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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사진 에세이 #2

JANUARY 02

by 리앤

01/16

왜 옛날에는 코흘리개 아이들이 많았을까요.


3살 아들을 키우는 요즘 콧물 때문에 아주 골치가 아픕니다. 휴지로 닦아 내어도 될 것을 아이는 어느 날부터 아주 쉬운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팔로 스윽 문지르는 것인데요. 뭐라 하니까 이제는 뒤로 한 번 더 콧물을 비벼대고 흔적을 없애려고 합니다.

그래도 엄마들은 재빨리 알아채지요. 감기도 아닌데 아침마다 재채기를 하고 콧물을 흘리는 아이 때문에 코흘리개는 옛날에만 있었냐, 는 질문은 쏙 들어가게 됩니다.







01/17

1월, 겨울이 아직 한참이지요. 그러나 예쁜 구름에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아이는 자전거 헬멧을 쓰고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으레 자전거를 타려면 헬멧은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습관은 그런 것 같습니다. 내 생활의 기본을 지키고 매너를 지키는 일이 습관이 되면 매우 쉬우니까요.

내가 바꾸고 싶은 나의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면 미래에는 '되고 싶은 나'가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01/18

한국에서 친정엄마로부터 소포를 받았습니다.

아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 두 개와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맛있고 비싼 김을 200장 보내왔습니다. 엄마의 온기가 일주일 걸려 미국 동부에 도착한 것입니다. 꽁꽁 묶은 비닐봉지에도 엄마만의 방식이 느껴집니다. 아이의 장난감을 사면서 아이가 신이나 가지고 노는 상상을 또 얼마나 했을까 싶습니다. 예전만큼 저렴하게 보낼 수도 없는 해외 소포를 최근 들어 두 번이나 보내는 엄마.

돈보다 더 큰 사랑이 집 대문을 두 번이나 노크하게 합니다.






01/19

한국에서 혼자 살 때부터 키우던 강아지 말티즈입니다. 먼 이국땅으로 함께 14시간의 비행을 견디며 왔던 아이입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늘 집에서 잠만 잡니다. 가족이 외출을 할 때도 관심이 없고 잠만 잡니다. 한참 때는 집에 혼자 남겨지는 것조차 싫어 현관문을 긁어대던 아이였죠. 이사가 잦은 저를 따라다니며 시나브로 익숙해지고 안정을 찾더니 급기야는 나가든지 말든지가 되었습니다.

편해지긴 했지만 안쓰러운 마음이 한 구석에 자리 잡습니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니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그래도 강아지의 나이는 사람보다 빨라 금세 할머니가 된 아이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해집니다. 그래도 부디 건강하게 오래 살거라~






01/20

한국 치킨은 이곳에서도 열풍입니다. 너무 한정된 미국 음식이 뻔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할 만합니다. 햄버거, 파스타, 샐러드, 샌드위치, 스테이크. 가끔 먹으면 맛있지만 미국에 오래 살다 보니 그것만 빼고 다른 먹거리를 찾고 싶어 집니다. 그럴 때쯤 나타난 게 바로 어니언 스노우 치킨이었는데 새로운 메뉴에 눈이 하트가 되었었지요. 한국의 개발 메뉴들이 이곳 미국에서 많이 사랑받으면 좋겠습니다.






01/21

아이가 물고기를 좋아해서 베타를 들이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베타는 아니었습니다. 이 작은 어항에 까만 아이, 하얀 아이 그리고 점박이 달마시안 물고기 등 여섯 마리를 사서 넣었었지요. 그런데 하나 둘 죽어갔습니다. 이유인즉슨 여러 마리가 함께 살기에 어항이 너무 좁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펫스마트 매장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당신이라면 물고기 몇 마리를 넣을래?"

"한 마리 아니면 두 마리."

그래서 고르게 된 물고기가 베타였습니다. 베타는 혼자만 살아야 하는 아이라네요. 다른 물고기가 들어오면 같은 종이어도 물고 뜯고 싸워서 결국 끝장을 본다고 합니다.

사람도 이런 성격의 사람에게는 가까이 가지 않게 되지요. 결국 혼자 살아야 되는 쓸쓸함을 견뎌야 할 텐데.

신기하게도 베타는 의기양양하게 어항 전체를 누리며 또 긴 꼬리를 흐느적거리며 우아하게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었다면 벌써 외로워 죽었을 것도 같습니다.






01/22

아귀찜.

엄마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아귀찜입니다. 친정엄마는 시인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구를 보며 그저 맛있겠다, 라는 것 외에는 별 감흥이 없습니다.

아귀찜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첫 회사 입사 때 환영회에서 먹었던 메뉴라는 겁니다. 그전에 먹어본 적도 없던 아귀찜을 그 날 처음 맛보게 되었지요. 먹을 줄 몰라서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콩나물만 열심히 밥에 비벼서 먹었던 생각이 납니다. 문득 스물셋, 네 살이었던 그때가 그리워집니다. 아귀찜을 먹으며 나도 나이를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아귀찜을 먹으며 감흥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01/23

다 식은 커피 한 잔. 나는 이걸 왜 찍었을까요.

3살 아이와 집에서 내내 노는 일도 어른에게는 매우 힘든 일입니다. 단 사랑하는 나의 자식이기 때문에 그걸 견디는 거겠지요. 커피 한 잔도 우아하게 마시지를 못합니다. 다 식은 커피를 홀짝거리다 아이에게 바짓가랑이를 잡혀 끌려가는 신세이지요.

