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달빛

by 정안

나는 밤이 좋다. 고요한 어둠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어, 밤잠을 곧잘 설친다. 혼자 살아갈 순 없는 세상이기에 낮동안 사람들 속에서 사회인의 옷을 입고 하루를 보내는 만큼, 밤에는 나에게만 신경 쓰고 싶을 때가 있다. 낮의 일들이 내 머릿속을 떠다니며 나의 아름다운 밤공기를 헤치려 해도 다 제쳐놓고 나만을 위한 밤을 보내고 싶다.


달빛만으로도 충분히 밝은 밤이면 달빛이 좋아서,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밤이면 캄캄한 게 좋아서, 불을 켜지 않은 채 손에 잡히는 대로 바디로션을 챙겨 들고 앉곤 한다. 뚜껑을 열면 무향에 가까운 코튼 향이 아주 살짝 퍼지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하얗고 부드러운 로션을 양손에 비벼 왼쪽 발바닥과 새끼발가락을 주물렀다. 원래도 잘 붓는 내 몸의 남쪽 끝에서 조용히 부었다 가라앉았다 하는 새끼발가락이 저릿저릿한 시그널을 자주 보낸다. 응답이 늦어 미안. 발끝을 바라보며 왼쪽 새끼발가락부터 엄지발가락까지 하나하나를 주물렀다. 발등뼈 사이사이를 지나 발뒤꿈치 위쪽의 움푹 들어간 곳을 꾹꾹 눌러주고 종아리까지 올라왔을 땐 손에 번들거림이 사라져 코튼향 로션을 다시 소환했다. 왼쪽다리에서 오른쪽 발과 다리로 넘어가 다시 두어 번 코튼향을 새로이 풍기며 주물렀다. 향은 좋았고 다리는 아릿아릿했다. 무릎을 세워 다리와 발을 쓰다듬는데 어쩐지 코끝이 찡해졌다.(사실 눈물이 조금 흘렀다)


빵빵하게 자주 붓기는 하지만 내 몸이 큰 탈 나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여태 몰라준 것 같아서, 부어서 보기에 밉다는 구박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것 같다.


10여 년 간 내 몸은 주로 나에게 부정당하거나 구박을 받거나 채근을 당했다.


애 낳고 나면.

모유수유 하고 나면.

애가 안아주지 않아도 될 만큼 크고 나면.

그러고 나면

'예전처럼 돌아갈 거야. 지금 몸은 원래의 내 몸이 아니잖아. 그럼, 그렇고 말고.'

'애는 나왔는데, 몸무게는 그대로라니. 말이 되니? 모유수유하면 부기는 빠지는 거겠지?'

'수유 끝. 어라, 몸이 더 불었잖아? 일단 진정하고. 애가 더 크고, 내가 안고 다닐 일이 줄어들면 힘쓸 일도 줄어드니까 좀 나아지겠지. 나아질 거야.'

'이제 아이를 안고 다닐 일도 없는데, 내 몸은 너무 많이 변했어.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이런 생각들을 하던 여러 해 전 여름, 시골 친정에 갔다 말벌에 쏘인 적이 있다. 벌에 쏘인 허벅지는 3년 반 동안 손바닥 만하게 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그 흔적은 누군가가 꼭 봐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자랑할 것도, 숨길 것도 아니었지만. 그 흔적이 말끔하게 사라지는 데 걸린 시간 동안, 나 말고는 그 흔적을 본 이가 없다. 그 기간 동안 외로웠던 것도 같고, 괜히 사람들을 미워했던 것도 같고. 무엇보다 내가 내 몸을 좋아하지 않았다. 몸의 변화와 함께 자존감은 낮아져만 갔다. 그렇게 돌보지 않게 된 내 몸과 마음은 지금까지 꾸준히 주인인 나에게 따스한 관심을 받는 일이 드물었다.


그러다 문득 조용한 밤에 발을 주무르다 보니 내 몸에게 새삼 미안한 마음이 인 것이다.


'고생 많았어'


느닷없긴 하지만 발바닥에 로션을 바르다가 시작된 나와의 대화가 조금 더 이어졌다.


그동안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해.


오랫동안 고생만 시키고 예뻐해 주지 않아 미안. 아프지 않고 이만큼 잘 버텨줬다는 거 이제 조금 알겠어.


엄마이기 때문에 나무 타기 하듯 내 다리부터 목까지 휘감고 천장까지 올라가는 아이를 버티고 서있어야 할 체력을 무조건 가졌어야 한 건 아니야. 내가 그러고 싶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안아주고, 온갖 장바구니를 이고 지고 다니다 보니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만큼, 식구들 챙기며 생활하는 만큼. 내 근육과 살들도 차곡차곡 쌓였겠지.


