할 수 없으니 영양공급이나 통증치료 등을 한다는 뜻임) 외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대학병원에서야 수술 및 항암치료를 해서 살릴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문제이지만 이렇게 지역사회로 내려오면 암이 있는 상태에서 살아야 한다. 그동안 식사는 얼마나 가능했는지, 통증은 어느 정도 진통제로 조절해왔는지, 간기능은 얼마나 보존되어 있는지, 복수가 차고 있는 건 아닌지, 변비는 없는지 알아야 현재 단계에서도 환자분이 조금은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가 있는데 난감한 일이었다.

     

 ‘돌봄’을 중요시하고 의료진과 비의료진 사이에 팀워크가 아주 잘되는 분야가 있다. 바로 호스피스. 죽음이 얼마 안남은 환자에게는 얼마 안남은 생애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드리는 것, 가족과의 이별과정을 잘 하게 해주는 것이 통증치료 만큼이나 중요하여 서로 상호존중하며 팀으로 접근한다. 호스피스 교육을 들으며 우리는 얘기했다. “죽을 때나 돼야 이런 대접을 받네.”

 

  여러 가지 여건이 부족할 수는 있다. 그러나 돌봄의 중요성을 인지하면 달라진다. 살림의료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추혜인 원장은 욕창을 치료하러 왕진을 갔다가 보호자가 안계셔 기저귀까지 갈아준 적이 있다고 한다.('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에서)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어떻게든 해결해주려고 하는 자세가 의사로서 중요한 일이고 이런 것이 학생교육에도 반영한다면 조금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그림 출처: <꽃 보고 한 걸음 구름 보고 한 걸음>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그림책미술관시민모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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