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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꺼실이 Nov 19. 2020

우리 동네 파바로티

시골에 살아 행복한 의사 이야기


주제넘게 성악가에게 노래를 배우고 있다.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좋아했지만 노래를 정말 못했다. 악보를 보면 바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음감을 가졌는데 목소리가 너무 약하고 ‘시’도 안 올라가는 건 평생의 한이었다. 어쩌다 인연이 되어 합창단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노래를 못하는 것이 더욱 답답해져서 지휘자 선생님께 개인 레슨을 받게 되었다. 목이 트이는 데는 1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 발성에 대해 아무리 설명을 듣고 또 들어도 몸으로 그것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제 남이 듣기에는 마찬가지여도 스스로 즐거울 정도는 소리가 난다. 아직 멀었지만 나는 너무 행복하다.


 나에게 노래를 가르쳐준 분은 안성 출신으로 독일로 유학을 가서 공부를 하고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서 활동 중인 분이다. 제 아무리 독일에서 잘 나갔다 해도 한국에 들어와서 발붙이기가 어디 쉽겠는가. 그러느니 내 고향 안성 사람들이 문화를 누릴 수 있게 해보자 마음을 먹은 것 같다. 독일에서 공부할 때 평등하고도 자유롭게 향유하는 문화가 참 좋았다 한다. 누구나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편한 복장으로 음악회를 가서 감상한다. 청소하는 분이든, 대학교수든, 의사든 함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 것을 안성에서도 실현해보고 싶어 금광면 시골마을 부모님이 사시는 집에서 ‘이룸’이라는 음악카페를 열고 한 달에 한 번씩 음악회를 연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 여행을 가면 맘먹고 갔던 음악회, 바로 코앞에서 쩌렁쩌렁 연주하는 것을 듣는 감격을 이 지방도시 안성, 그것도 시골 마을 금광면에서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서울에서 하는 음악회는 비싼 표를 사 가지고 들어가도 연주하는 사람은 저 멀리 있지 않았던가.


 이 분은 자신의 노래로 사람들이 위로를 받을 수만 있다면 어디든, 누구 앞에서든 노래를 부른다. 까페에 노래가 필요한 사람이 찾아오면 서슴없이 노래를 불러준다. 시설에 계신 노인들을 위해 실버합창단을 모시고 가서 함께 노래를 부른다. 사람들이 ‘참 먹고 살기 힘든가 보네’하기도 한다. 하긴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성악가는 아무 데서나 노래 안하지 않던가. 자신이 노래로 위로를 얻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그것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인 거다.

 이 분이 안성 같은 시골에서 태어나지 않았어도, 대도시에서 활동하게 되었어도 이런 모습일까 생각해보곤 한다. 안성의 산천, 그리고 카페에서 보이는 들판위의 노을, 위안을 주고픈 사람이 더 많이 보이는 시골이 아니었어도 이런 활동을 할 수 있었을까. 노래는 어원이 ‘사랑’이라는데 대도시라면 노래로 경쟁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이런 분한테 노래를 배우는 나는 전생에 복을 많이 지었을 거라 생각한다. 단 하나 잘 한 게 있다면 안성에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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