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는 두 딸이 사는 도시와 2~3시간 거리에 떨어진 작은 마을에 살고 계신다. 언제나 딸들과 손주들이 놀러 오기를 기다리신다. 가겠다는 연락을 드리면 집 안팎을 쓸고 닦고, 음식 장만하느라 바쁘시다. 바닷일만 해도 힘드시니 그냥 계시라 해도 안된다.
'너희 먹일 밥 하는 게 뭐 힘들다고. 난 너희들 키우면서 한 번도 힘든 적 없다. 다 좋았지.'
부모님은 30여 년의 도시생활을 접으시고 시골 고향집으로 가셨고, 갓 스무 살을 넘긴 동생과 나는, 도시의 작은 골목길 월세방에 남아 씩씩한 자매 생활을 이어갔다. 알바와 학업을 병행하다 일에 파묻혀 살았다. 수당 없는 야근과 주말근무를 하며 2,30대를 보내며,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를 돌보며 일을 하는 것이 쉽진 않겠지만 어떻게든 이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중간관리자로서 할 일은 많았고 대체인력을 구하기도 애매했다. 주말부부라 아이케어는 오롯이 나의 몫이 되었고, 결국 일과 가정 둘 중 하나만 선택하게 되었다.
가정을 선택한 나는, 일을 그만두고 나서 아이와 함께 계속 시간을 보내며 낮 동안 '일'말고도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됐다. 가끔은 아이가 나를 이나마라도 균형 잡힌 사람으로 살게 하기 위해 나에게 온 것도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거창 할 것 없이, 아이를 키울 때는 밥때 되면 밥 먹고, 해가 뜨면 놀고, 해가 지면 자야 한다. 일에 빠져 살 때는 밥때에 밥을 먹지 않았고, 해가 떠도 일만 했고, 해가 지고 다시 뜰 때까지 일을 했다. 결국 아이가 생기고 나서야, 밥때에 밥 챙겨 먹고 낮에 놀고 밤에는 자게 됐다.
아이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내게 되었지만, 일을 하지 않는 나 스스로가 능력 없어 보이기도 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 낳고 기르는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내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일하는데 다 쏟아붓고도 만족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이와 함께 손잡고 한적한 공원에서 노을이 지는 풍경을 배경으로 엄마 오리와 아기 오리가 헤엄치는 풍경을 볼 수 있는 날이 거의 없었을지도 모르고.
그러다가도 어떤 날엔, '나'는 언제나 자신을 후순위로 두고 제대로 챙기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게 살아서 '지금'의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라는 것이 있는데, 스스로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비교적 충분하다고 여겨질 때, 그런 것들을 포기했거나 소홀했던 것이 아니냐고.
남아 있는 아쉬움에 대해서는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직업상담사로 일을 하며 가장 많이 만난 3050 여성들을 떠올려보면, 나와 비슷한 서사 한두 개쯤은 누구나 다 있었다. 학업을 마치고, 일을 하고, 결혼을 하고, 임신과 출산 후 육아로 휴직을 하기도 하고, 퇴사를 하기도 하고.
그러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면, 엄마에게 '엄마의 시간'이 주어지는 시기가 오는 것을 봤다. 그들은 그 시간에 재취업을 하기도 하고, 공부를 하기도 하고, 사회에 봉사를 하기도 하고, 살기 바빠 소원했던 친구들과 다시 만나 여행을 하기도 하며 바라고 원했던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을 했다.
'나의 시간'. 그 시간이 오면 미뤄둔 공부를 할 수도 있고, 글을 쓰며 주변과 나눌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도 있다. 코로나 같은 전염병이 나도는 상황이 아니면 여행을 갈 수도 있고.
'지금의 시간'은 '언제가 올 나의 시간'에 대한 준비의 시간이다. 물론 '지금'이라는 귀한 시간을 아직 오지도 않았고 언제 올지도 모르는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라고만 한다면 그것 또한 기쁘지 않다. '지금'의 시간은 미래를 위해 참기만 하는 시간이 아닌, '치열한 지금'인 동시에, 언젠가 마주하게 될 '나의 시간'을 좀 더 잘 보내기 위해 준비를 하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나는 나를 안다. 내가 혼자 계속 살았다면 건강을 해치거나, 주변에 얼마 없는 사람들을 더 잃었을 거란 것을. 지금의 시간이,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영끌하며 달려온 나를 돌아보기도 하고, 쉬기도 하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변화해 가는 나에 대해 인지하고 그런 나를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살아가는 연습도 하고. 그 와중에 기쁨과 행복과 사랑도 찾아보는 그런 어려운 과업도 하고 있는 중이라 생각한다.
엄마의 '난 너희 키우면서 힘든 적 한 번도 없었어.' 그 말뜻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엄마니까, 자식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엄마만을 위한 것은 미루기도 하셨겠지만, 그 시간을 '희생' 아닌, '엄마의 삶'으로서 살아오신 것임을 온 삶으로 가르쳐주신 것 같다. 엄마는, 말보단 몸을 움직여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셨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계신다.
'난 너희 키울 때 다 좋았다. 힘든 거 하나도 없었어'라는 말은,
'딸, 너도 너 스스로와 너의 가족을 위해 스스로 좋은 삶을 살길. 기쁘고 행복한 순간이 많길. 그렇게 너의 삶을 살길 바란다.'라는 말과 같지 않을까.
엄마는 살아오신 모습 자체로 이런 메시지를 전해주신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삶으로 가르쳐주신 대로, 하루하루 '나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 매일 주어지는 새로운 날들을 지금의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다 보면 '나의 시간'에 이를 것이라고 믿는다.
세상에 내편이라곤 아무도 없는 것 같은 날, 마음 속 상비약 서랍에 넣어둔 이 문장을 꺼내 읽는다. 꽉막혔던 가슴이 조금씩 숨이 쉬어진다.
하루에도 열댓번 힘들다는 말을 옹알이처럼 입 안에 굴리며 사는 나 지만, 나의 엄마처럼 '너를 키우며 한 번도 힘든 적 없었다' 같은 멋진 거짓말을 내 아이에게도 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 말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