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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람 Oct 21. 2023

해설 단군신화(44.  교정)

신교의 유습: 선교의 홍익인간정치사상과 제천문화

 단군이 종교정치 국가 구려 조선을 세워 홍익인간 정치를 펼치고, 하늘에 천제를 올리는 제천문화를 국가 행사로 삼음으로써 홍익인간 정치사상(弘益人間 政治思想)과 제천문화(祭天文化)와 무속(巫俗)이 대한민국으로 이어져 선교의 유습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무속은 중국의 역학과 접합하여 혹세무민하는 점(占)쟁이로 변질된 풍속으로 진정한 한민족의 문화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단군신화와 우리 한국고기를 통하여 전해지는 선교의 유습 중 오늘날까지 그 명맥이 남아 있는 유습 중에 반드시 지키고 보존하여야 할 것으로 홍익인간정치사상(弘益人間 政治思想)과 제천문화(祭天文化)를 들 수 있다. 


  첫번째의 홍익인간정치사상(弘益人間 政治思想)은 홍익인간교육의 대중화를 통한 민주정치의 사회관을 형성함으로써 나라 안의 모든 사람이 함께 건강하게 잘 사는 홍익세상,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홍익세상을 추구하는 민중 중심의 정치철학이다. 따라서 세습 군주와 그들을 둘러싼 정치세력들이 무력으로 권력을 독점하며 다스렸던 권력 통치가 아니었고,  오늘날처럼 국민을 대리한 통치 권력이나 권력을 독점한 사회 지도계층에 의한 권력정치도 아니었다. 

 홍익인간 정치사상을 통하여 홍익인간사상이 교육정책으로 정해지면서 홍익인간사상은 홍익인간이 중심이 되어 민중을 움직여 세상을 다스리는 민주정치의 사회관으로 다시 태어난다. 

     

 선교의 홍익인간정치사상은 홍익인간교육의 대중화를 통한 민주정치의 사회관을 형성함으로써 나라 안의 모든 사람이 함께 건강하게 잘 사는 홍익세상,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홍익세상을 추구하는 민중 중심의 정치철학이다. 

 홍익인간 정치사상을 통하여 홍익인간사상이 교육정책으로 정해지면서 홍익인간사상은 홍익인간이 중심이 되어 민중을 움직여 세상을 다스리는 민주정치의 사회관으로 다시 태어난다.   

   

 두 번째 제천문화(祭天文化)의 유습은 선교의 민주정치 사상을 상징하는 데, 개천절과 장마당(장터)으로 대표되는 제천문화는 제시(祭市)를 열어 집단정신을 다지는 축제를 열고, 제시의 제물을 제천제단에 올려 하늘에 제사를 모시는 문화이다. 

 오늘날까지도 개천절과 장마당(장터)의 유습은 남한이나 북한 공히 모두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전하는 의미나 모습은 서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다만 개천절이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발원 일이라는 데는 공통적으로 일치한다.      



   

1. 선교의 홍익인간 정치사상


 홍익인간정치사상 즉 홍익민주정치사상은 홍익인간사상을 사회적 국가적 개념으로 끌어 올린 정치철학사상으로, 인간을 홍익인간으로 바꾸어 홍익인간의 집단지성을 이루며, 홍익인간들의 집단지성으로써 하늘의 천도(天道)를 인간세계에 세워 홍익인간 세상의 지상천국을 이룸으로써 천기(天氣)를 완성한다는 민중 중심의 민주 철학사상이다.  따라서 홍익인간정치사상은 홍익인간교육을 통하여 민중 중심의 사회관을 형성함으로써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민중의 정치를 추구한다.   


 홍익인간정치사상은 홍익민주 정치사상(弘益民主 政治思想)과 같은 의미인데, 인간을 홍익인간으로 교육하여 홍익인간들의 집단지성을 통해 민심(民心)으로 홍익을 지향하는 정치사상이기 때문이다. 

