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이재명의 아이러니 ( 한국인의 기득권 우상 )
노무현과 이재명의 아이러니 ( 한국인의 기득권 우상 )
글의 제목을 ‘노무현과 이재명의 아이러니’로 정하고, 뭔가 부족한 것 같아 고민하다가, ‘마이너의 비애’를 부제로 해서 올렸다.
요즈음 한국사회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문제로 시끄러운데, 국민 85% 정도에 달했던 비상계엄에 대한 반대 의사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를 생각하면, 윤석열씨가 임명한 내란 동조 혐의가 있는 국무위원들은 모르겠지만, 국힘 당 국회의원과 일부 극우 태극기 집단의 탄핵 반대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필자의 생각에 국힘 당 국회의원과 일부 극우 태극기 집단의 탄핵 반대는 한국사회에 뿌리깊이 내려져 있는 기득권 유지 욕심과 기득권 우상 때문인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결국 이글은 노무현과 이재명의 아이러니를 통하여 한국사회의 병폐인 한국인의 기득권 우상을 밝혀보기 위해서 썼다.
1. 노무현과 이재명
노무현은 상고 출신으로 법대를 다니지 않고 사법시험에 통과해 대통령에 올랐던 인물이고, 이재명은 중· 고등학교를 소년공으로 일하며 검정고시를 거쳐 중앙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통과해 여당 당수이자 대통령 후보에까지 오른 인물로, 이 정도면 둘 다 흙수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입지전적인 성공을 이룬 인물들이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흙수저 출신으로 금수저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많지하고 금수저의 삶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따라서 보통의 경우 입지전적인 인물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본받으려 하는 것이 인간의 상식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을 향한 세간의 시선은 떨떠름했는데, 이들이 가진 다음과 같은 공통점 때문이다.
노무현은 바보 노무현 혹은 범죄의 죄책감으로 자살한 대통령이라는 비하하는 수식어가, 이재명은 악당·깡패 혹은 범죄자 이재명이라는 비하하는 수식어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고, 노무현은 대통령 재직 당시 대 놓고 무시당하고 환영받지 못하였고, 이재명은 대통령이 되면 마치 나라라도 망할 것처럼 미운 털이 박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두 사람의 범죄자라는 수식어는 검찰에 의한 프레임이지만, 바보나 악당· 깡패라는 수식어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왜 그럴까? 아마도 이들이 가지고 있는 마이너 출신이라는 공통점 때문일 것이다. 왜 한국인들은 국민 대다수가 마이너 출신이면서, 같은 마이너 출신인 이들에 대해 이처럼 각박할까? 아마도 기득권이 되기를 바라고 기득권이 무엇인가 해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2. 한국인의 기득권 우상
한국인에게는 기득권이 되기를 바라고 기득권이 무엇인가 해줄 것으로 생각하는 특유의 기득권(旣得權) 우상(偶像)이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라 “ 강한 자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고, 강한 자에게 빌붙어야 조금이라도 득을 볼 수 있으며, 약한 자에게 붙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는 인간의 동물적 본능에 따른 가진 공통적 성향이기는 하다. 다만, 한국인에게는 이런 현상이 유독 강한데, 아마도 억눌려 온 역사적 배경 때문일 것이다.
기득권 우상은 최고 권력자를 중심으로 부귀와 권력을 추구하는 허상(虛想)의 피라미드가 역사적으로 이어진다는 툭징이 있다.
제일 꼭대기에 기득권의 상징인 한 사람의 최고 권력자가 있고, 그 아래에 친위대에 속하는 권력자들이 있으며, 차츰 아래로 내려가면서 차츰 수가 많아져 제일 아래에 기득권자가 되기를 꿈꾸는 기득권에서 배제된 수많은 지지자들이 있어 피라미드 상을 이루고, 상하 관계에는 권력과 돈과 자신의 이익이라는 동인(動因)이 작용한다. 따라서 이들은 권력과 돈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도덕과 정의 등 인간이 가치로 삼는 것들을 서슴없이 버리고, 권력과 돈으로 쌓여진 허상의 피라미드를 만든다.
그리고 이 허상의 피라미드는 시대와 시기에 따라 사람은 바뀌지만, 권력과 부로 상징되는 단어를 통하여 역사가 바뀌어도 이름을 바꾸어 가며 변치 않고 존재한다.
한국의 기득권 역사는 크게 4부분으로 나누어져 2,000여 년 동안 이어져 왔는데, 이에 따라 정리해 보았다.
(1) 기원 전 시대: 기원전 시대는 고조선 시대인데, 고조선 시대의 사상이 홍익인간 사상임으로 기득권과는 관계가 없고, 따라서 이에 대해서는 기득권과 관계없으니 생략하였다.
