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바람 Oct 19. 2023

해설 단군신화(54)

삼한시대 1(고조선 멸망) : 진시황의 춘추전국 통일과 분서갱유

 진시황이 삼한춘추전국통일에 삼한조선이 포함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만약 진시황의 삼한춘추전국통일에 삼한조선이 포함된다면, 삼한춘추전국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 되고, 이때에 고조선이 멸망한 것이 된다. 그러나 만약 진시황의 춘추전국통일에 중국의 춘추전국만 포함된다면, 삼한조선의 역사는 계속되고, 고조선은 한사군 설치 때 멸망한 것이 된다. 


 중국 역사는 중국 위주로 왜곡되어 있고, 한국의 역사는 정사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여기서는 진시황 때의 분서갱유를 토대로 삼아 진시황의 삼한춘추전국 통일에 삼한조선을 포함하였다.


 이 때의 일을 단군신화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後還隱於阿斯達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歲 ( 후환은어아사달위산신。수일천구백팔세)"

번역하면 "후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이 되었다. 이때그의 나이 천구백팔세 였다."로 해석된다.


  진시황이 세운 진나라에 대해 살펴보았다. 



 


 삼한춘추전국시대의 혼란 속에서 이 세상에는 천도를 믿는 사람들이 차츰 사라져갔고, 진시황(秦始皇)이 삼한춘추전국의 군웅들을 통합함으로써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諸子百家)는 막을 내린다.      

 

  진시황(秦始皇:B.C.247~B.C.210)은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 대진국(大秦國: B.C.221~B.C.210  )을 세워 군현제(郡縣制)라는 중앙집권적 체제를 실시함으로써  더욱 강력한 전제군주국가(專制君主國家)를 만들었다. 

 진시황은 아방궁(阿房宮)과 만리장성(萬里長城)과 병마용갱(兵馬俑坑) 그리고 불로장생을 꿈꾸며 서불(徐市) 일행을 삼신산(三神山)으로 보냈던 불로초(不老草)의 이야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또한 시황제(始皇帝)는 고조선의 우리 문화역사를 완전히 지운 인물로서 시황제가 일으킨 고조선과 관계있는 사건은 서불의 불노초 사건과 분서갱유(焚書坑儒)이다.   특히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 속에는 사라진 선교의 정신과 함께 고조선(古朝鮮)의 아픈 역사가 숨겨져 있다.         


(1) 분서갱유 사건


  분서갱유는 말 그대로 “책을 불사르고 유학자를 땅에 묻는다.”는 뜻으로서, 진나라 승상 이사에 의하여 자행되었던 천인공노할 사건이다. 

 이사는 초나라 상채(上蔡, 지금의 하남성 상채시)사람으로, 진시황의 아버지 장양왕(莊襄王)이 죽고 상국(相國) 여불위(呂不韋)가 집권하고 있을 때 진나라로 들어가 여불위의 사인(舍人)으로 식객으로 지내다 총명함을 인정받았고, 여불위에 의해 랑(郞)에 임명되어 후일 진시황을 만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사는 후에 진왕이 등극하자 유세를 펼쳐 객경(客卿)이 되었고, 진왕이 진시황이 되었을 때는 승승장구하여 승상(丞相)에 까지 올랐다.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 B.C.210, 즉위 34년)에 대한 중국문화권의 해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분서갱유(焚書坑儒)는 분서(焚書)와 갱유(坑儒)의 합성어이다. 


