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를 지나며 그 해 여름.
피부 테스트 결과 곰팡이성 질환이 아닌 그냥 아토피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몇 초 얼음이 되어 가만히 서있었다. 나의 두 달간의 곰팡이 치료약은 헛것이었구나 생각하니 아이에게 순간 미안함이 몰려왔다. 그렇다고 단순히 성분이 좋은 약도 아닌 것을 엉뚱하게 두 달이나 아이에게 발라왔다는 사실이 스스로 괘씸하고 슬펐다.
아이는 자신에게 닥친 일이 무슨 일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나의 눈을 맞추며 생긋 웃어 보였다. 치료약은 역시나 스테로이드였다. 1%보다 더 센. 2.5%까지 바를 수 있다고 했다.
"처음부터 바르라는 대로 발랐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까?"
남편을 바라보며 안타깝다는 얼굴로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누구를 비난할 것도 없었고, 그저 몰라서,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이런 해프닝을 만든 것뿐이었다.
아이는 그 처음이라는 것에 그저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첫째 키울 땐 그래. 엄마도 처음인데 뭘 알겠어. 이거 저거 해보다 또 다른 방법도 써보고 그러는 거지. 마루타야!"
지인의 그 말이 '남들도 다 그렇게 하면서 키운다'는 뜻 같아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다. 왜 나만 그런다는 생각이 들면 사람은 힘들어질까. 하지만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나도' 그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에 위안이 온다. 그래서 나도 이 육아 에세이를 이렇게 열심히 쓰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마음과 함께 또 스스로에게 힘을 주기 때문에.
아이는 연고를 바르고 점차 피부가 나아졌다. 여름이 되면서 더 나아졌고, 겨울이 다시 찾아왔을 때는 다시 조금씩 몸 여기저기를 긁었지만 예전만큼 심해지지는 않았다. 살결이 파리가 앉아도 스르륵 미끄러워 떨어질 만큼 비단결로 만들었다.
"세상에! 보습 관리 너무 잘하셨네요, 어머니! 잘하셨어요!"
나는 의사로부터 칭찬까지 들었다. 좋은 성적표를 받은 것이다. '참 잘했어요'같은. 그 험한 과정을 의사도 알기에 나의 노력에 상이라도 주고 싶다는 듯 기뻐하며 말했다.
아토피에 도움을 준 것은 물론 스테로이드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피부가 온전히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평소에 좋다는 식단부터 물까지 온전히 신경을 써야 했고, 로션도 아무거나 바른다고 매끄러워지지 않았다. 아토피에 좋은 건 오트밀이고, 그 오트밀이 사람에 따라 부작용을 더 일으킨다는 것도 알았다. 다행히 오트밀은 아이에게 찰떡궁합같이 제격이었다.
목욕물을 받아 아이를 씻길 때에도 오트밀 가루를 넣어 주었다. 그렇게 긴 시간의 아토피와의 싸움은 서서히 내가 이기는 쪽이 되었다.
아토피가 나아지고 있을 여름의 무렵, 나는 혼자서 겪는 육아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남편이 출장을 한국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을 때, 번뜩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 눈에서 광선이 나갈 만큼 찌릿하게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눈을 몇 번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며 말했다.
"나도 가! 설마 나랑 애 놔두고 한국 가는 거 아니겠지? 나도 갈 거라고!"
길어도 1~2주 사이의 짧은 남편의 출장에 애까지 데려갔다 데려올 수는 없어서 내가 아이를 데리고 먼저 한국에 가있다가 함께 미국으로 오는 여정을 택했다. 사실 그렇게 계획은 했지만 역시나 미국으로 돌아올 때는 남편을 먼저 보내고 또 혼자 아이를 데리고 돌아오긴 했다.
그때만 해도 비행기 안에서 혼자서 아이를 맡을 자신이 없었지만, 삼촌을 믿기로 했다. 남편이 삼촌에게 특별 부탁을 한 것이다. 비행을 워싱턴 DC로 해달라고. 삼촌은 하늘색 항공사의 기장이었고, 내가 한국으로 나가는 날짜를 맞출 수 있었다. 그리고 삼촌은 비행기를 몰고 출국 이틀 전에 정말 내가 있는 도시로 왔다. 꿈같은 기회였고, 이렇게 나갈 수만 있다면, 아이와 내가 걱정 없이 한국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삼촌이 왔다는 소식에 아이를 들쳐 엎고 삼촌이 묵는 호텔로 픽업을 나갔다. 저녁을 함께 먹기 위해서였다. 삼촌은 반가운 얼굴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호텔 라비에서 우리를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삼촌!! 우선 밥 먹으러 가요! 예약했어요. 스테이크 괜찮죠?"
비행기 안에서 늘 스테이크를 맛본다고 삼촌이 말했지만, 제대로 대접을 하고 싶었고, 예약해 둔 미국식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남편과 삼촌은 그동안에 못 나눈 이야기를 풀어놓느라 정신이 없었다. 삼촌은 아빠의 사촌동생이다. 늘 아빠 덕에 자신이 파일럿이 될 수 있었노라고 말했는데, 엄마 말로는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아직도 그 마음을 품고 사는지 모르겠다며 오히려 더 고마워했다.