(2) 기원 후 전제 왕국시대
기원 후 전제 왕국시대는 삼국시대로부터 조선시대까지 약 1910년간인데, 모두 동일한 전제 왕국(專制王國)으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유사하니 가장 가까운 조선을 예로 생각해 보자.
전제 왕국 조선은 대를 이어 통치하는 왕과 권력층에 해당하는 상위 10% 정도의 양반이 나머지 20%의 양반과 함께 귀족으로 독재 세력을 형성한 상위 30% 기득권층의 나라였다.
따라서 하위 70% 정도의 사농공상의 평민(平民) 즉 상민(常民)은 양반이 마음만 먹으면 재산과 생명과 성(性)을 빼앗거나 사고파는 등 마음대로 착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양반들의 노예와 다름없는 존재였고, 양반들 역시 왕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재산과 생명과 성(性)을 어떤 방식으로든 착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왕의 노예와 다름없는 신세였다.
이런 경우 상식적으로 왕이 아닌 귀족들은 왕에게 이를 갈아야 하고, 평민(상민)의 입장에선 귀족이 이가 갈리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 조선의 역사를 보면 그렇지 않는 경우가 많다.
조선은 귀족과 평민(상민)이 공존하여 왔는데, 여기서 특이한 사항이 역사소설이나 사극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왕에게 지나친 충성을 보이며 허물없이 지내는 신하들이 있고, 심지어 자신의 상전을 자기 몸처럼 돌보는 동시에 농담도 스스럼없이 건네는 여종이나 남종이 있다.
왕이나 상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야 종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너무 잘 해주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랍보가 형성되어 그럴 수도 있지만, 신하와 종의 경우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 답은 기득권에 대한 우상화에서 찾을 수 있는데, 불가항력의 힘을 가진 기득권의 존재인 왕과 상전을 두려워하면서도 자신 역시 기득권이 되기를 바라며 아부하고 또 아부를 통해 기득권이 무엇인가 해줄 것으로 생각하는 동시에, 기득권이자 상전인 왕과 양반에게 인정받으면서 자신을 동일시 하여 대리만족을 누림으로써 기득권을 우상화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3)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는 조선 왕 대신 일본 천왕이 나라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평민이나 양반 귀족들의 입장에선 달라진 것이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조선 양반 귀족들 중 일제에 충성하는 친일세력은 조선에 이어 다시 기득권층이 되었고, 조선평민들 중 일제에 충성하는 친일세력이 새로운 기득권층이 되었으며, 조선의 왕족들은 조선인을 무마하기 위한 일제의 식민정책에 의해 일제로부터 녹봉과 작위를 받으며 다시 기득권을 이어갔는데, 물론 유일하게 다른 행보로 독립운동을 한 의친왕 이강(李堈)이 있기는 하다.
다만 조선과 다른 점은 결국 일본이 조선을 강점한 것이기에 그 피해가 고스란히 피정복민인 조선인에게 돌아와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조선 평민들 가운데도 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일본의 천황에 대한 우상화가 시행되었어도 전반적으로 우상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4) 해방 후 미군정 시대와 독재시대
미군정시대와 이승만 대통령 시대는 동일하게 민주주의를 참칭(僭稱)했지만, 이승만과 친일 경찰이 득세해 반공주의 친일 경찰 독재를 시행했는데, 이승만이 독재를 행했던 것은 조선 황실 후손인 그의 혈통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실제로 이승만은 같은 전주이씨인 이기붕을 2인자로 삼고, 이기붕의 아들 이강석을 양자로 삼아 후계자로서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블러들이는 행보를 보였다.
조선에서 기득권층이었던 양반 귀족들 중 일제강점기에는 일제 강점기에 친일세력으로 역시 기득권층이 되었던 양반 귀족들과 친일세력들은 미군정시대와 이승만 대통령 시대에도 역시 기득권층이 되었는데, 이들이 대거 행정부와 여당인 자유당에 들어갔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주권을 바랐던 민주주의 세력을 좌파로 몰아 좌파 민주=친 공산 독재=진보 vs 우파 경찰독재=반공주의=보수라는 잘못된 프레임이 생겨나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데, 원래는 좌파 경찰독재=친일주의=보수 vs 우파 민주=반일주의=진보가 맞고, 6.25 전쟁 후에는 친일에 반공이 추가되어 좌파 경찰독재=친일주의, 반공주의=보수 vs 우파 민주=반일주의, 반공주의=진보가 된다.
이승만 시대에 이어 박정희 대통령의 5.16 군사혁명으로 군사정권이 시작되었고, 한국사회에서 경찰은 친일의 낙인이 찍혀 힘을 잃었는데, 다만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군 출신이었기에 단죄를 받지는 않았고, 또한 박정희 대통령이 공산주의자였던 형 박상희가 대구 10.1사건에서 경찰에게 사살되어 잠시 공산주의에 포섭되었었기 때문에 그 반향으로 반공주의가 이어졌다.