 즉 홍익(弘益)을 추구하면서 민심(民心)으로 하는 정치를 지향하기 때문에 홍익민주정치(弘益民主政治)가 되는 것인데, 여기서 홍익이란 관계 당사자인 너와 나에게만 적용되는 최고(最高)의 이로움이 아닌 관계없는 제3자에게 까지도 이로운 최선(最善)의 이로움을 의미한다.     


 홍익인간정치사상 즉 홍익민주정치사상에서 다스림의 개념은 국민 스스로의 힘으로 개개인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 스스로를 절제하고 조절하는 사회문화를 의미한다. 홍익민주정치사상에서 인내천(人乃天)이라 하여 민심을 천심으로 규정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홍익인간정치사상에서 추구하는 다스림의 의미는 자치(自治)에 가까운 정치(政治)라 할 수 있다. 개인 이익이나 집단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에서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통치수단을 다스림의 개념으로 삼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  


  정치와 통치 모두가 나라와 국가를 다스리는 행위이지만, 정치와 통치의 차이는 이미 설명한 바가 있다. 

 홍익인간정치사상의 입장에서 개인 이익이나 집단이익을 추구하는 정치는 폭력을 통하여 불의를 조장하는 통치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대의 민주정치는 국민의 올바른 선택과 행동에 따라 정치도 될 수 있고, 반대로 국민의 잘못된 선택과 행동에 따라 통치로 전락하여 국민을 억압하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고조선 시대가 끝난 후 시작되어 조선 시대까지 2,000여년간 계속되었던 전제군주통치 역시 민심을 전제군주의 발아래 둔다는 전제조건에서 이루어지는 철학사상으로, 전제군주통치에서 민심(民心)을 천심(天心)이라 한 이유는 고조선 시대에 형성된 홍익인간정치사상에 의한 민심의 반발을 막기 위한 위장이라 할 수 있다.   

  

 홍익인간정치사상은 인간을 교화하여 홍익인간으로 만들고, 홍익인간의 힘으로 세상이 널리 이로워 질 수 있도록 다스리는 홍익 인간들에 의한 정치이다. 홍익인간은 널리 이로운 인간으로, 널리 이롭기 위해서는 한사람 혹은 몇몇사람의 홍익인간이 정치하는 것으로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단하다. 아무리 홍익인간이라도 한사람 혹은 몇몇사람으로 짬짬이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동물성이 발동하여 딴 짓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홍익인간정치는 널리 이롭지 못한 인간의 이롭지 못한 행위나 널리 이로운 홍익인간의 짬짬이를 사전차단할 수 있을 정도의 최대한의 홍익인간 즉 홍익인간의 집단지성(集團知性)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한 것이다. 즉  홍익인간이 인본(人本) 즉 인간의 근본정신이 되고 홍익인간의 집단지성이 민주(民主)가 되어, 한사람 혹은 몇몇 사람에 의한 통치가 아닌 민주정치를 하는 것이 홍익인간정치이다.  따라서 홍익인간정치에 의하면 홍익인간=인본이 되고, 홍익인간정치=민주정치가 된다. 

 참고로 흔히 인본을 “인간이 세상의 근본이 된다.”는 의미로 해석하여 인권(人權)을 중시하는데, 홍익인간정치사상에 따르면 잘못된 생각이다. 홍익인간정치사상에서 인본은 인간의 본성인 동물성이 아닌 인간의 천성인 홍익인간의 영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널리 해로운 동물성의 인간은 인권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홍익인간정치사상에서 추구하는 세상은 홍익인간 세상이다. 홍익인간 세상은 인간을 홍익인간으로 교육하여 홍익인간의 민중심을 확장함으로써 집단지성으로 사회를 이끄는 민주 세상이며, 홍익인간이 인류와 자연의 중심이 되어 인간 세상을 지상천국으로 만드는 이상향의 세상이다.

 홍익인간의 집단지성이 만드는 홍익인간 세상은 지상천국과 이상향이라는 의미 그대로 배고프거나 굶주리는 자가 없고, 삶에 스트레스를 주거나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한 환경도 없으며, 질병의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이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보고 싶은 곳을 보면서 행복하게 살 아 가는 세상이다. 