그게 어떤 이의 눈엔 아름답거나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런 내 몸 덕분에 버텨낸 시간들이 있어. 온전히 내가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시간들.


늘 하는 말이지만, 나만 유별나게 특별히 힘들다, 그런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아. 누구나 힘들기도 하고, 누구나에 포함되는 나 또한 그런 시간들이 있음을 받아들인다는 뜻이야.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을 하며 보내는 날들 있잖아. 한 번씩은 '고생했어. 고생하고 있어.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얼마 전에 연필꽂이에서 오래된 문구용 커터칼 하나를 찾았어. 나는 물건의 쓰임이 다할 때까지 사용하는 편이라 골동품 같은 물건이 좀 있는데, 이 칼은 중학생 때쯤 사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25년쯤 된 거지. 초록이었던 원래 색은 거의 잃었고 군데군데 불긋하게 녹도 슬었고. 칼날이 나왔다 들어갔다가 스무스하게 되는지 궁금한 건지 어쩐 건지 아무튼 요란한 소리가 나는 줄 알면서도 드르륵드르륵 올렸다 내려봤어.


칼날을 밀어 올리자 칼날이 앞으로 나가고 난 빈자리에 눈이 간 건 아주 많이 오랜만이었나 봐. 그 안에 깨알보다 작은 글자가 빼곡히 적혀 있더라고.

수업시간에 공부는 안하고 적어둔 것 같은 깨알글자

Only the person who has faith in himself is able to be faithful to others.

- Erich Fromm (에릭 프롬 / 미국 정신분석학자)


왜 그렇게 굳이 칼집 속에 깨알같이 적어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글씨가 분명했어. 0.3mm 정도 되는 샤프로 썼을 것 같은. 나는 아주 작고 빼곡하게 쓰는 걸 좋아하는데, 내가 봐도 숨 막히도록 작게 썼더라고. 지금보다 눈도 밝고, 집중력도 좋고, 열정이 있을 때 쓴걸 거야. 중학생 때? 고등학생 때? 스무 살이 넘어서?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마음이 한 일이란 건 알겠더라고. 내가 기억하는 유년시절의 나는 나를 믿지 못했거든.


어딘가 변하지 않는 듬직한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으면서도 타인은 물론 나도 믿지 않았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경험이 쌓이며 나를 조금씩 믿기 시작한 것 같아. 그런 시간이 15년 정도 쌓였을 때쯤. 어떤 일이든 잘 하든 못하든, 내가 나를 버리진 않겠다고 자신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말이야.


그런 얼마간의 시간을 보냈던 나인데, 지금의 나는 나를 믿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어. 슬프게도.

나를 믿지 못하고 있는 나를 느끼며, 다시 나를 믿고 싶어 하는 중인 것 같아.

'난 나를 믿지 못해'와 '나를 믿어'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나를 믿고 싶어'.


내 마음의 바닥 어딘가든, 구석 어디쯤이든. 말라붙은 딱지처럼 앉아 있을 '나에 대한 믿음'을 건져 올리고 싶어. '믿어. 난 날 믿어.'라는 마음이 생각만이 아닌 실체가 되었으면 좋겠어. 가능하다면 '내 믿음'이라는 약을 만들어 먹거나, 연고로 만들어서 바르거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 (내가 요즘 알레르기로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이 몇 가지 있어서 인지 이런 생각까지 뻗어갔네)


내 발과 다리를 주무르다 보니, 내가 내 몸을 좋아하지 않고, 낮아진 자존감을 그대로 방치한 채 나를 믿지 못하는 마음으로 어떤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느꼈어.


무릎을 세워 앉았던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나, 불 꺼진 현관의 전신거울 앞으로 걸어갔어. 불이 켜졌고 나와 마주했지.


울룩불룩한 몸, 푸석한 머리, 잡티 가득한 피부. 좀 전에 나를 예뻐해 주기로 한 마음은 어디 간 건지. 또 못난 구석만 쏟아지게 많이 보이고. 가만히 있다보니 불이 꺼졌어. 잠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그렇게 가만히 계속 서있으니, 그냥 내가 보였어. 그냥 내가.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렸어. 켜진 불과 함께 다시 나랑 눈을 마주쳤지. 분명 군살도, 잡티도 늘거고 머리칼은 더 푸석해질 거야. 그래도 좀 띄엄띄엄 보면서 구박은 적당히, 애정은 좀만 더 부탁해. 그러다보면 나에 대한 믿음이란 것도 다시 조금씩 살이찌지 않을까. 밤은 살찌우기 좋은 시간이니까. 달빛은 충분히 달콤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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