"그래도 지금이 좋을 때야~"

이 시간을 지나온 선배들이 입을 맞추기라도 한 양 똑같이 말합니다. 얼마나 알고 가는지는 자신에게 달렸겠지요.






01/24

식구의 온화한 모습입니다. 강남 반려동물 펫 페어 박람회 때 사 온 강아지 옷을 입고 있는 말티즈. 이름은 '딸기'입니다. 딸기는 아이에게 가진 수모를 겪고 있습니다. 아이는 딸기를 예뻐하다가도 장난끼가 발동하면 쫓아다니며 잡아끌고 꼬리도 만지려고 합니다. 그래도 아이를 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아이가 아이라는 것을 아는 모양입니다. 성격이 그리 얌전하지 않았던 딸기가 아이가 태어나고 기가 많이 죽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든 이유이기도 하겠지만은요. 한 가족으로 함께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01/25

밖에 나가기에는 너무 추운 날입니다. 아이는 밖에서 나무를 자르고 있는 아빠를 현관문에 매달려 바라봅니다. 아빠는 아이의 나무 블록을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대패질도 해야 하는데 아이는 자꾸 묻습니다.

"아빠 다 했어?"

"아니. 더 기다려야지."

"다 했어?"

1초마다 묻는 것 같습니다. 애가 타게 기다리는 건 나무 블록일까요, 아빠일까요? 어릴 때는 퇴근 한 아빠가 반가운 게 아니라 아빠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아빠가 그리운 날이 옵니다. 아이가 장가를 가고 아이를 낳으면 이 사진 한 장을 건네 보려고 합니다.






01/26

나무 블록에 색칠을 합니다. 연한 색이어서 몇 번을 거듭 칠해야 하는데 아이는 좋다고 깔깔댑니다. 이런 시간들이 아이에게 추억으로 고스란히 남겠지요. 그러나 대부분은 지워질 기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엄마 아빠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건 몸으로 기억하고 마음으로 기억하겠지요.






01/27

영양제를 먹는 어른이 이해가 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스스로 챙겨서 먹고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왜 먹는지 너무 이해가 가기 시작하는 나이입니다. 여기에 더 보태고 싶은 비타민도 있습니다. 매일 다섯 알을 삼키며 매일의 나이도 먹습니다.





01/28

아이의 탱그램 놀이입니다. 몇 가지 도형으로 여러 모양을 만들어 내는 놀이입니다. 창의력이 생기기도 하지요. 이리저리 모양을 맞추다 보면 마치 인생 같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이게 뭐야, 라는 생각이 들지만 하나하나 놓다 보면 어느새 배가 되기도 하고 집이 되기도 하며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생각한 모양대로 잘 맞추어 가며 살고 있나 이때쯤이면 점검하고 싶어 집니다.






01/29

멋지게 색이 칠해진 나무 블록입니다. 아이는 아빠와 함께 완성한 이 나무 블록으로 성을 만들고 기차가 지나가는 길에 빌딩을 세우기도 합니다. 나는 장난으로 집을 지어달라고 아이에게 요청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엄마 집?"이라고 되묻습니다. 엄마 집, 아빠 집이 따로 있다고 믿는 아이는 아빠가 일을 나가는 오후 "아빠! 또 와!"라고 인사를 합니다. 친정언니는 예전에 그런 광고가 정말로 있었다고 웃습니다. 괜히 광고가 아니라는 생각에 나도 웃음이 납니다. 아이는 결국 엄마 집을 지었습니다.






01/30

팝콘입니다. 심각한 팝콘입니다. 정말로 포장지에 그려진 곰은 심각해 보입니다. 아이는 한 때 팝콘에 빠져 산 적이 있습니다. 아침에도 팝콘을 먹고 점심에도 밥을 팝콘으로 때우고 저녁에도 팝콘을 찾았습니다. 아이가 입을 종알거릴 때마다 입에서 진득한 팝콘 향이 맡아질 정도였습니다. 이쯤 되니 왜 심각한 팝콘이라 이름했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다른 뜻이 있다 해도 '심각한'으로 serious를 고집해 봅니다. 그나저나 아이는 언제쯤 팝콘을 질려할까요.






01/31


1월의 마지막 날, 눈이 쏟아집니다. 아이는 눈사람을 '눈사람 아저씨'라고 부릅니다. 왜 눈사람은 어쩌다 남자가 되었을까요? 예쁜 꽃이라도 귀 옆에 꽂아 주어야 '눈사람 아줌마'가 되나 봅니다.

아이는 이제 남자와 여자를 조금씩 구분합니다. 자기는 '보이'라고 늘 말하지만 핑크 옷을 입었거나 헤어핀을 꽂았거나 머리카락이 길다면 무조건 '누나'가 됩니다. 자기가 보아도 자기 나이보다 어린 듯 보이면 무조건 성별이 없는 '베이비'가 됩니다. 아이만의 기준인가 봅니다.

남자인 '보이'는 바지를 입어야 하고, 헤어핀을 꽂지 않는다는 걸 보니 어쨌거나 성별 구별은 되나 봅니다. 개월 수에 맞게 크는 아이가 그저 신기할 따름이지요.

그나저나 저 눈사람은 언제까지 버티다 녹게 될까요.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지 못한다는 말에 아이는 잠시 생각에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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