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젓가락만

by 정안

나는 라면을 못 끓인다. 남편은 나에게 라면을 못 끓이는 것도 재주라며 놀리곤 한다. 손도 느리고, 몸에 좋고 맛도 좋으라고 양파며 파, 해물, 떡, 어묵, 온갖 것들을 넣곤 한다. 정작 먹는 이들은 만족스러워 하지 않는다. 나는 라면을 못 끓이지만 남편은 라면을 좋아한다. 열살 아들은, 바닷일 하시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바닷가에서 갓 잡은 새우와 꽃게를 넣어 끓인 해물라면을 맛보곤 라면에 빠졌다. 많이 먹을 땐 일주일에 일곱번 라면을 주문한다.


초등학생 시절, 두살 터울 동생과 나는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일하러 가신 엄마의 일터에 가끔 전화를 했다. 당시만 해도 휴대폰이 대중화 되어 있지 않았다. 부끄럼 많은 동생과 나는 웬만하면 엄마의 일터에 전화를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럼에도 전화를 하는 일은, 부끄럼 많은 두 어린 소녀를 전화기 앞에서 한참이나 침을 꼴깍 꼴깍 삼키게 만드는 일이었다.

눈빛으로 서로에게 미루고 미뤘다. 동생과 둘이 있으면 그래도 언니라고, 내가 수화기를 들곤했다.

나_"안녕하세요? OOO씨 딸인데요, 저희 엄마 계시면 좀 바꿔주시겠어요?"

엄마 직장동료_"그래, 바꿔줄게"

엄마_"응~ 무슨일이니?"

나_"엄마. 라면 먹어도 돼요?"

엄마_"그것 때문에 전화했니? 그래. 가스불 조심하고. 그런거 안물어보고 먹어도 된다니까."


묻지 말고 먹어도 된다는데, 동생과 나는 항상 일하고 계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잘모르겠다.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었나? 엄마 언제오시나 궁금해서 그런것 같기도 하고, 엄마에게 퇴근하고 빨리 집에 오시라는 압박같은 걸 한건가 싶기도 하다.(엄마는 평생 일을 하셨다. 환갑을 훌쩍 넘기신 지금도.)


라면은 주로 안성탕면을 먹었다. 끓여 먹을 때도 맛있고, 생라면으로 부숴 먹을 때도 가장 입에 맞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생과 나는 1명당 라면을 하나씩 먹었다. 라면 2개 가득 복작복작대는 냄비를 조심조심 앉은뱅이 상에 내려, 둘이서 실컷 먹으며 날아라 슈퍼보드나 세계 명작만화 같은 걸 봤었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우리는 라면 2개용 냄비는 졸업하고 3~4개가 들어가는 냄비에 입문했다. 동생은 '먹는게 남는거'라며, '먹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생이 된 동생은 정말 먹는 것을 좋아했고 잘 먹었다. 라면 2개, 씬피자 라지 1판은 혼자서 아무렇지 않게 먹었다. 생일에는 빵으로 된 케잌대신, 친구들이 김밥10줄을 케잌처럼 쌓아서 축하를 해줬었다. 많이 먹기도 했지만, 모든 음식을 가장 맛있는 상태일 때 맛을 즐기며 먹었다.


내가 대학생이 되고 동생은 여고생이던 어느 겨울. 각자 학교생활하느라 해가 있을 때 집에서 얼굴보는게 오랜만이었다.


"언니, 라면 먹을까?"

"그래, 좋지. 2개? 3개?"

"음. 4개 먹고 싶지만. 2개만 먹자. 하하하.

내가 끓일게. 언니가 끓이면 맛없어. 양파를 너무 많이 넣어. 맛없어."


맞다. 나는 라면을 못끓인다. 어디에선가 배우 김혜수가 1년에 몇 번만 라면을 먹는데, 그것도 기름기를 줄이려고 양파를 넣고 먹는다는 것을 너무 인상적으로 본 모양이다.


라면이 다 끓어가자 동생이 다급하게 외쳤다.


"베란다* 문 활짝열고, 거기에 상펴줘."

"엥? 베란다? 창문, 활짝?"