박정희 대통령이 5.16 군사혁명 이후 경제개발을 시행하여 수출드라이브 정책으로 재벌·졸부 등 각양각색의 신흥재벌이 등장하는 등 많은 역기능도 생겨 새로운 사회·경제 문제로 떠오른 기운데 고용증대로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민생을 이루어냈지만, 1972년 10월 유신으로 독재를 시행해 참칭 민주주의 군사 독재 시대로 넘어가면서 국민주권을 위협하였다. 다만, 경제개발로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민생을 이루어냈고, 10월 유신으로 1973년 중화학공업을 추진하여 국가 산업기반시설을 완성하였다는 점에서 공과(功過)가 있고, 따라서 공(功)에 대한 감사와 과(過)에 대한 비판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에 이어 전두환과 노태우가 12.12 사태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압의 군사내란을 일으켜 군사 독재 시대를 이어갔고, 군사 독재 시대가 계속되었기에 경찰은 친일낙인으로 계속 힘을 잃었고 반공주의 역시 계속되었다.
이때 독재 세력인 전두환과 노태우는 보수 여당인 민주정의당이었고, 역시 독재 세력인 김종필이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에 이어 보수 야당 신민주공화당을 만들었으며, 민주세력인 상교동계의 김영삼(YS)과 동교동계 김대중(DJ)이 신한민주당을 만들어 개혁보수를 칭했다.
대한민국은 1945년의 미군정에서 1993년 노태우 대통령의 시기까지 전반적인 의미에서 참칭 민주주의 독재정치가 행해졌고, 친일세력이 독재 세력으로 기득권을 이어가며 반공주의를 구시대적 올드라이트(Old Right)라고 비판하면서 뉴라이트(New Right)가 되었는데, 특히 돈과 권력을 추구하였던 기독교인들이 이에 동참하여 기득권을 누리면서 기독교 뉴라이트가 되었다.
참고로 반공주의를 구시대적 올드라이트(Old Right)라고 비판한 것이야말로 뉴라이트(New Right)의 비열함이라 할 수 있는데, 결국 그들이 세월이 흘러 친일행위가 잊혀지고 반공만이 남은 시점에서 반공주의를 버려야 할 이데오르기(ideologi)로 비판한 것은 “이승만 대통령이 우파 경찰독재를 반공주의로 포장하고, 국민주권을 바랐던 민주주의 세력을 좌파로 몰아 친공산 독재=진보라는 거짓 프레임을 씌웠던 잘못”을 감추기 위한 얄팍한 술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5) 해방 후 민주시대와 노무현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 정치체제가 시작된 것은 민주화 운동권 출신 대통령인 김영삼 정권(1993년~ 1998년)부터이지만, 집권하였던 1993년 하나회 척결로 군사 독재를 종식하였을 뿐, 친일세력과 기독교인으로 구성된 뉴라이트들의 기득권이 이어졌으니, 진정한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이때 기억하여야 할 것이 독재 세력인 전두환과 노태우의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역시 독재 세력인 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민주세력인 개혁보수 신한민주당의 상교동계의 김영삼(YS)과 결합하여 민주자유당을 만들었고, 민주세력인 신한민주당의 동교동계 김대중(DJ)이 따로 통일민주당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즉 여당인 전두환과 노태우의 민주정의당과 야당인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에 속해 기득권을 누렸던 뉴라이트들이 대거 개혁보수 김영삼(YS)계의 민주세력으로 넘어와 민주자유당에 속해 기득권을 이어갔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진정한 민주세력은 김대중(DJ)의 통일민주당만이 남게 되었고, 결국 김대중(DJ)은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개혁보수에서 진보가 되었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시작된 것은 독재 세력을 몰아낸 김대중 정부(1998년~ 2003년)와 노무현 정부(2003년~ 2008년)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김영삼 정권하에서 민주자유당에 속해 기득권을 추구하였던 이들은 이후 이어지는 김대중 정부(1998년~ 2003년)와 노무현 정부(2003년~ 2008년)에서 한나라당이란 이름으로 활동을 하였지만, 진정한 민주세력의 정권이었기에 힘을 펴지 못하였다.
김대중의 통일민주당은 평화민주당-민주당-새천년민주당- 민주당-새 정치 민주연합을 거쳐 더불어민주당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노무현은 1990년 3당 합당에 반대하며 합당에 찬성한 김영삼과 결별하였고, 김대중 계의 민주당에 들어갔다. 이후 영호남 지역주의가 심화되며 부산에서 본의 아닌 고전을 거듭하였다. 그러다 1998년 재보궐선거에서 종로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재선 의원이 되었지만, 2000년 총선에서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며 종로 대신 부산에 출마하여 또 한번 낙선했고, 이런 모습을 본 지지자들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때 대한민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인 노사모가 탄생했는데, 권력보다는 올바름을 중시했던 그의 면모를 알 수 있다.