 물론 그런 세상은 있을 수 없고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할 런지도 모르겠지만, 단군신화와 한국고기에서 그리고 있는 고조선이 그런 세상이었다. 고조선의 멸망원인은 아마도 도덕교육의 어려움과 당시의 인류문명 수준을 생각해보면 교육속도와 총생산 증가가 인구증가를 따라가지 못한 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은 과학 문명의 발달로 인류 총생산이 전 인류가 굶주리지 않을 정도의 수준에는 이른 것으로 보이고, 정보통신의 발달로 도덕교육에 힘을 기울인다면 부족한 부분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정도의 기술 수준에는 이르렀다고 보인다. 따라서 홍익인간에 의한 지상천국과 이상향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은 충분히 갖추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될 수 없고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자들은 하지 않고 하게 할 수 있는 자들은 외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의 이상향에 해당하는 지상천국 고조선의 역사가 2,333년, 고조선이 멸망 한 후로 다시 2,300여 년이 흘렀다. 단군이 산신이 되었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지금이야말로 기술교육에서 도덕교육으로 교육을 바꾸어야 할 절호의 기회라 할 것이다. 


  

 선교의 홍익인간정치사상의 유습이 남아있는 것은 우리 교육법의 홍익인간과 '우리' 정신이다. 

 '우리'라는 공동체적 다문화 정신을 다문화 우리정신(Globalism)이라고도 하는데, '우리' 정신은 천지인(天地人) 즉 하늘과 자연과 사람이 하나라는 삼위일체의 보편적 인식과 홍익인간이라는 도덕 중심적 인식에서 출발된 우리 민족 고유의 자기 정체성이다. 

 뛰어난 역사를 가지고 있거나 강력한 국가를 이룬 민족은 예외 없이 민족 고유의 정체성이 있다. 중국의 인(仁)과 도(道), 영국의 신사도(紳士道), 이스라엘의 시오니즘(Zionism,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목적인 민족주의 운동), 미국의 아메리카니즘(Amerlcanim,미국적 사고, 미국적 문화, 미국적 민주주의 정신 등 미국식 정신과 문화의 범 세계화 세계를 도모하는 미국적 민족주의 )이 있다면, 우리 한민족은 인류 역사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다문화 우리 정신을 민족 고유의 정체성으로 간직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예로부터 다문화 우리 정신으로 하늘의 순리를 존중하여 하늘 무서운 줄 알았고, 땅을 어머니처럼 사랑하였으며, 나와 남이 하나인 ‘우리’ 들로서 사람을 사랑하였다.

 한국인의 이러한 의식구조에서 ‘우리’ 속에서의 나는 개체의 구별 없이 한데 어우러져 하나가 된다. 한국인에게 ‘우리’는 불특정한 독립된 개체인 ‘나(I)’의 복수의 개념으로서의 별도의 우리(WE)가 아니라, "울타리를 의미하는 '울'+ 사람의 옛말인 '이'의 합성어"로서 ‘울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단수개념의 뜻이다. 울안에 있으면 나와 너라는 개체의 구별이 없이 한 몸으로 생사를 나누는 운명공동체가 되어, 혼자건 여럿이건 하나의 사람으로서 평등하게 한데 어울려져 “너와 나가 하나로 합쳐져서 운명을 같이 하는 우리”가 되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다문화 우리정신 때문에 두레라는 절묘한 문화공동체를 이루는데, 우리 속에 있는 ‘나’ 들이 잘 어울려 협동하고 있으면 시너지 효과에 의하여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강한 우리가 되지만, 불화를 일으키는 날에는 개체로서의 에너지마저도 약화되어서 차라리 혼자 있느니만 못한 극한의 이기주의로 변하기도 한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인의 심성을 흔히 모래알이나 냄비 같다고 비유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오랜 세월 동안 짓눌리고 핍박받아온 삶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을 잘못 표현한 것이다. 

