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일지 02
아이는 아토피 초기였다. 내 생각에 초기라면 그래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처방 연고를 바르기 싫어 아토피에 좋은 로션과 젤, 비누 등을 샅샅이 찾아 주문해서 바르기 시작했다.
그 노력에 상관없이 아이의 피부는 점점 심각해져 갔다. 빨갛고 동그란 형태가 온몸에 나기 시작한 것이다. 처방약을 아주 조금 덜어서 로션과 섞어 바르기 시작했다. 나아지지 않았다. 처방약만 발라보기도 했지만, 아토피는 손 쓸 사이 없이 빠르게 번져갔고, 급기야 얼굴까지 덮는 아찔한 순간까지 오고야 말았다.
병원에 예약을 한 후 찾아갔다.
"아니 왜 더 심해진 거죠? 약은 잘 발랐어요?"
솔직히 의사의 말에 자신 없이 "네에......" 하며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2차 처방이라며 다시 다른 약을 추천해 주었다. 스테로이드가 안 들어간 건데 베리류를 넣은 거라며 리뷰가 아주 좋다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약의 성분표에 스테로이드 함유 사실을 빼고 판매를 하는 바람에 크게 걸렸다. 그 당시에는 알려지기 전이어서 열심히 발랐다. 효능도 좋아서 금방 나아졌지만, 그때뿐이었고, 반복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세 번째로 의사를 만났다.
동그랗게 퍼져나가는 게 이상했는지 의사는 급기야 곰팡이 질환을 의심했고, 두 달간은 꾸준히 아침저녁으로 발라야 잘 낫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초기 대응에 스스로 실패한 나는 이번 약은 잘 발라보자며 눈물을 머금고 두 달간의 긴 시간을 꼬박꼬박 곰팡이 연고로 채웠다.
아이는 생각보다 밝았다. 생긋생긋 웃는 게 더 마음이 아팠다. 아직 간지러움에 대해 모르는 듯도 했다. 긁음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것도.
아이가 잠든 밤, 겨우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아이가 통잠을 아주 잘 자는 건 아니어도 5시간 이상은 잔다는 게 나에게는 큰 위로였다. 점차 젖병을 찾는 시간차도 늘어났다. 분유를 먹이면 모유를 먹는 것보다 1시간 정도는 더 잤기 때문에 일부러 밤에는 분유를 먹였다.
그렇게 조금씩 내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을 늘려 나갔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찾아지지 않았다. 그저 엄마로 굳굳이 버티어 내는 시간이 전부였다. 나비가 되기 위해 새똥 모양의 거무죽죽한 애벌레를 보았는가? 아이가 태어난 지 3개월이 지나 그나마 나는 거무튀튀한 모습에서 초록색의 그럴듯한 애벌레가 되었다. 번데기 시기만 지나면 성충으로 우화해 우아한 나비의 형태를 가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채 말이다.
애벌레에게는 꿈이 있다. 나는 비록 온전한 '나'를 내려놓고 살지만, 이 시기가 아이를 살리는 시기라면 기꺼이 내어 주는 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았다. 그 후에 올 '나'는 '엄마'라는 이름과 함께 나의 존재가 더 빛날 것이라는 추측을 하면서 말이다.
2개월간의 곰팡이 치료약은 아이의 피부를 원래대로 가꾸어 놓지 못했다. 그저 붉은 모습 그대로 처음과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의사는 한계가 다했는지 다른 큰 어린이 종합병원을 소개했고, 예약을 오래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운이 좋게도 다른 사람이 취소한 시간에 예약을 맞출 수 있었다.
워싱턴 DC 안에 있는 어린이 대형 병원이었고, 왠지 이곳에 가면 우리 아이가 다 나을 것 같은 희망이 보였다. 예약시간에 맞추어 대기실에 들어갔다.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로 대기실은 북적대고 있었다. 이곳은 피부과 계통이었는데 모두 피부질환으로 고생하며 여기까지 찾아온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동질감이 생겼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쌍둥이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한 엄마가 들어왔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 아이 피부보다 몇 배는 심각한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이 쌍둥이 아이들은 대기하고 있는 아이들 중 최고로 심각해 보였다. 얼굴 양쪽 볼이 모두 빨갛게 퉁퉁 부어올라 있었고, 까칠해 보여서 만지면 벽돌 같은 느낌이 날 것 같았다. 상태는 매우 안 좋았다. 덩달아 마음이 철렁했다. 엄마는 자신이 차라리 아픈 게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
내 아이에 대한 의사들의 소견은 일치하지 않았다. 한 젊은 여자 의사는 분명한 엑지마, 즉 아토피라고 했다. 나이가 지긋이 들고 풍채가 좋은 남자 의사는 곰팡이성 질환을 의심해야 한다고 했다. 결과는 그냥 테스트를 해보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그 결과를 기다리기 위해서는 다시 일주일의 시간이 필요했다. 미국의 이런 시스템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던 나는 일주일을 기다리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이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인내에 인내를 더하는 일은 살면서 더 많을 텐데, 이까짓 일주일 그래 더 기다리자.'
나는 병원을 나오며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주차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며 커피점이 보이길래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처음 듣는 브랜드의 커피빈 회사였는데, 향이 너무 고소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커피만 계속 홀짝였다. 남편과 나는 커피 마시는 소리 외에 한동안 말이 없었다. 차 안에 그윽하게 커피 향만 돌뿐이었다.
그렇게 어떤 처방도 없이 일주일을 지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보습을 잘 유지시켜 주는 일뿐이었고,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어마어마한 사명처럼 신중하게 그 일을 매일 해나갔다. 살면서 그런 열정은 쏟아부은 적이 없는 것처럼 나에게는 중요하고도 심각한 일이었다.
일주일이 그렇게 흘렀다. 아이의 피부 결과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아갔다. 6월의 어느 날로 기억한다. 날은 이미 따뜻해질 대로 따뜻해졌고, 아이에게 처음 맞는 초여름은 지독히도 힘들게 찾아왔다.
딱 1년 전, 나는 초여름을 맞으며 얼마나 설레었던가 생각했다. 싱그러운 여름을 준비하는 햇살은 나에게 더없는 사랑의 속삭임처럼 간지럽고 찌릿했다. 나뭇잎 굴러가는 소리에도 깔깔 웃는 여중생 같은 마음으로 그 여름을 맞이하던 나는, 1년 후 지금의 나를 생각하진 못했다.
두 의사 중 누구의 말이 맞을지 나는 그 결과를 일주일 내내 상상했다. 경력은 짧지만 예리한 젊은 의사? 아니면 경험 많고 점잖은 나이 든 의사? 그리고 마침내 그 결과를 귀로 들었다. 들으면서도 의아함은 떨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