노무현은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2.33%p의 근소한 차이로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 재임 중 마이너 출신 대통령이었기에 당 내외로 도전을 받다가,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여당 새천년민주당의 분열이 일어났을 때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이때 열린우리당을 지지해달라는 발언 하나 때문에 새천년민주당이 주도하고 한나라당이 동참하여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소추를 당하고 말았는데,여론으로도 억지 탄핵소추라는 의견이 압도했고, 탄핵심판 또한 헌법재판소에 의해 기각되어 직무에 복귀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8년 임기가 만료되어 퇴임하였는데,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퇴임 후 서울특별시가 아닌 고향 봉하마을로 귀향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통령직 퇴임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이 2009년 박연차 게이트로 재임 시절 측근들을 연이어 구속하면서 수사를 앞둔 상황에 놓였고, 이와 관련하여 SBS의 보도로 부인 권양숙 여사의 논두렁 시계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언론들은 참여정부가 내건 최대 무기였던 도덕적 우월성이 무너지는 순간이라며 주변 참모들의 연이은 비리 소식과 구속, 형 노건평의 이권 개입, 정치 자금 주선과 노무현도 시인한 아내의 뇌물 수수로 인해 청렴과 깨끗한 정치를 내걸던 참여정부의 이미지가 추락했다고 보도했으며, 많은 국민들도 무능해도 도덕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다고 여겼던 참여정부 인사들의 연이은 비리 의혹으로 인해 큰 실망감을 표했고,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노무현의 죽음이 알려지자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국민들의 추모와 애도가 이어졌고, 각계각층에서 검찰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는데. 대체로 몰리는 결론을 요약하자면 가족이나 측근들은 떳떳하지는 못했지만, 당시 권력 기관들의 표적 세무조사나 사찰, 수사 과정에서의 피의사실공표 등의 모욕주기 행태는 너무 심했다는 결론이었고, 또한 진영을 막론하고 이건 사람 하나 잡으려고 전 국가기관이 나서 노무현을 난도질한 거 아니냐는 의견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치적을 살펴보면, 능력 위주의 파격적 인사, 최초의 국가 기록물 체계 정비와 법제화, 김대중 대통령에 이은 전자정부 구축을 위한 노력, 국민과의 소통, 제주 4.3사건과 친일청산과 독립운동가 서훈 추천 등의 역사의식 개선, 호주제 폐지 및 호주제도 개선, 자주국방, 사스와 조류 독감 위기대응 및 질병관리본부설립, 자주 외교, 주5일제 시행, 한미 FTA 체결, 건강보험 민영화 시도 폐지 등 필자가 보기에 국가가 국민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외에 별로 뛰어난 치적이 없지만,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과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는 누구도 이의가 없다.
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까지만 해도 별로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따라서 그에 대해서 잘 모른다.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좀 오락부락해 보이지만 호감형인 얼굴이라는 것과 검사와의 대화 당시에 본 직설적인 말투 정도였고, 사망 후 현재 한국인들이 정치인과 비정치인 막론하고 좋아하는 대통령 중 한 명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별로 눈에 띄는 치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후 이런 형상이 나타난 것은, 국민들이 권력의 완성을 추구하는 대통령보다는, 권력을 내려놓고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대통령을 진정한 대통령으로 생각한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권력을 가진 자가 권력을 내려놓는 일과 직책에서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6) 해방 후 민주시대와 이재명
대한민국은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의한 12.3 내란이 일어났고, 이에 따라 1993년 김영삼 정권으로부터 시작되어 31년간 계속되어 온 민주시대의 민주주의가 시험대에 올랐는데, 이재명은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 후보로 경합하였던 야당인 더불어 민주당 당수였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속한 여당인 국민의 힘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이재명이 속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한나라 당은 전제 왕국 조선의 왕과 권력층에 해당하는 양반귀족- 일제강점기의 친일세력- 이승만과 이승만의 자유당의 친일 경찰독재 세력- 박정희 공화당의 군사 독재 세력- 전두환 노태우 민주정의당과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의 군사 독재 세력-민주자유당- 한나라당으로 기득권의 역사를 이어온 당으로, 김대중과 노무현의 민주세력 정권에서 힘을 펴지 못했지만, 이명박 정부(2008년~ 2013년) 때 정권을 잡으면서 권력을 되찾아 기득권을 누렸는데, 이때부터 뉴라이트들이 다시 득세하였고, 박근혜가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선거에서 문재인을 이기고 당선되어 박근혜 정부(2013년~ 2017년)가 탄생해 그 뒤를 이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비선실세 의혹, 대기업 뇌물 의혹 등 범죄혐의로 윤석열 검사가 주도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탄핵 소추되어 2017년 3월 10일 탄핵되었으며, 2017년 3월 31일 검찰에 의해 구속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은 1955년 이승만의 맛수였던 신익희를 초대 당수로 창당된 민주당을 시작으로, 신민당(박정희, 전두환 정부)과 신한민주당(YS)과 통일민주당(DJ)으로 이름을 바꾸다 김대중 정부(1998년~ 2003년)때 다시 민주당이 되었으며, 이후 새천년 민주당(DJ)과 열린 유리당과 통합민주당으로 나누어졌다, 노무현 정부(2003년~ 2008년)때 새 정치 민주연합을 거쳐 더불어민주당으로 개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정통 진보정당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 야당이 되었고, 박근혜 탄핵 이후 2017년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2012년 초선의원으로 2015년 초대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낸 경선 후보 1위 문재인 후보가 경선 후보 3위였던 일반 당원 이재명 후보를 제치고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어 문재인 정부(2017년~ 2022년)와 다시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의 시대가 시작되었는데, 이때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파와 문재인파로 나누어졌고, 국회의원이 아니었던 이재명은 당내에서 힘을 잃고 견제의 대상이 되었다.