 한국인의 특성 중의 하나가 정서적 교감이 이루어지면 불같이 일어난다는 특징이다. 이것은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 불의를 싫어하고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외면하지 못하는 DNA가 억눌린 정서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와 같다. 그래서인지 평상시의 한국인은 불의나 남의 불행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한국사회에서 이처럼 이기주의가 발달한 이유는 불의와 불행이 나의 일처럼 만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한국인에게 주어지는 핍박이 내가 아닌 가족에게 미치고 나아가서는 한국인 전체의 존망을 위협한다고 생각될 때에 이기주의는 오히려 거센 반발력으로 폭발하여 위기를 이기는 시너지가 된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이기주의는 이처럼 가족이라는 우리를 위하여 나라는 개체를 희생하는 이타적 행동의 하나이고, 우리라는 대의(大義)를 위하여 나라는 소아(小我)를 희생하는 공동체적 성향 때문에 나타나는 자기방어체계의 하나이다.      


 한국의 언어에서도 이와 같은 공동체적인 성향이 잘 나타나 있어서 ‘나’와‘너’는 사람을 의미하는 이(니)로 부터 생겨난 어원상 같은 줄기로서 주(主)와 객(客)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인식되며, 타인을 의미할 때의 남 또한 나에서 파생되어 생겨 남(생:生)을 의미한다. 그런 한국인의 심성에서 남은 나에서 나온 존재이므로 나와 남을 별개로 생각하지 않고 생리적으로 하나의 우리로 인식해 왔다. 그리고 이와 같은 우리 민족의 공동체 의식은 사람이 죽으면 독립의 관(棺)을 쓰지 않고 모두 석실묘에 함께 넣거나, 혹은 가매장하여 살이 다 썩으면 그 뼈만 추려서 같은 석곽(石槨) 속에 함께 넣음으로써 죽음까지 하나로 묶는 독특한 장례의식으로까지 발전한다. 

 우리 한민족은 이처럼 전통적으로 나와 남을 합일된 하나로 생각하면서 이웃과 고락을 함께해왔다. 그래서 분에 넘치는 지위나 재물에서 스스로를 삼가 할 줄 알았으며, 배고파하는 자에게 빵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는 일을 선악의 가치관에서 생각하지 않고 나와 하나인 우리의 일원으로서 가져야 할 당연한 일로 생각하였다. 그러한 의식구조에서 우리 한국인은 거의 ‘나’라는 말 대신 ‘우리’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즉 나의 회사, 나의 나라란 말 대신 우리 회사, 우리나라로 부른다. 심지어 아내조차 우리 아내라고 말하여 외국인들을 당황시키기도 한다. 이와 같은 한국인의 자타일여(自他一如)의 정신은 뿌리 깊은 역사와 함께 우리라는 말의 뜻 속에 함의되어, 너와 나 인간은 모두가 한 가족이며 똑같이 귀한 존재라는 평등의식과 함께 어우러져 조화롭게 살아가는 평화로운 공동체적 가치관이 깔려있다. 


 한국인의 약 반만년에 이르는 오랜 역사 속에서 혈연이나 이웃 등의 공동체를 믿고 사는 마음가짐은 평등 지향적 민족 철학으로 다듬어져 왔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은 지도자를 따라다니며 두려움에 떠는 다른 농경문화의 여러 나라들과는 달리, 예로부터 상하 간의 계급의식을 떠나서 순리에 따라서 질서와 예절을 지키며 생활하고 행동하였다. 

 우리 민족 특유의 상부상조하고, 정이 깊고, 우애와 효심과 사랑을 중시하는 정서는 바로 이런 우리 의식 속에서 싹튼 것이다. 우리민족 특유의 이러한 공동체 의식은 회사에 대한 애사심으로 이어져 경제발전의 초석이 되었고, 이웃과 동료에 대한 사상으로 이어져 정이 깊고 배려있는 사회문화를 형성하였다. 

