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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슬 Dec 23. 2021

[아내일기]#3. 도시락

내가  해줄 수 있는 것. 

요즘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남편의 도시락을 준비한다. 코로나가 심각해지기도 했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면서도 감염병 옮을까 조마조마해하며 즐거운 점심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는 것 같아 내가 자처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그 날들이 쌓이고, 어느 날은 실컷 퇴근 후 게으름을 누리다가 마지못해 일어나 주말에 해놓은 반찬을 반찬통에 우겨넣을 때가 생겨버렸다. 나도 출근이 바쁜 날이면 겨우겨우 피곤한채로 도시락 반찬통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다음 날 국도 없이 재운 김만 챙겨 차가운 반찬과 보온밥통에 밥을 넣어줄 때가 있다. 넣으면서도 이대로 맛있게 먹어줄까? 의심하면서도 말이다. 


말로는 다같이 나가서 우르르 몰려가 식사하는 게 귀찮다고 하는데 사실 먹을 거 넘치는 강남역에서 먹고픈거 시켜 먹는 직원들도 많아 언제든 먹고픈걸 먹고싶을거다. 그럼에도 지나가는 말에 대뜸 싸준다고 한 아내의 마음에 "고마워~"하면서 다음날이면 피곤해하는 내게 도시락 "안싸도돼~" 라고 했다가 "아냐~ 그래도 집밥 먹는 것 같아서 좋아~" 라고 한다. 선뜻 내민 나의 선의가 혹시라도 다칠까봐 배려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배려심 많은 남편은 이러나 저러나 마음이 복잡해보일때가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따라 참으로 고단한 몸으로 도시락을 쌌다. 그나마도 해놓은 반찬이 다 떨어져가서 탈탈 털어 겨우 도시락 칸을 채웠다. 굳이 생색을 내지도 못했던 그 날의 도시락을 남편은 출근하는 지하철 역에서 소중히 끌어안고 있었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마주하며 출근 내내 맘이 편치 않았다. 남편 도시락에 온갖 내 피곤함을 묻어둔것 같아서 미안했다. 


그렇게 그 날의 오전은 잠시 잊었다. 정신없이 회사일을 쳐내며 동료들과 맛있는 외식을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 그런 사이 문득 마음 그득히 아침에 싸 보낸 도시락이 생각났다. 그 순간, 그런 나를 눈치챈건지 남편에게서 톡이 왔다.  


" 여보, 밥 먹었어? 바쁘지~ 오늘도 도시락 고마워 ~ 아주 맛있게 먹었어. 늘 고마워"

내가 도시락에 피곤함을 우겨넣은 자책감에 무거운 마음을 내내 안고 있을 때면어찌 알고 남편은 자상한 문자 하나로 피곤하지만, 맛있는 도시락을 싸준 아내로 만들어줬다. 바쁘디 바쁜 강남 한복판 식당 안에서 뜨끈한 불고기 백반이 돌솥에 담겨 눈치없이 맛있는 냄새를 풍긴다. 다채롭게 차려지는 반찬을 보며 눈물이 울컥했다. 결혼 후 눈물이 많아진걸까. 


 이 이후로는 너무 피곤하고 미안할 것 같을 땐 솔직히 말하곤 한다.

"내일 도시락 못싸겠어" 


그럼 다음날 지하철 기다리는 남편이 검은 눈동자를 동동 구르며 설레이는 표정으로 "오늘은 뭐먹지?" 라 한다. 싸줘도 그만, 안싸줘도 그만. 남편 도시락을 싸는게 내 일이 아니라고 꼭 말을 해준다. 싸주면 고맙고, 안싸주면 즐거운 외식 날이라며 내편이 웃는다. 평소 말없는 남편이 일부러 생각을 말하는 그 마음이 무언지 안다. 도시락 싸주지 못해 미안하지 말란 얘기다. 동료들과 맛있는 밥을 시켜 식사를 거르지 않을테니...  걱정 말라한다. 그런 남편을 보며 내 마음에서 내내 애쓴 웃음이 난다. 남편의 이런 자상함이 좋다. 


고마워, 맛있게 먹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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