윤석열 검사는 전 대통령을 수사 구속하여 문재인 정부를 만든 공으로 승승장구하다 2019년 3월 검찰개혁을 약속하며 검찰총장까지 올랐는데, 윤석열 검사가 검찰총장이 된 2달 후인 2019년 5월 조국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에 지명되었다.
조국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에 지명되자 딸의 대학 입학과 관련한 의혹과 가족 소유의 웅동학원, 가족들이 투자한 사모펀드 코링크PE 등과 관련된 의혹이 제기되었고, 2019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장관 임명을 강행하자, 윤석열 검찰총장은 검찰을 움직여 조국 가족을 둘러싼 여러 의혹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고, 결국 조국 장관은 2019년 11월 취임한 지 35일 만에 사퇴하였고, 2020년 1월 추미애 법무장관이 조국 법무장관의 뒤를 이었다.
2020년 9월 2일 한나라당은 대선을 준비하며 국민의 힘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추미애 법무장관이 같은 해 11월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를 정지하는 동시에 검찰 고위급 인사에 대한 교체 인사를 단행하여 많은 논란이 일어났는데, 윤석열 검찰총장은 12월 16일 징계위 결정과 문재인 대통령의 재가와 동시에 사의를 표명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12월 30일 추미애 장관의 사표를 수리했다.
윤석열 검사가 검찰총장 2021년 3월 윤석열 검찰총장이 물러나자, 야당 국민의 힘은 윤석열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였고, 여당 더불어민주당은 다시 당원인 이재명을 2021년 7월 경선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였으며, 비슷한 시기에 이재명 후보에 대한 대장동 수사가 시작되었는데, 윤석열 검찰총장이 물러나자마자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추대된 지 불과 4개월이 지난 시점인 것으로 보아 검찰총장 재직 시 이미 계획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왜 윤석열 검찰총장을 위해 조국법무장관과 추미애 후임 법무장관을 희생시켰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지만 아마도 모중의 정치적 타협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2022년 3월 20대 대선이 치러지자, 윤석열 후보 측에서는 이재명 후보의 대장동 사건논란과 인성 논란과 아내 김혜경 논란을 문제로 삼았고, 이재명 후보측에서는 오히려 윤석열 후보가 대장동 사건에 관련되었다고 반박하며 아내 김건희 논란을 문제 삼았는데, 윤석열 후보가 토론 과정에서 손바닥에 왕자를 그리고 나와 무속 논란이 일어난 것과 동시에 논제(論題)에 대한 무지와 답변 태도에서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점이 노출되었다.
대선 공개 토론에서 국민이 선택을 위해 살펴보아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대장동 사건과 토론 과정에서의 윤석열 후보의 자질 부족이었는데, 극단으로 치닫는 쌍방 비하로 인한 경쟁 속에서 정치보복 발언들이 이어졌고, 결국 후보자에 대한 정확한 검증을 위한 대선보다는, 내가 싫어하는 후보가 당선되는 것에 대한 불안이나 공포 때문에 내가 선호하는 후보에게 흠결이 있거나 부족한 점이 있어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찍는 역대적인 비호감 대선이 되었다.
