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눌 수 있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5NC1u8mVRnY
얼마 전 ‘태어나서 처음 색깔을 본 66세 보디빌더 아빠의 반응’이라는 영상을 봤다. 영상 속의 한 남자는 가족들에게 선물 받은 선글라스를 쓰더니 이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눈물을 흘린다. 영상 속 남자는 평생 남들과 다른 색을 인지한 채 살아왔고, 색각 보정 안경의 도움을 받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리가 보는 색깔들을 보게 된 것이었다. 쉽게 울 것 같지 않은 남자의 눈물에 많은 이들이 함께 울었고, 해당 영상은 무려 500만이라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수많은 댓글 중엔 영상 속 남자가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을지, 색맹이 아닌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감사가 대부분이었다. 처음 영상을 봤을 때는 나 역시 남자의 눈물에 함께 공감했고, 색맹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든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 일종의 동정심이 생겼다. 하지만 관련 영상 하나를 더 보며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WMPPH9d0DZI
그 영상 속에선 일반적 색 인지를 하는 사람이 색각을 가진 사람에게 색각 보정 안경을 주며, “이걸 쓰고 보는 색깔이 진짜 색깔이야” 라고 말한다. 그 멘트를 듣는 순간 불편해졌다. ‘과연 진짜 색깔이라는 게 뭐지? 우리가 보는 색깔이 무조건 진짜라고 말할 수 있나?’
중학교 과학시간에 색맹과 미맹에 대해 배우면서 PTC 미맹테스트를 한 적이 있다. 어떤 친구들은 PTC 용액이 묻은 스틱을 입에 대자마자 너무 쓰다며 학을 뗐다. 반면 나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충격적이게도 나는 미맹이었다. 물론 맛을 다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맛에 대해서만 맛을 느끼지 못하는 미맹이긴 했지만 미맹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그간 내가 느껴온 맛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도대체 정상이라면 어떤 맛을 느끼고 살았어야 하는 건지 의아해지기 시작했다. 그 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미맹이라고 해도 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그 말씀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로 미맹이 내 삶에 크게 영향을 주는 건 없었다. 내 미각이 정상이 아니라고 해서 안전에 위협이 될 만한 것도 아니었고 맛에 대한 즐거움을 못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다수와 다를 뿐이었다.
내가 미맹이었지만 삶을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듯, 색맹이나 색각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신호등을 잘 구분하지 못해서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색맹, 색각을 배려하지 않은 채 신호등을 만들었기 때문에 겪게 되는 일일 뿐 그걸 제외하면 색맹, 색각은 굳이 색 보정을 해야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만약 어떤 누군가가 당신에게 색안경을 쓰게 한 다음 ‘네가 지금 색 안경을 쓰고 보는 세상이 진짜 세상이야’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은가? 당신이 보는 세상을 설명하면 모두가 그것이 틀렸다고 이야기하며 당신이 비정상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당신은 점점 움츠러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색맹, 색각을 가진 사람들이 색각 보정 안경을 쓰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다채로운 색감 자체에 대한 감동의 눈물일수도 있지만 소수로서 느껴왔던 서러움의 눈물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초록색이지만 모두가 빨강이라고 이야기하는 세상 속에서, 나의 기준을 버리고 세상의 기준대로 학습해왔던 이들이 느낀 그간의 서러움. 색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너는 비정상이구나’ 라는 이야기를 들어온 삶에 대한 서러움. 그리고 이제는 보정 안경을 통해 다수의 생활을 느낄 수 있음에 대한 안도와 행복감은 아니었을까.
과연 내가 생각하는 빨간색과 남이 말하는 빨간색이 완전히 같은 색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가. 색깔의 본성에 대한 철학적 논쟁(인식론과 감각론)은 정말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양쪽의 견해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만큼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함부로 단정지을 수 없고, 쉽게 단정지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다수와 다르다고 해서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고, 나의 옳음을 다른 누군가에게 강요해선 안된다. 세상은 우리에게 기준을 강요하고 있지만 그 기준이 옳지 않다는 걸 끊임없이 사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