 반면 한국사회에 유교가 전해진 이후로 ‘우리’라는  공동체적 의식이 당파를 이루고 이익집단을 이루는 탐욕적인 패거리문화를 낳는 폐해로 작용하기도 하였으며, 오늘날까지도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악습으로 이어져 국가와 사회가 발전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악습은 기원후의 세계 역사 속에서 중국을 비롯한 인접 국가에 의한 외래철학사상의 영향을 받아 바뀐 잘못된 삶의 가치관에서 생겨난 현상으로써 우리 한국사회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숙제라 할 것이다. 



 2. 선교의 제천문화


 선교의 제천문화는 홍익인간사상을 바탕으로 하늘을 경배하였던 고대 한국의 문화유산이며, 천도(天道)와 인간세상의 도리(道理)를 동일시하였던 인류 고대의 기원전 문화유산이다. 

 제천문화(祭天文化)의 상징물인 솟대와 웅상과 돌탑은 시대를 앞서 홍익인간의 도를 실천하며 제천문화(祭天文化)의 유습을 이어간 선인(仙人)들의 상징물이며, 선교의 제천문화를 통하여 인류역사에서 고조선시대가 열려 대한민국으로 이어졌으므로 우리민족을 배달민족이라 부르게 된다.    

 중국의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2월에 동쪽으로 순수(巡守)하여 태산(泰山)에 이르러 천제에게 제를 올리고 멀리서 바라보며 산천에 제를 올렸다. 마침내 동방의 왕을 알현하고 일 년의 달과 날을 협의하였다.”고 기록하여 우리 제천의례의 유습이 고대 중국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제천문화에서는 천신(天神) 환인(桓因)이 인간을 비롯한 우주만물의 창조주인 하느님이 되고, 하느님의 아들로서 신단수로 내려온 천주신(天柱神) 환웅(桓雄)이 인류의 구세주인 하나님인 동시에 우리민족의 시조가 되며, 하느님의 손자이며 하나님의 아들인 단군이 우리 대한민국의 건국시조인 동시에 인류최초의 홍익인간이자 신성인간(神性人間)이 되며, 우리 한민족과 대한민국의 국민이 천손(天孫)이 됨으로 하늘의 계시를 받은 신성한 민족국가라는 의미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린다. 

 우리가 잠시만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면 우리네 마을 입구에 있는 당산나무에서부터 솟대,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서낭당, 사찰마다 모셔진 대운전과 산신각(삼성각), 바위신앙, 제사, 굿 등 우리 민족이 5천여 년 동안 그 순수성을 지켜온 제천문화의 유적들은 즐비하다. 대한민국의 제사문화 역시 원래 선교를 바탕으로 조상의 제례와 하늘에 지내는 천제가 별개가 아닌 하나로서 일치된 제천제례의식(祭祀祭禮儀式)이 고유한 제천문화의 전통이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한민족 고유의 미덕으로 알려졌던 경배의식 또한 제천제례의식의 하늘과 죽은 조상을 하나로 여기는 정신으로 부터 기인한 것이다. 


  우리 민족은 삼한시대 이전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을 신시, 소도, 선황단, 선왕단, 환구단, 삼성당 등으로 부르면서 제천문화의 유습을 지켜왔다. 

 우리 한국고기에는 우리 고대의 제천문화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남아있으며, 중국의 사서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수서(隨書) 등 여러 문헌에서도 우리민족을 동이라고 하여 천제를 지내는 깨인 민족으로 기록하고 있고, 서방에서도 천신을 숭배하는 종교문화와 천신숭배의 상징물인 거석문화를 통하여 세계에 제천문화를 전파한 동방박사의 비사(秘史)를 담고 있다. 문헌들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 동이족은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농사의 절기와 관련하여 소도에 제를 올렸는데, 이를 신교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때 지내는 제를 ‘철 무리 굿’이라 하였는데, " 철무리 굿은 봄, 가을 ,겨울 3번에 나누어 행해졌다. 봄에 이루어지는 ‘춘분마지’는 우리민족의 근원이 해가 각수(角宿)에 드는 춘분에 있다고 하여 이를 기리는 굿이다. 우리 조상들은 스스로를 각수라고 생각하였고(태현경), 이괘(夷卦) 즉 ‘이(夷)가 해를 맞이하는 천제’를 ‘춘분마지’라고 하였다. ‘이’에 속하는 사람들을 구이라고 하였으며 또 동이족이라고 하였는데, 동이족은 ’동쪽하늘에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종족들‘이라는 뜻이다.  가을에 이루어지는 '추분마지’는 가을걷이를 하면서 농사를 마감하는 굿이 된다. 새해에 이루어지는 '동지마지’는 동지가 당시에 세수(歲首)였으므로, 이 세수를 기리는 굿으로 자리를 잡았다. 나라를 세울 때에는 이 세수 때 나라를 세우면서 천제를 지냈다. 이 때 행한 굿이 ‘동지마지’이다." 고 전하고 있다. 