결국, 윤석열 후보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싸운 강골 검사의 이미지에 힘입어 근소한 차이로 승리하여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고, 국민의 힘(한나라당)은 여당이 되었다. 보수정당인 국민의 힘이 여당이 되어 보수 정권으로 보이지만, 기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초의 검찰 출신 대통령이었기에 기존의 보수와는 결이 다를 수밖에 없었는데, 검찰 조직 자체가 긴 세월 동안 보수와 진보의 틈바구니 속에 정치검찰로 이용당하면서 상명하복 체계를 통해 정치검찰 특유의 보수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재명 후보는 대선에서 떨어진 3개월 후 치러진 2022년 6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초선 국회의원이 되었고, 그로부터 2개월 후인 2022년 8월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되어 당내 주류가 되었으며, 2024년 22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하는 동시에 더불어민주당이 비례 정당인 더불어 민주연합의 14석을 포함해 총 175석을 얻어 압승하며 차기 대권가도에 청신호가 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제1 야당 대표인 이재명 대표를 범죄자로 더불어민주당을 좌파 반국가 전복세력으로 규정하며 일체의 협치 없이 독단적으로 정국을 이끌어 나갔고, 역시 여당인 국민의 힘도 마치 윤석열 대통령의 충성스런 신하라도 되는 양 야당과 벽을 쌓으며 대립하여 왔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내란 혐의로 탄핵 소추되어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동시에 공수처와 경찰 국수본 특별수사단으로 꾸려진 공조본(공조수사본부)에 의해 체포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고, 그의 이런 파행으로 안 그래도 어려운 국가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재명 대표는 제1야당 대표였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범죄자로 몰며 대화를 피해 철저하게 배격되었고, 자연스럽게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 및 여당인 국민의 힘의 독주를 국회를 통해 막는 형국이 될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국가 경제와 민생이 어려움에 처했다.
현재 이재명 대표는 대장동·위례동·백현동·성남FC 재판, 공직선거법위반 사건, 위증교사 사건, 대북송금 사건, 아내 김혜경 경기도 법인카드 사적 유용 논란 등으로 1주일에 4 번의 수사와 재판이 계속되는 중인 가운데, 우원식 국회의장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내란을 막고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재명이 제1야당 대표로 나름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도, 그에게 비호감을 가진 국민들이 여전히 많고, 그의 정치적 역량이나 정치철학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특히 그의 맞수로 그를 범죄자로 몰았던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내란이라는 범죄를 저질러 국가 경제를 나락에 빠트려 놓고도 뻔뻔스럽게 법을 부정하면서 법치주의를 무너뜨리고 있음에도, 그에 대한 비호감과 정치적 역량이나 정치철학에 대한 무관심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는 적어도 윤석열과 그 아내 김건희가 전혀 수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에 비해 충분히 수사를 열심히 받고 있으니, 굳이 그의 대통령 자격에 대해 시비를 걸 필요도 비호감을 가지거나 정치적 역량이나 정치철학을 비하할 필요는 없다. 검찰이 기소한 그의 수많은 범죄는 재판에 의해 밝혀질 것이고, 그에 따라 자연히 그의 행보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이었다는 사실 외에 잘 몰랐다, 그러나 대선 과정에서 그에 대해 알아보다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 개발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에 대해 살펴보면서 그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역량을 알게 되었는데, 대통령은 국민의 대리인이라는 권력에 대한 그의 생각에서 국민을 중시하는 정치철학을 알게 되었고, 성남시장 시절 하천 정비 사업 시에 시민들과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모습과 적자투성이였던 성남시 재정을 흑자로 바꾸어 성남시의료원 건립, 청년배당 시행, 무상교복, 무상 산후조리와 같은 다양한 복지사업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꾸준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시행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그의 정치적 역량을 알게 되었다.
3. 노무현과 이재명을 통해본 한국사회의 미래비전
한국 사회는 끊임없이 민주주의를 향해 발전해왔고, 그 과정에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 즉 금수저들과 기득권 우상을 통해 이득을 얻어 금수저가 되려는 사람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끊임없는 방해와 횡포가 있었으며, 따라서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주권이 되어 더불어 잘살기를 갈망하는 수많은 흙수저들의 고통과 피를 바친 희생의 댓가로 얻어진 것이었다.
결국, 민주주의 사회는 누구나 노력하면 흙수저에서 금수저가 될 수 있는 사회인데, 필자는 노무현과 이재명을 통하여 흙수저에서 태어나 금수저가 되었음에도, 기득권을 가진 수구(守舊) 혹은 보수(保守)들 즉 금수저들과 기득권 우상으로 이득을 얻어 금수저가 되려는 우익수구(友翼守舊) 혹은 우익보수(友翼保守)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끊임없는 선동(煽動)으로 무시 되었다가, 노무현처럼 죽고 난 후에야 일반 대중들에 의해 그 진가를 평가받는 아이러니한 인간과 사회의 속성을 느끼게 된다.
