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꺼실이 Sep 27. 2020

철갑상어를 북한에 전한 분

시골에 살아 행복한 의사 이야기

2018년 9월, 대한민국 국민의 대부분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남북회담을 성사시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이 방송되고 있었다. 대동강 수산물 식당을 둘러보는 장면이 나온 순간 우리는 탄성을 질렀다. “저거야 저거! 박대희 씨가 가지고 간 거!”

     

 우리를 안성으로 불러들였던 주역인 박대희 씨는 작은 마을 고삼면 가유리 상가에서 청년회를 이끌었던 분이다. 이 분은 YMCA에서 했던 농촌지도자 교육에 참가하고 나서 느낀 바가 있어 제대로 농민이 되어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한다. 부모님은 비전이 없으니 농사를 짓지 말라며 반대하셨고 이를 뿌리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농민이 얼마나 부당한 일을 많이 당하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는지, 배움의 기회가 없어 농사일을 주먹구구로 할 수밖에 없는지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그의 생각은 변치 않았다. 농촌이 소외되고 관공서로부터 탄압받고 있는 것을 함께 공부하고 농민의 권익을 보장받는 일을 하고 싶었다. 새벽에 일어나 본인의 농사일을 다 해놓고 낮에는 마을의 어려운 일을 도왔다. 다른 집에 농기계가 고장 나면 본인의 기계를 끌고 가서 일을 해주곤 했다. 그러면서 가유리 청년회가 만들어졌고 나아가서 안성 농민회까지 조직했다. 안성 농민회가 있었기에 안성의료협동조합을 만드는 게 가능했다. 당시 안성 농민회 회장을 맡았다가 안성 의료 협동조합 초기 이사장이 되신 이 수청 씨도 박대희 씨의 삶에 감동을 받아 농민운동을 하게 되셨다 한다.

     

 그는 이후에 철갑상어를 키우게 되었는데 그 어렵다는 인공부화기술을 홀로 터득하였다. 사람한테 하는 초음파로 철갑상어의 산란 여부를 봐줄 수 있냐고 농민의원에 문의하여 의사들 어안이 벙벙해진 적도 있었다. 그만큼 열정적으로 연구를 하셨던 것 같다. 2008년 당시 대북 사업을 하던 현대 아산에서 제안을 하여 북한에 기술을 전수해 주러 가게 되었다. 대기업에서도 기술을 가진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북한에선 러시아, 중국 등에 기술자를 보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었기에 시골에서 온 왜소한 체구의 농부를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한다. 그러나 이 분이 마침내 인공부화를 성공시켜 새끼 상어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본 순간 주민들은 엄청난 환호를 하였고 북한 당국의 신뢰를 한 몸에 받게 되었다. 박대희 씨는 남북통일이 이루어지려면 민간 차원에서의 신뢰가 중요하다는 생각이어서 당시 시가 1억 5천만 원 상당의 철갑상어 30마리를 무료로 북한으로 가지고 들어가 조건 없이 기술을 전수했다. 이 분의 공로로 북한의 식량난 해결과 외화벌이에 도움이 되었다는 소문이 들린다. 큰 신뢰를 받게 된 이 분은 평양에 갈 때 제 삼국을 거쳐서 가지 않고 육로로 군사 분계선을 건너 다녔다. 북한 간부의 표현에 의하면  군사분계선을 통해 육로로 평양에 온 사람은 첫 번째 정주영 회장 두 번째 노무현 대통령 세 번째 박대희 씨라고 했단다. 뿐만 아니라 가장 많이 건너다 분이다.

     

우리나라가 통일이 된다면 제일 먼저 박대희 씨한테 가서 고맙다고 인사하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