 중국사서에서 분서(焚書)는 진나라의 승상 이사(李斯)가 시황제(始皇帝)에게 " 봉건시대에는 제후들 간에 전쟁이 끊이질 않아 천하가 어지러웠으나 이제는 통일이 되었고, 법령도 일괄적으로 한 곳에서 발령되어 사회의 안정을 찾았습니다. 하오나 옛 책을 배운 사람들 중에는 그것만을 옳다고 생각해 새로운 법령이나 정책에 대해서 비방하는 선비들이 있습니다. 하오니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의약, 복서, 종수(농업)에 관한 책과 진(秦)나라 역사서 외에는 모두 수거하여 불태워 없애 버리소서."라는 탄압책을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시황제(始皇帝)가 이에 이사(李斯)의 말을 그대로 따라 " 관청에 제출된 책들이 속속 불태웠는데, 당시는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이라 책은 대나무로 만든 죽간(竹簡)에 쓰여 있어 복원할 수 없이 사라진 희귀한 책들이 많았다. 이 일을 분서(焚書)라고 한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갱유(坑儒)에 대해서는 “이듬해 아방궁이 건립되자 시황제는 불로장수의 신선술법을 닦는 방사들을 불러들여 후대했다. 그들 중 특히 노생과 후생을 신임했으나, 두 방사는 많은 재물을 사취한 뒤 시황제의 부덕을 비난하며 종적을 감춰 버렸다. 시황제는 진노했고, 화가 나 있던 차에 시중의 염탐꾼을 감독하는 관리로부터 폐하를 비방하는 관리들을 잡아들였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엄중히 심문한 결과 연루자는 460명이나 되었는데 시황제의 노여움은 극에 달하여 그들을 모두 산채로 각각 구덩이에 파묻어 죽였다. 이 일을 가리켜 갱유(坑儒)라고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중국문화권에 의한 분서갱유에 대한 내용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당시 불태워진 의약, 복서, 종수(농업)에 관한 책과 진(秦)나라 역사서 외의 서적(書籍), 그리고 신선술사(神仙術士)를 비롯한 유가(儒家)와 방사(放士)의 실체에 대한 의구심을 느끼게 된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철학사상에서는 분서갱유를 “왕권통치와 부국강병을 중시한 한비자(韓非子)·상앙(商鞅)·이사(李斯) 등에 의해 주장된 법가(法家)와 천명에 의한 인의와 예지를 중시한 유가(儒家) 사이의 이념적 갈등에 의한 사건이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진나라 안정기에 속하는 기원전 350여 년경으로부터 진시황의 통일까지의 100여년에 이르는 역사와 사상의 바탕이 되는 한비자(韓非子)·상앙(商鞅)·이사(李斯) 등의 사상은 공자와 맹자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진나라의 통일의 역사는 불과 15년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짧아서 자체적인 철학사상이 생겨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기에 공자와 맹자를 근원으로 볼 수밖에는 없다. 그러니 이런 가설은 자가당착으로 잘봇된 규정이다.  


 사실 법가의 " 천명(天命)과 천도(天道)를 인정하면서 한편으로 사인(事人: 인간을 섬김)이 사귀(事鬼:귀신을 섬김)보다 중하고, 지성(知生:삶을 아는 것)이 지귀(知死:죽음을 아는 것)보다 중하다"는 사상은 공자의 사상보다는 고조선 선교의 철학사상인 홍익인간사상에 가깝다. 또한 진나라의 역사와 문화는 춘추전국시대의 중국역사와 문화로부터 발전하였으며, 진나라의 철학사상과 서적들은 춘추전국시대의 철학사상과 문화로부터 발전하였고,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와 철학사상과 문화의 시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조선의 역사와 선교의 철학사상과 문화가 있다. 이런 점을 통하여 살펴보면 분서갱유에 대한 정확하면서 동양철학과도 일치하는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있다. 

 분서갱유에서 언급하고 있는 진나라 백성들에게 필요한 책과 진나라의 책이 아닌 모든 서적은 곧 고조선에 관한 서적과 중국문화권서적 중에서 고조선과 관련이 있는 서적을 의미하는 것이 맞고, 또 유학자를 일컬어 선비(鮮卑) 혹은 신선술을 쓰는 방사(放士)로 표현하였으니 곧 우리 고대의 선비 즉 선인을 비하하는 말이라고 할 것이다. 

 종합해보면 중국사서의 분서갱유는 중국문화권의 것이 아닌 우리 한국 고유의 선교 철학사상과 관련이 있는 제자백가의 서적과 선비정신을 사멸시켰다는 의미이고, 삼한춘추전국시대에도 부도의 역사에 해당하는 고조선의 천도사상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2) 서불의 불노초 사건


 참고로 서불의 불노초 시건을 살펴보았다. 


 진시황은 기원전 221년에 불로장생을 위한 영약을 구하기 위해 신하들을 내보내 불로초를 구하러 사방으로 보냈으나 불로초를 구해오지 못했다. 

 당시 서복(徐福), 또는 서불(徐巿)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서복은 기원전 255년의 고대 중국에 제나라에서 태어났고, 기원전 219년 방사로 진시황에게 중용되어 진(秦)나라 사람으로 살고있었다. 

 진시황은 그에게 불노초를 구해오라고 하였다. 사마천의 사기 권6 진시황본기 및 권 118 회남형산열전(淮南衝山列伝)에 기록된 대목은 다음과 같다.   

  

   진시황본기 (진시황 28년)

  제나라 사람 서불(徐巿) 등이 글을 올려 "바다에 봉래(蓬山), 방장(方丈), 영주(瀛洲)라는 삼신산에 신선이 살고 있습니다. 청컨대 목욕재계하시고, 어린 남녀 아이를 데리고 신선을 찾게 해주십시오"라고 했다. 이에 서불을 보내 어린 남녀 아이 수천 명을 선발하여 바다로 나가 신선을 찾게 했다.  