 제천문화의 유습은 삼한시대로 전해져 봄과 가을 그리고 해를 맞이하는 세수에 하늘의 신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전통으로 오늘날 까지 이어졌다. 우리 한국고기에서는"멀리 삼한 시대로 부터 진, 읍루, 옥저, 동예, 삼한, 이서, 부여,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등과 함께 가깝게는 조선에 이르기 까지 수없이 기나긴 세월동안 우리민족은 제천의례를 올리면서 제천제사의례의 전통을 이어왔다”고 하여 이러한 사실을 전하고 있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서도 “섣달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큰 모임이 날마다 이어지며, ~ 이름하여 영고(迎鼓)라고 한다. 이때에 형옥을 끊고 죄수를 풀어주기도 한다. 군사를 일으킬 때 또한 하늘에 제사 지낸다. ~ 귀신과 사직과 영성에 제사지내기를 좋아하는데, 10월이 되면 하늘에 제사 지내는 큰 모임을 가지니 이름하여 동맹(東盟)이라 한다.~ 항상 10월이 되면 하늘에 제사 지냄에 ~ 그것을 무천(舞天)이라 한다. ~ 항상 5월에 밭갈이가 끝나면 귀신에 제사 지내는데 ~ 10월에 농사가 끝나면 또한 다시 이와 같이 하였다.』


  제천문화는 세종실록지리지 강화도호부편에서도 “세종대왕께서도 매년 마니산 참성단에 신하를 보내 천제를 지냈다.”고 하여 그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조선 개화기에 예배를 통한 기독교의 전파가 한국인에게 쉽게 전해질 수 있었던 것도 제천문화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 추정된다. 한국에 기독천주교를 포교하였던 제임스스콧 게일(James Scarth Gale1863~1937), 언더우드(Underwood,1859~1916) 등의 많은 선교사들은 “한국에는 이미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기독교를 선교하기가 쉬웠다.”고 밝힘으로써 이러한 사실들을 입증하고 있다.  

 제천제사의례(祭天祭祀儀禮)는 오랜 세월동안 중국문화권의 영향을 받으면서 하늘에 천제를 올리는 제천의례와 죽은 조상을 기리는 제사의례로 나누어졌다. 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제천의례는 대중의 의식에서 잊히어져 대부분 사라지고, 설과 추석에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제사의식만이 유교와 접하여 그 모습이 변하면서 지금의 제사문화의 유습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그러나 요즈음은 제사문화 역시 점점 사라져 가고 있으며, 부모나 선배 혹은 조상에 대한 의식마저 희박해져 가면서 우리 제천문화의 유습이 언제까지 보존될 것인지 알 수 없는 안타까운 형편이다.      



 

제천문화의 근원이 되었던 제천의례의 흔적이 끊어진 것은 일제(日帝) 시대에 단군의 제사가 끊어진 때부터이다.

오늘날에는 제천문화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지만, 개천절에 천도교 단체인 헌정회에서 행하는 개천대제와 전국체전 등과 같은 기념일에 마니산 참성단에서 행해지는 축제와 성화 봉송의식 등에서 그 명맥만이 남아있으며, 나머지 제사의식들도 전술하고 있듯 많은 부분 불교문화와 유교문화를 받아들여 변질되었고, 그나마도 서구식 문화에 동화된 개인주의와 물질문명 속에서 차츰 그 흔적이 사라져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해있다. 