노무현과 이재명은 전술하였듯이 흙수저에서 태어나 노력으로 성취를 이룬 사람이고, 그 성취를 바탕으로 흙수저가 인정받는 세상을 만들려 했던 인물들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이런 사람들이 인정받고 존경받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만, 정치인으로서의 그들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노무현은 죽음으로써 명예를 회복하였고, 이제 한국 사회에서 국민주권의 도덕률을 상징하는 최후의 보루가 되고 있는데, 역대 어느 대통령도 그처럼 보통사람과 같은 생각과 행동으로 국민주권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현재 제1야당 대표로 대통령 직무 정지된 윤석열과 함께 권력의 정상을 다투는 인물이다. 이재명은 노무현과 여러 가지 점에서 일치하지만 딱 하나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노무현에게 당과 대한민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인 노사모가 있었지만, 이재명은 당내의 아웃사이더로 혼자의 힘으로 성장하였고 지금까지도 당내에 반 이재명파가 많음에도 끄떡없이 대표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재명은 대통령이 된 적이 없기에 권력의 정상에 서 본 적이 없고, 따라서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능력이 검증된 바도 없지만, 그가 당내의 아웃사이더임에도 당내의 국회의원들이 그를 등지지 않고 지지를 하고 있는 점과 그가 남긴 청년들 혹은 기자들과의 대화나 성남시장 시절에 이룬 실적을 보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2025년 1월21일 현재, 대법원의 탄핵심판을 기다리는 대통령은 법치주의를 무시하며 사법기관의 수사를 거부하다 구속되어 있는 가운데, 그와 그의 측근들의 선동으로 대통령측 극우(極友) 세력에 의해 법원이 공격받아 대한민국의 법치주의가 무너질 위험에 처해있다.
이 정도 되면 제2야당 대표인 이재명을 중심으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정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데, 아직도 내란수괴인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가지고 있어 내란 세력인 대통령 측근 국무위원들과 여당이 권력을 유지하고 있고, 따라서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과 대통령측 극우(極友) 세력들을 지지하는 수구(守舊) 언론기관이 검찰에 의해 범죄자 프레임에 갇힌 이재명 죽이기 선동을 일으키면서 야당인 민주당 역시 힘을 잃어 나서지 못하고 있어 국민주권을 대신할 인물이 없는 실정이며, 결국 대통령은 감옥에 있고 대통령을 대신하는 대통령 측근 국무위원들과 여당은 내란에 관련되어 힘을 잃어서 국정 공백으로 보이는 상태가 되어 있다.
결국, 이 모든 일의 원인은 대통령과 대통령 측근 국무위원들과 여당 국회의원들과 수구(守舊) 언론기관의 거짓 선동을 간파하지 못하고 기득권 우상에 빠진 극우(極友) 세력 국민들의 어리석음 때문인 것이다.
기득권 우상에 빠진 극우(極友) 세력 국민들은 기득권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기득권은 기득권을 가지지 않는 다른 사람과 기득권을 나누지 않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최후의 목적은 최고 기득권자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는데 있다. 따라서 극우(極友) 세력 국민들이 그들을 추종하며 돈과 권력을 조금 얻는다 하더라도 기득권이 될 수는 없다. 원래 기득권자에게 다른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도구일 뿐, 자신의 안위에 방해가 될 때는 언제든지 버리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기득권 우상에 빠진 극우(極友) 세력 국민들이 정신을 차려 깨시민으로 돌아온다면, 압도적 수의 국민들의 힘에 의해 대통령과 대통령 측근 국무위원들과 여당 국회의원들이 힘을 잃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민주주의가 지켜질 수 있는데, 현재 극우(極友) 세력들의 행동을 보아 그러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한편, 대한민국은 기득권 우상에 빠진 극우(極友) 세력 국민들에 의해 국정 공백으로 보이는 상태가 된 상황에서도 신기하게도 국정 공백 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데, 그것은 권력분립에 의해 서로 견제하고 보충하며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민주주의 체계와 비상계엄 해제를 돕고 탄핵시위에 동참하고 있는 비상계엄 당시 85% 정도, 지금 70% 정도 이상의 깨시민들 때문이다. 최근 윤석열 지지율이 40%이상이라는 여론조사가 나오는데, 보나마나 조작된 여론조사로 그 정도로 백중지세였다면 아마도 벌써 내란이 일어나 국정공백의 상태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 사법기관의 상황을 조금만 살펴보면,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내란임이 너무도 확실하고, 이것을 잘 알고 있는 수많은 깨시민들이 있기 때문에 검찰도 경찰도 공수처도 법원과 대법원도 대통령 편을 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깨시민은 노무현이 말하였던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에서 따온 깨어 있는 시민의 준말로 사후 추모의 의미로 썼으며, 김대중 대통령의 '행동하는 양심'과 더불어 민주당계 진영 중 친노계에서 널리 쓰였던 말이다. 이를 바탕으로 살펴보면, 깨시민에게는 두 가지 양식(良識)의 기준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첫째가 공감능력이고, 둘째는 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역사 의식이다.