"삼촌, 내일 잘 부탁해요~ 스테이크 제일 큰 걸로 시켰어요."
서로가 농담을 잘해서 그 자리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출국 준비도 해야 하기에 일찍 밥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헤어졌다.
그런데 출국 전 날, 급한 연락을 받았다. 삼촌이 비행 일정이 바뀌어 바로 떠나야 한다는 말이었다. 갑자기 전한 소식에 어쩔 줄 몰라하다가 겨우 알겠다고 대답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혼자 긴 여행을 아이와 단 둘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 삼촌의 역할이 실질적인 도움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게 더 컸는지도 모른다. 혼자서 아이를 안고 비행기에 오르지 않았다는 안도감 같은.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드디어 비행기 타는 시간이 왔다. 유모차를 끌고 짐을 끄는 내 모습이 웃기기도 했지만, 14시간이라는 긴 비행시간을 버티어야 한다는 생각에 영양제를 전투적으로 삼켰다. 홍삼진액도 먹어 두었다. 그 전날에는 잠도 많이 자두 었고, 만만의 준비를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아이는 8개월에서 9개월에 접어든 상태였고, 베시넷을 예약했던 터라 이코노미 자리가 시작하는 앞좌석을 차지했다. 옆자리에는 비슷한 개월 수의 아이와 그 부모가 나란히 타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기장님한테 말씀 들었어요. 기내 사정이 생겨 먼저 비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걱정되셨는지 부탁을 많이 하고 가셨어요."
그 말을 하고 가는 승무원은 한 명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승무원이 친절하게 알아봐 주었고, 내가 지쳐 보일 때는 아이를 손수 안아 재우기까지 했다.
아이를 안고 기내 안을 계속 맴돌 때, 한 승무원이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내밀기도 했다. 물론 물어보고 준 커피였지만 그 한 잔이 주는 안식과 위로는 내가 메가파워의 슈퍼우먼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내 옆자리의 아이 엄마도 내게 물었다.
"아이 데리고 정말 혼자 탔어요?"
"네. 맞아요."
"저였다면, 그런 결정 못했는데. 존경스러워요. 대단해요!"
하지만 그 말이 계속 여운에 남았다. 슈퍼우먼은 그냥 지칠 뿐이고, 그런 말은 그리 반갑지 않아야 하는 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엄마를 즉 여자를 자꾸 슈퍼우먼으로 만드는 일은, 완벽주의에 밀어 넣거나 기대치를 높이는 말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안 좋아하는 말인데 어쩔 때는 그래야만 하는 상황이 정말 오기도 한다. 나도 이 상황을 버티기 위해서 잠을 많이 자두 었고, 영양제며 보충제며 먹어왔기 때문이다.
내 어깨의 근육은 바스러질 것처럼 욱신거렸고, 아팠고, 힘들었다. 쉬지도 못하고 내내 아이의 기분에만 맞추며 안았다 들어 올리고, 다시 안고, 걷고를 14시간을 했으니 누가 보아도 슈퍼우먼이 아니었겠는가. 게다가 내가 인정할 만큼 피곤한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게 더 그렇다. 아이의 모든 컨디션을 다 맞추고, 돌보았으니. 아마 그 모습에 한 승무원이 아기를 안고 일부러 재워준 것 같아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찡하다.
승무원으로 일하며 그 좁은 공간 안에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며 돌보는 일도 무척 힘든 일이다. 엄마가 되는 일도 무척 힘든 일이고.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승무원은 그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고, 나는 그 대가를 돈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받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이가 웃어준다는지, 엄마를 엄마로 바라봐준다든지.
지금은 너무 쓸데없어 보이고 웃겨 보이지만, 그것이 주는 가치는 어마어마하다는 걸 잠재적으로 알 수 있다. 승무원 중에는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엄마 승무원도 있지만, 아직 미스로 자유로운 영혼의 싱글 승무원도 많을 테다. 이렇게 나처럼 혼자 어린아이를 안고 타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을 텐데, 그들을 보며 대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혹시 '나 결혼 안 해!'라든지 '애 없이 그냥 살지 뭐.' 이런 류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아무튼 나는 이런 비행을 결심한 데에는 나름의 명분, 의지, 능력 그리고 상황도 맞았다. 단, 삼촌이 비행하는 비행기를 함께 탔더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위 대사는 햄릿에 나온 말이기도 하다. <어떤 일을 할 때에는 명분과 의지와 능력과 상황이 맞아야 한다> 대충 끼워 맞추었지만 정말 그랬다. 생각지도 못한 독박 육아로 나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고, 친정식구들이라면 함께 나의 고충을 덜어줄 것만 같았다.(고맙게도 그 예상은 적중:)했다.) 그렇게만 해 준다면 어떤 일이든 감수할 자신도 있었기에 나는 남편의 출장을 이용했던 거다.
그렇게 긴 시간을 아이와 보낸 뒤 비행기는 내가 원하는 한국,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친정엄마와 친정식구들에게 드디어 내가 엄마가 되어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혼자가 아닌 아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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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ture:Max and the superheroes 책 중에서 그림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