한 겨울, 다 끓인 라면을 베란다에서 창문 활짝열고 빨간색 빵빵한 패딩을 챙겨입은 채 작은 상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먹는다.


"라면은 추운데서 후후 불면서 먹어야 제맛이지"


베란다 창문을 열고, 김이 사정없이 올라오는 라면을 냄비째 두고 설레는 표정으로 신나게 젓가락질을 하던 동생의 표정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어찌나 맛있게 멋던지. 혼자서 라면2개쯤은 게눈감추듯 먹는 여고생이었을 때라,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던 나는 한젓가락 먹고 동생의 먹방을 감상했다.


항상 둘이 같이 먹으면 언제나 그렇긴 했다. 동생은 실컷 먹고 나는 안먹어도 그만이었다. 나는 바게트 껍질과 식빵의 자투리를 먹고 동생을 부드러운 속을 먹는다. 내가 딱딱한 겉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속이나 겉이나 허기를 달래면 그만이므로 상관이 없고, 동생은 부드러운 속이 아니면 먹지 않았다. 나는 흰우유나 초코우유든 상관이 없었지만, 동생은 바나나 우유는 먹지만 흰우유나 초코우유는 먹지 않았다. 나는 김밥에 오이가 들어있어도 먹지만, 동생은 오이를 빼낸다. 나는 동생이 빼낸 오이를 먹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둘이 식성이 겹치지 않아서 넉넉하지 않은 어린시절에도 먹을 것으로 다툴일은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여러가지 맛이 세트로 되어 있는 구성을 살까말까 망설여질때, 우리는 서로 나누어 가진다. 플레인은 동생이, 딸기맛 블루베리맛은 내가. 신나게 먹는 동생과 먹으면 나는 한젓가락만 먹어도 딱 좋다.


얼마 전 청소를 하다 유통기한이 다되어 가는 신라면 하나를 찾았다. 동생의 베란다 라면이 떠올라 베란다 창문을 열고 상을 폈다. 어머님께서 담아주신 잘 익은 부추김치, 엄마가 얼마전에 보내주신 배추김치. 종류별로 조금씩 꺼내 상에 놨다. 혼자 먹지만 이왕이면 접시에 예쁘게 담아서.


라면을 담아낼 면기도 꺼내고 대파도 썰어 뒀다. 달걀을 넣나 마나? 뒷면의 조리예에 '기호에 따라 달걀을 추가하여 먹으면 좋습니다'같은 문구는 보이지 않았다. 마침 달걀이 하나밖에 없기도 했고. 그건 아들 저녁반찬으로 남겨두기로 하고, 라면을 끓였다.


라면이 식을까봐 냄비째 들고 발코니로 가서 면기에 옮겼다. 열린 창문에서 옅은 바람이 왔다 갔다 하는게 느껴졌다. 후후 불어가며 한입 먹었다. 김치도 얹어가며 한 그릇을 비웠다. 생각보다 맛있지 않았다. 내가 라면을 잘 못끓이긴 하지만, 뭔가 빠진게 있진 않을까. '한 젓가락만'하며 '아, 맛있다'하며 함께 먹을 사람이 빠져서 맛이 없는 건 아닐까.


지금 내 주방엔 라면 2개가 맥시멈인 냄비만 있다. 아들이 커가면서 라면 먹는 실력이 늘고 있다. 얼마전에 남편과 아들 둘다 저녁식사로 라면을 먹는데, 2개로 모자라서 냄비 2개로 라면 3개를 끓인적이 있다. 냄비 2개에 끓여낸 라면 3개를 다 먹고도 모자란 듯한 부자를 보니, 라면 3~4개가 한번에 들어가는 냄비를 곧 장만해야겠다.



발코니에서 창문을 열고 그냥 한 젓가락 먹어본다.
엄마 김장김치랑도 먹어보고, 시어머니표 잘익은 파김치랑도 먹어본다. 그런데 뭔가 아쉽다.



* 아파트에 거실의 연장으로 만들어진 공간으로 '발코니'가 맞는 표현이라지만, 어쩐지 말 맛이 나지 않아 '베란다'로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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