공감능력(共感能力)은 나와 다른 사람을 동일한 기준으로 바라보는 능력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의 도덕 기준에서 상대를 판단하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서로 부대끼며 살다 보면 민주주의에서 최선의 가치로 생각되는 정의(正義)· 평등(平等)· 자유(自由) 등을 침해하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고, 따라서 우리가 선(善)이라고 생각하는 정의· 평등· 자유(自由) 등의 최선(最先) 즉 최선(最善)이 아닌 최다의 선(善)인 최다선(最多善) 즉 차선(次善)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즉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 없다는 말이 없듯이, 나도 할 수 없는 높은 도덕적 기준을 남에게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정치인들은 정치판에서 상대방과 가족은 물론 일가친척까지 약점을 찾아서 도덕적 타락을 공격하고, 공정하여야 할 법에서는 검사와 판사도 인간인지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올바른 수사와 판결을 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정확하여야 할 언론 보도조차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편파적 방송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데,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이 정치인이나 공무원에게 자신도 할 수 없는 높은 도덕적 기준을 적용한다면, 모두가 범죄자요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이 되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양비론에 빠져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의 도덕 기준에서 정치인이나 공무원을 판단하여 선택하는 객관적 시선이 필요한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역사의식은 나의 삶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수많은 선대 어른들의 땀과 눈물과 피로 쌓아 올린 고통과 희생 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이번 12.3 비상계엄 내란 사태의 비상계엄 해제에 대해 흔히 한강 작가의 “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사람을 살릴 수 있는가”하는 말을 인용하여, 죽은 자와 과거의 역사가 산 사람과 현재의 역사를 구했다고 하는데, 산 사람과 현재의 역사가 죽은 자와 과거의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지 않으면 결코 죽은 자와 과거의 역사가 산 사람과 현재의 역사를 살리는 일은 없다. 즉 12.3 비상계엄 내란 사태의 비상계엄 해제는 산 사람과 현재의 역사가 3.1운동과 4.19와 5.18을 올바르게 배워서 기억하거나 혹은 겪어서 올바르게 알고 있었기에 일어난 결과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가치관이나 기존의 신념 혹은 판단 등과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과 태도를 확정편향(確定偏向)이라고 하는데, 올바른 역사의식을 배워서 기억하거나 혹은 겪어서 알고 있지 않으면 확정편향이 되어 극우(極右)나 극좌(極左) 성향을 가지게 되고, 따라서 올바른 역사와 국민 정서에서 동떨어진 친일 사관에 빠지거나, 기득권 우상으로 민주주의를 좌파 종북 국가 전복세력으로 모는 극단적이고 그릇된 역사관에 빠지게 된다.
결국, 기득권 우상을 타파하여 기득권의 횡포를 막아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법은 국민 70% 이상의 압도적 수가 깨시민이 되어서 기득권 세력과 기득권 우상에 빠진 극우(極友) 세력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방법뿐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를 바로 세워야 하고, 정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공감능력 교육과 기득권 역사를 타파하기 위해 싸워왔던 올바른 민주주의 역사교육이 필요하다.
흔히 정치에 중립적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치적 중립은 정치인에 해당하는 말로써 국민이 중립을 치부하며 정치에 관심이 없으면 정치인들에 의해 국민주권을 잠식당해 나라를 망치는 피해를 입게 되고, 설령 정치에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공감능력과 올바른 역사의식이 없으면 결과는 마찬가지가 된다.
특히 대중의 관심을 먹고사는 연예인들의 경우 정치적 중립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결국 반대편 입장에 있는 팬들에게 비난받을 것을 의식한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변명에 불과하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하는데,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수많은 선대 어른들의 땀과 눈물과 피로 쌓아 올린 고통과 희생이 없었다면 그들이 지금처럼 대중의 관심 속에 자유롭게 공연하고 돈 벌며 살 수 없었을 것이고, 지금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국민들이 없어서 비상계엄 내란이 성공했다면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대중의 관심 속에 자유롭게 공연하고 돈 벌며 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관심을 먹고 사는 정치사상으로, 마치 식물이 농부가 관심을 가져야 잘 크는 이치와 같이 민주주의 정치 역시 국민의 관심을 가져야 누릴 수 있다.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정치인에 맡겨 두면, 국가는 정치인과 언론이 야합하여 기득권을 다투는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장이 되고, 국민주권과 국민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민주국가의 국민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무작정 관심만 가진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공감능력과 올바른 민주주의 역사교육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