 진시황본기( 진시황 35년) 

 시황이 대노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전에 천하의 쓸모없는 책들을 거두어 모두 불태우게 하고, 학자와 방사들을 아주 많이 모조리 불러 모아 태평을 이루려 했더니 방사들이 단약을 구워 기이한 약을 만들자고 했다. 지금 듣자하니 한중(韓衆, 한종)은 가더니 소식이 없고, 서불 등은 거금을 쓰고도 끝내 약을 구하지 못했다. 간사한 놈들이 서로 이익을 챙기고 고발한다는 말만 날마다 듣고 있다. 노생 등을 내가 존중해서 잘 대했거늘 지금 나를 비방하며 나의 부덕을 무겁게 하고 있다. 함양에 있는 이런 방사들을 조사해 보았더니 요망한 말로 검수(黔首)를 어지럽히는 자들도 있었다."


③ 진시황본기 (진시황 37년)

 방사 서불 등은 바다로 가서 선약을 구하길 몇 해가 지나도록 구하지 못하고 비용만 허비하자 문책 받을 것을 두려워해 거짓으로 "봉래의 선약은 구할 수는 있으나 커다란 상어 때문에 늘 어려움을 당하다보니 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원하옵건대 활 잘 쏘는 사람을 함께 보내 상어를 보는 즉시 연속 발사되는 석궁을 쏘면 됩니다"라고 했다. 


  회남형산열전

 시황은 서복(徐福)을 바다로 나아가게 하여 신기하고 기이한 물건들을 구해오도록 했다. 그러나 빈손으로 돌아왔다. 

 시황이 묻자 서복은 " 신이 바다 한 가운데서 대신(大神)을 보았는데 말하기를 '너는 서쪽 땅 황제의 사자가 아니더냐?'라고 물어서 신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대신이 '무엇을 구하려고 왔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복용하면 수명을 더하여 연장할 수 있는 신약을 찾기 위해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신이 말했습니다. ' 너희 진왕은 예의가 박하여, 그 약을 볼 수는 있으나 얻어서 복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신이 즉시 그 대신을 따라 동남쪽의 봉래산에 이르러 영지(靈芝)로 이루진 궁궐을 보았는데, 구리빛을 띤 용의 형상을 한 사자가 나타나 하늘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신이 재배하고 '마땅히 무엇을 바쳐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해신이 대답하기를 '양가집 사내 아이와 계집아이 그리고 백공(百工)을 바치면 얻을 수 있으리라!" 라고 대답했다.     

 이에 진황제가 크게 기뻐하며 동남 동녀 3천 명과 오곡의 각종 씨앗과 백공들이 만든 물건들을 가져가게 했다. 서복은 비옥하고 넓은 평원을 얻자 그곳의 왕이 되어 그곳에 머물며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당시 진시황은 수은 중독의 영향도 있고 암살에 대한 노이로제, 불로불사에 대한 집착 등이 겹쳐 말년에 꽤 광폭한 행보를 보였는데, 그래서 무리한 만리장성 건설과 분서갱유등의 악명을 떨치고 본인에게 불로초를 찾거나 수은을 먹거나 하는 불사에 대한 집착을 한 행적도 있었다 보니 점점 제정신이 아닌 시황제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불로초를 찾는 빌미로 영원히 도주했다는 설도 나오기도 한다.

사실 서복이 진시황을 두번이나 속이고도 무사히 탈출한 것을 보면 배짱있게 황제를 구워 삶고 의심을 풀고 환심을 살 정도로 본인의 화술이나 인간적인 매력, 인맥 등이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복의 여행에는 60척의 배와 5,000명의 일행, 3,000명의 동남동녀와 각각 다른 분야의 장인들이 동반했다고 한다. 원전 210년 그는 진황도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으며, 이후 행보는 정사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중국 남부로 도망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불로불사의 영약을 구하기 위해 먼 바다로 떠났다는 신비로운 소재를 후세 사람들에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서복 자신이 부귀영화를 누렸다기 보다는, 그런 행보로 다른 이들이 그 혜택을 보았다는 얘기가 많다.     


 한국에서 서복은 남해안을 거쳐 제주도로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도는 이미 삼국지(三國志) 및 후한서(後漢書)에 주호(州胡)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제주시 용담동의 산지항에서 전한 시대의 화폐인 오수전을 비롯해서, 신나라 때에 만들어진 화천(貨泉), 대천오십(大泉五十), 화포(貨布) 및 구리거울 등이 발굴되었다.

 서복 집단이 정말 제주도에 이르렀는지, 사기에 언급된 영주산이 정말 지금의 제주도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으며, 제주를 방문했을 가능성이 있는 서복 선단의 성격에 대해서는 진시황의 동방 개척 정책의 일환(윤명철)이라는 등의 다양한 주장이 있다.    

