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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꺼실이 Apr 17. 2021

코로나로 닫힌 마을회관 때문에

시골에 살아 행복한 의사 이야기

금광면 한운리 상동마을에서 2006년부터 6년간 안성 의료 협동조합의 이사를 지내시던 허은희 전 이사님이 왕진을 요청했다. 30가구 정도 되는 마을의 이장을 10여 년째 맡고 있는 분이기도 하다. 30년 이상 한 마을에 지내던 어르신이 치매에 걸려 요양보호사로 돌봐드리고 있단다. 최근 우울증 증상을 보여 의사의 진료를 필요로 했다.

치매가 걸린 어르신은 자녀분이 셋 있으나 다 떠나 도시에 있고 혼자 사신다. 아드님이 옆집에 사는 허은희 이장님한테 돌봄을 부탁드렸는데 마침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어 재가요양 서비스로 하기로 했다. 허은희 이장님은 아침 7시에서 10시까지 할머니를 돌봐드리고 오지만 옆집이라 수시로 오시기도 한다. 하루는 아침에 문을 안 열어줘서 아들한테 연락해 열쇠를 찾아 겨우 들어가 보니 전날 밤송이를 따다가 넘어져서 머리를 다친 채로 누워계신 적이 있었다. 그 후로는 직접 열쇠를 가지고 다니면서 열고 들어가고 있다. 자식들이 화상 통화하려고 스마트 폰을 사드렸는데 전화받는 법을 익힐 수가 없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어르신은 다니던 병원에서 항우울제를 시작한 상태다. 방문간호사의 말을 듣고 아드님이 다녀오셨다. 할머니는 “아이들이 다 나가서 죽고 싶다”라고 하시곤 했다. 혼자 살고 계시지만 마을 회관에 가서 지내실 때는 치매가 있어도 잘 지내셨는데 코로나로 인해 집에만 계시니 우울증까지 생긴 것이다. 증상이 들쑥날쑥하긴 하지만 오늘은 마을 사람들이 여럿 다녀가서 그런지 기분이 많이 좋아진 상태다. 주변에 사람들만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약을 단기간만 사용해도 될 듯했다.


안성 곳곳에 주간보호센터가 많이 생기고 있지만 허은희 이장님은 가장 좋은 주간보호센터는 마을 회관이라고 역설을 한다. 이곳에는 수십 년을 이웃으로 살아 서로의 환경과 가족까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같이 밥을 먹는 곳이다. 여기서는 마을에서 같이 지내던 익숙한 사람이 돌보아 드릴 수 있다. 자식들도 들어주지 않는 나의 말을 다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조금 실수를 해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같이 있다. 공동의 놀잇감이 있고 같은 관심거리가 있으며 안전하여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위의 치매 어르신도 코로나로 인해 마을회관이 닫히지만 않았으면 우울증까지 걸리지 않고 잘 지내셨을 것이었다.

10시에 벌써 일을 끝낸 허은희 이장님은 마을 일로 바쁘다. 마을은 38가구인데 그중 7가구가 어르신 혼자 사신다. 오늘은 작년에 수해를 입은 마을 농로 포장과 배수로 공사를 하러 와서 현장에 안내를 해주었다. 그리고 나니 긴급지원이 필요한 집에 맞춤형 급식팀을 모시고 가서 상담했다. 마을에 토지개량제인 비산질 비료가 도착해서 마을회관 앞에 내려놓도록 했다. 마을에 이 분의 손길이 안 미치는 곳이 없는 듯하다.

허은희 이장님은 안성 출신이지만 서울로 이사를 가서 학교를 다니고 우연히 안성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고 살고 있었다. 시어머니가 몸이 불편하시게 되자 막내며느리임에도 불구하고 시댁인 금광면 상동마을에 들어가 살기로 했다 한다. 워낙 인간관계도 좋고 일처리를 잘하니 여기저기 많은 일을 맡게 되었다. 아이들 학교 자모회 총무부터 시작해 농협 여성산악회 총무 및 회장, 농업기술센터의 생활개선회, 농촌지도자회의 회장, 의용소방대 대장, 복지관 주방 봉사, 사회복지협의회에서 하는 꾸러미 배달 등 지역 사회에서 많은 봉사를 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옆집 치매 할머니를 돌보는 것은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분이기 때문이다. 마을 공동체가 살아있고 이렇게 이웃을 돌보는 분이 있으면 정부에서도 큰돈을 투자하지 않아도 건강한 노후가 보장되는 마을이 가능하다.

요즘 들어 “내가 복이 많아 여기 살았지”하는 생각을 한단다. “서울에 살았으면 ‘나’만 위해 살았을 것이고 아이들에게도 너만 위해 살라고 했을 것 같다. 아이들에 대한 집착도 많이 하였을 것 같다. 어울려 사는 게 제일 잘 사는 거 아닌가. 아이들 교육엔 신경을 안 쓰고 엄마가 다른 사람들 도우며 살아가는 거 보면서 배우기를 바랐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정말 행복하다며 활짝 웃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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