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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슬 Dec 14. 2021

[아내일기] #2. 든든한 남편에게 의지하기

혼자서도 씩씩하게 해왔지만, 더욱더 단단한 나를 위해 의지하기 

결혼 후에 "여보"를 부르는 일이 많아졌다.  골똘히 딴 생각을 하다가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여보여보" 하고 부르며 신나서 얘기하기도 하고, 문득 걱정이나 고민이 생겨버리는 날에는 하루 종일 "여보여보"부터 부르고만다. 어느날은 문서 작업을 하다가 기능이 생각이 안나서 다급하게 여보~ 하고 불렀는데, 갑자기 그 방법이 생각나서 "아니야~"라고 거듭했다. 


이게 몇 번 반복되자 남편이 "여보 왜 나 자꾸 부르고 아니야~ 라고 해?"하고 묻고는 입을 삐쭉거린다. 


그런 그를 보고 갑자기 풉! 웃음이 났다. 방금도 무슨 말을 하려다가 생각이 안나서 답답한 참이었는데, 남편 얼굴을 보자마자 아! 하고 생각나버렸다. 또 풉 웃고 아니야~라고 하자 


잔뜩 삐죽한 얼굴로 "아 왜그래!!"한다. 


이 상황이 계속 거듭되면서 생각구름이 큰 나는 또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혼자 자취하고, 씩씩하게 서울 생활만 7년여 간을 했는데, 남편 없이 오랫동안 내 일을 잘 해왔는데 이상하게 결혼을 하고나서부터 스스로하기 보다는 남편의 의견을 묻거나, 내 선택이 가장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한번 더 남편에게 확인는 버릇이 생겼다. 그렇게 왜 그럴까 묵묵히 생각하면서 과거의 일들을 따라가다보니 이럴만한 이유들이 있었고, 내가 그만큼 남편에게 의지할 수 있는 힘이 많이 생겼구나 싶었다.


결혼식 이전이었지만 신혼집에 먼저 입주했던 우리, 남편이 낮잠을 자겠다고 잠깐 안방에 있는 동안 나는 큰 야심을 품은 채 가구를 옮기고 있었다. 혼자 자취경력 몇년차인가, 무거운 가구는 아래 수건을 깔아서 질질 끌면서 옮기고 가볍고 잔잔바리 집들은 보작에 훌쩍 싸서 하면되지 등등 나만의 전략을 세우면서 말이다. 그렇게 혼자 열심히 구상하며 이것저것 옮기고 있는데 남편이 안방문을 열고 나왔다. 


"!!!!"


내 모습을 보고 눈이 동그랗게 떠진 남편은 나에게 이걸 왜 혼자하냐고 잔뜩 썽을 냈다. 나는 혼자해왔고, 할 수 있고, 아무 문제 없었다. 굳이 내가 하고싶어서 벌인 일을 남편에게 굳이 같이하자고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얘기하니, 할 수 있고 쉬운일이어도 같이 하자고 얘기해줬으면 좋겠다는게 남편 의견이었다. 혹시 내가 혼자하다가 무슨 일이라도 나면, 혼자 안방에서 낮잠 잔 자책이 얼마나 들겠냐는거다. 그리고 다치기라도 하게 되면 본인이 미안하니 앞으로는 이러지 말란거다. 

한번은 혼자 싱크대 상칸에 무언갈 넣어보겠다고 끙끙 넣다가 그릇을 깬 일이 있었다. 이때도 남편이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나한테 화를 낸건 아니지만 같은 얘기를 했다.


그런 저런 일들을 겪다보니 내가 할 수 있어도, 쉬운 일이어도 같이 해줄 것을 물어보고 나의 계획을 말한 후에 괜찮다면 나 혼자 하겠다고 얘기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럼에도 물론 지금도 항상 남편은 직접 운전해서 8개월 째 재활운동센터에 함께 가준다. 


이것의 부작용은 남편을 먼저 부르고 생각이 늦다는 것이다. 우습게도 말이다. 그래서 남편을 먼저 일단 부르고 나서 남편이 오거나 생각해줄때까지 기다리다보면 고민하던 것들이 해결이 된다. 단순한 컴퓨터 문서작업에서도 가끔은 알고 있던 방법을 잊고 있을 때 슈퍼맨 부르듯 "여보"를 부르게 되지만, 이미 습관처럼 알고 있는 기능이나 방법들이 확하고 강하게 떠오른다. 


사실 순서같은 건 상관없다. 남편은 내가 아내로써 남편에게 의지해주길 바라고, 지금까지 내가 혼자 해왔던 일이어도 같이 해나가는 것에 대한 중요성과 그 시너지에 대해서 늘상 얘기해주곤 한다. 여기에서 이야기구름이 피기 시작하면 내가 업무 중에 혼자 처리하려고 했던 일들이 얼마나 얄궂은 생각이었는지 깨닫기도 한다. 남편은 항상 내게 말한다. 혼자 일을 하거나 혼자 해결하려고 하는건 편하지만 더 좋은 생각이나 빠른 방법이 아닐 수 있다고. 


오늘도 남편은 나를 다독인다. 항상 열정적이지 않아도 된다고. 매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금 늦어도 되고 잠시 쉬어가도 좋다고. 함께하고 있으니깐. 


결혼 후 마주보는 것보다 나란히 바라보는 일이 많아진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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