 다만 불로초(不老草)'라는 말은 한반도에서 독자적으로 쓰는 표현이며 중국과 일본에서는 이것을 불로초라고 부르지 않는다. 당장 위키피디아의 중문, 또는 일문 페이지에서 한자로 검색을 해봐도 불로초라는 용어로 된 문서는 없다. 대신 선단(仙丹)' 단약(丹藥)' 선약(仙藥)으로 부르는데, 한국에서도 선단' 선약이라는 용어는 그다지 높은 빈도는 아니지만 고조선 선도 선도수련법의 선단(仙丹)과 관련하여 통용되고 있다.   

                  

 일본 와카야마현에도 서복 관련 전설이 많다. 단고 반도(丹後半島)에 있는 니이사키 신사(新井崎神社)에 전해지는 《신대명신구비기》(新大明神口碑記)라는 고문서에는 중국의 전설을 그대로 인용하여 서복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그외에도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나오는데, 여기서는 심해에 있으며 가시들이 많고 찔린 순간 젊음을 되찾는 아이템이라고 나온다. 어느 문화권이던 불로불사의 대한 인류의 열망이 잘 드러나는 이야기라고 할수 있는데, 고문서로 전해지는 것으로 유물유적으로 발견된 것이기에 신빙성이 떨어진다.   



 한국고기에 의하면 고조선은 B.C 238년, 마지막 단군 고열가에서 마침내 대통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어 단군조선을 폐(閉)하고 입산을 함으로써 끝을 맺었다. 이것을 보면 고조선시대(古朝鮮時代)의 역사는 진시황 때에 막을 내리게 된다. 

 다만 이 때 고조선이 멸망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진시황의 삼한춘추전국통일 때 멸망하고, 이때부터 고조선의 유민들이 한반도로 거주지를 옮기기 시작하여 분서갱유를 기점으로 절정에 오르고, 후에 한사군 설치로 한반도 이주가 끝나는 것으로 보이는데, 삼한시대 초기에 속하는 이때를 한국고기에서는 오가통치시대라 한다. 오가통치시대는 삼한조선의 유민들이 마가(馬加)' 우가(牛加)' 구가(狗加)' 저가(豬加)' 양가(羊加)의 무리로 나누어졌던 시기를 말한다. 


 분서갱유로 인하여 부도의 역사가 막을 내림으로써 우리 한국사에서 고조선(古朝鮮)의 역사와 소리글자가 묻히어지게 되는데, 소리글자의 전통은 근대조선(近代朝鮮)에 이르러서야 세종대왕(世宗大王)에 의하여 재현되어 오늘날 까지 사용되게 된다. 그리고 분서갱유를 계기로 하나님의 말로 이루어진 부도(付都)의 언약서(言約書)는 서양 종교의 일부가 된다. 

  분서갱유가 한국역사에 미친 영향은 이처럼 지대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단군이 불노장생(不老長生)의 상징인 산신(山神)이 되었기 때문이다. 산신이 되었다는 것은 신으로 천화하여 영생한다는 의미와 차원을 바꾸어 환생을 거듭함으로써 뜻을 이어간다는 의미이다. 후자가 되던 전자가 되던 단군은 한민족의 역사에 살아남았을 것이고, 그것은 한민족의 한반도 이주로 이어진다. 


 고조선 멸망시 단군의 나이는 1,908세이다. 이것을 계산하면 B.C 425년이 된다. 그러면 고조선 멸망기는 B.C 425년~ 고열가 단군기인 B.C 238년 혹은 B.C 425년~ 진시황의 춘추전국 통일기인 B.C 221년으로 약 187년~ 204년 정도의 긴 기간이 된다. 

 만약 일개 국가의 멸망이었다면, 역사 속의 수많은 국가 멸망에서 그랬듯이 구려조선에서 기자조선으로 바뀐 경우처럼 일시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고조선은 종교나라의 멸망기이기 때문에 수많은 종교분국들이 거의 다 망해서 종교단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해야 멸망하는 것임으로 이처럼 기간이 길 수 밖에 없다.  


 진(秦)은 첫번 째 황제인 진 시황제가 죽은 뒤 불안정한 상태가 되었으며, 불과 14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반란에 의해 무너지게 되었다. 두 명의 반란 주동자였던 초(楚)의 항우와 한(漢)의 유방은 다시 18개의 제후국으로 갈라진 중국의 패권을 잡기 위해 전쟁을 했는데, 삼한시대 초기에 속하는 오가통치시대에 해당하는 때로 중국역사에서는 이때를 초한쟁패기라 한다. 



- 해설 단군신화(55) " 삼한시대 2(한민족 한반도 이주) : 초한 쟁패기와 한나라 건국" 편에서 계속됩니다. -

작가의 이전글 해설 단군신화(5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