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 요코의 세계 속으로
사노 요코 할머니의 <사는게 뭐라고>라는 에세이 책을 골랐다. 평은 대체로 좋았고, 에세이 한 권을 읽어 싶어 여러 평을 보다가 알게 된 책이었다. 사노 요코의 글을 읽고 있으면 점점 빠져드는 매력을 느낀다나 뭐라나.
아이 때문에 정신이 없어진 나는 선택사항 앞에서 늘 눈으로 훑고 빠르게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는 버릇이 생겼다. 그게 아니라면 두고두고 보다가 한 주가 그냥 훌쩍 가버리기 때문이다.
이 책을 주문하는 날도 그랬다. 머릿속이 여러 편의 에세이가 헷갈려 어느 것이 누구의 책인지 제대로 파악하기 전 그냥 리뷰만 대충 훑고 주문해서 ebook에 넣어버렸다.
아이가 잠든 밤, 시간을 쪼개어 처음 몇 장을 읽다가 나는 왜 이 책을 어쩌다가 주문했는가,에 대해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읽는 걸 그만두었다. 읽다 보니 이상했다. 이름이 일본 이름이어서 일본 작가인 것은 알겠는데 나이가 많은 할머니가 쓴 글인 줄은 몰랐다.
<사는게 뭐라고> 이 책 말고도 나에게는 읽고 싶은 책이 집 안 천지에 흩어져 있었고, 나는 늘 시간을 아끼며 빠르게 보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것이 또 나의 재주이기도 했다. 독서노트라는 이름의 공책에는 필사도 옮겨 적어보고 중요 요점을 내 식대로 파악해 적어 놓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읽는 시간은 3-4시간이면 완독을 한다. 하지만 진도도 나가지 않는 책은 이렇게 덮어두고 만다. 그리고 조금 더 마음이 여유로울 때 열어본다. 나는 이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펼쳤다.
어쨌거나 돈을 주고 산 에세이이기에 읽어나 보자는 식이었다. 작가가 할머니여서가 아니라 세련되지 못한 문체와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도 그야말로 제멋대로였다.
내가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내가 에세이를 쓰고 싶어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쓰지?라는 의문이 들었고 남이 쓴 걸 많이 보아야 나의 글이 는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남의 에세이 안에서 내가 배울 것을 포착하고 싶은 이유라고 하면 이해하기 편할 것 같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사노 요코 작가의 책은 어딘지 모르게 그냥 자기 마음대로 끄적여 놓은 일기장을 내가 훔쳐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조금 불쾌했다. 에세이를 일기처럼 제발 쓰지 말아 달라는 작가들의 조언이 있는데 대놓고 일기를 쓰고 에세이란 이름으로 책을 내는 할머니는 또 뭘까 생각했다.
하지만 읽어 내려가는 내내 나도 모르게 이 할머니 작가가 매우 친숙하게 느껴지면서 페이지수가 늘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 어느 순간 손에서 놓기가 싫어질 정도였으니.
다른 이들의 에세이를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처음 접하는 에세이 방식에 다소 어리둥절했던 건 사실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읽고 싶은 글은 과연 무얼까 갑자기 혼돈이 오기 시작했다. 에세이에 대한 어떤 틀이 있음을 조금씩 알아갈 무렵, 틀도 없고 아무렇게나 써 내려간 것 같은 이 할머니의 글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런데 왜 빨려 들어가지? 왜 신나서 같이 웃고 있지? 왜 헛웃음 나는 이야기에 마음이 가벼워지지?
정말 이상했다. 그리고 그제야 리뷰에 써놓은 매력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아무래도 나도 리뷰를 쓴 그들과 한 배를 타고 같은 여행을 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장담하건대 그들은 새파랗고 젊은 이십 대는 아닐 거다. 리뷰자들 말이다. 어느 정도의 연륜이 된 40대 이후? 빨라도 30대라고 생각한다. 사노 요코 할머니의 냉장고 속 커피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이 책을 읽는 독자이기 때문이다. 설거지를 잘 마친 커피잔 두 개를 찬장에 넣지 못하고 깜빡해서 냉장고에 넣은 할머니. 예전에 내가 가위를 어디에 두었나 계속 찾은 적이 있다. 마침 지인이 전화했길래 그 말을 했더니 그 지인은 나보다 한 술 더 떠서 "아니 나는 칼을 어디에다 두었나 도통 생각이 안 나."라고 대꾸했다.
가위는 그렇다 쳐도 칼은 좀 섬뜩하기도 하고 오싹거리기도 해서 나보다 더 심각해 보였다.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서로 잘 찾아보자며 전화를 끊었던 적이 있다.
이 글이 공감이 된다면, 사노 요코의 <사는게 뭐라고>는 당신에게도 매우 재미있을 확률이 높다. 은행 ATM 기계 앞에서 돈을 어떻게 뽑을지 몰라 한참 허둥대는 나이 든 사람을 보고 사노 요코 할머니는 제 손가락으로 기계에서 자기 돈을 제대로 찾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 대목에 웃음이 끊이지 않으면서도 눈시울이 시큰해지는 건 뭘까.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또 뭉클함이 있다.
읽노라면, 정말 그런 생각이 든다.
사는게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