 장마당은 최근까지도 장터의 노래자랑과 서커스' 소싸움 등의 축제 문화에 제시의 흔적이 남아 있었으나, 백화점 등의 대형 쇼칭몰과 인터넷 등 방송 쇼핑몰의 활성화로 시장이 침체되면서 점차 사라지고 없으며, 지역의 장날 축제에서 그 명맥만 살아남아 있고 있다. 



 

 선교의 홍익인간정치사상과 제천문화는 우리 한민족 고유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민족 고유정체성이 그 민족 그 국가에 머문다면, 한민족의 홍익인간정치사상의 다문화 우리 정신과 선교의 제천문화는 세계를 향하여 뻗어 나간다는 것이 뛰어난 점이다. 

 고조선 시대에 세계 곳곳에 선교를 전파하였던 신교의 동방정책과 서방정책은 한민족의 다문화 우리 정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리고 세계의 모든 종교들은 제천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제천문화 중에 제일 먼저 시작된 것이 선교의 제천문화이다. 

 선교의 동방정책과 서방 정책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날 인류공영의 지구 공동체 정신이 세계의 정치문화와 기독·천주교와 불교를 비롯한 종교문화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선교의 제천문화의 상징인 철무리 굿에서 내는 소리를 신명(神明)이라고 하는데, 한민족의 신명은 k팝을 통하여 발현되어 세계에 널리 퍼져 신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신명은 흔히 서구에서 영어로 영혼 또는 정신이라는 의미로 소울( Soul)이라고 표현하는데, 한국에서는 마음에 잊지 못할 깊은 감동을 일으킨다는 의미로 "심금(心琴)을 울리는 소리"라고 한다. 신라 때 가야금을 타던 악공을 '금(琴)자이' 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 심금의 금은 가야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천부삼인 중 하나인 금척(琴尺)의 금과도 같은 단어이다.  가야금의 현을 퉁길 때 들리는 다른 악기와는 차원이 다른 중후한 소리를 들어 보면, 신명·소울·심금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금척 역시 치수 도구로 인간의 생명을 다스리는 데 사용된다.  살펴본 것처럼 신명' 소울' 심금은 단순히 정신과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참나 즉 진여를 건드려 마음의 전율을 일으키는 소리를 의미한다.      


 만약 신교의 동방정책과 서방 정책이 사실이라면,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자신이 바라던 바라지 않던, 혹은 지금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던, 천손인 배달민족의 정신을 이어받은 홍익인간의 씨앗일런지도 모른다.  

또한 만약 신교의 동방정책과 서방 정책이 사실이라면,  어쩌면 한국에서 일어난 k팝·영화·한식·화장품 등의 문화 열풍이 세계를 뒤흔들어 외국인들이 한국으로 몰려들게 하는 힘이 되고 있는 한류(韓流)라는 문화 현상 역시 우연이 아닌 준비된 필연일런지도 모른다. 

 따라서 천신(天神)의 아들이면서도 인간 세상을 위하여 가진 것을 내려놓은 하나님 환웅(桓雄)이야말로 진정한 인류의 구세주요 그리스도라 할 수 있으며, 천신(天神)의 손자로서 속세를 벗어난 홍익인간으로 태어나 깨달음을 통해 신격의 신성인간(神聖人間)이 되지만 세속에서 사람들에게 평화와 행복의 깨달음을 전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긴 단군(檀君)이야말로 깨달음을 얻은 진정한 부처(佛陀)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의 종교문화를 선도하는 기독·천주교(基督'天主敎)와 불교와 유교 등의 시원과 현대민주정치의 시원을 고대 한국의 홍익인간정치사상에서 찾아보는 연유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 해설 단군신화(45) "신교(神敎)의 동방 전파(동방정책)" 편에서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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