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엄마가 되고 엄마를 만.났.다

인천공항에 도착

by 리앤

나를 위해 왔던 삼촌이 하루 일찍 비행하는 긴급상황이 생기는 바람에 나는 아이와 단 둘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남편이 미리 스테이크도 대접했건만, 삼촌은 순식간에 먹고 튄 <먹튀 삼촌>이 되었다. 그렇게 먹튀 삼촌과 따로 인천공항에 도착한 나는 유모차를 찾고 아이를 태운 후 짐까지 번쩍 들어 올려 사람들이 마중 나온 곳에 이르렀다. 거기엔 익숙하고도 반가운 친언니가 기다리고 있었고, 자는 아이의 얼굴을 확인하며 신기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왠지 모를 뿌듯함이 내 얼굴에 번지는 것을 느꼈다.


"고생했다! 엄마는 저쪽에 계셔. 콜택시 예약했으니 그리로 가자. 삼촌 얘기는 들었어."


마지막 말을 하면서 언니는 크게 웃어 보였다.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아 나도 같이 키득거렸다. 나는 유모차와 작은 캐리어를 끌고, 언니는 짐이 잔뜩 든 카트를 몰고 나를 안내했다. 멀리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택시는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깨가 약간 구부정하게 말린 엄마의 등은 가냘파 보였고, 세월의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뒷모습이었다.


"엄마!"


엄마가 된 나는 엄마를 힘껏 불렀다.


엄마는 아이를 사진과 동영상으로만 보았을 뿐이었다. 이렇게라도 직접 보여드리는 게 효도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길 잘했다 싶었다. 그새 비행기 안에서의 14시간이 하나도 힘들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 순간이 너무 좋아서 다시 14시간을 타야 한다고 해도 거뜬히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 안에서 새로운 힘이 샘솟고 있음을 깨달았다. 슈퍼우먼은 내가 그 상황을 힘들게 받아들이지 않고, 주도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이름임을 비로소 알았다.


엄마는 나를 본 그 순간부터 안절부절 난리가 났다. 아이가 자고 있으니 깨울 수도 없고, 아이에게 옷이라도 한 겹 더 덮어주고 싶어 자신의 옷을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했다. 그 모습이 정신없어 하마 터번 웃음이 터질 뻔했다.


"엄마, 괜찮아요. 안 추워~"


그제야 안정을 찾았다. 택시는 곧 왔다. 아이는 택시 안에서도 내내 잠만 잤고, 집에 도착할 때쯤 깼다. 그 날 잔치가 벌어지듯 풍성한 밥상을 맞았다. 그리웠던 엄마의 밥상. 산후조리할 때도 그리웠던 엄마의 밥상. 아이가 크면서도 이유식 만들며 그리웠던 엄마의 밥상.


언니도 덩달아 일찍부터 와서 나와 조카인 아이를 맞을 준비를 했고, 새언니도 반나절 음식을 도왔다고 했다. 모두가 반기는 자리에서 함께 나누는 식사는 정말 꿀맛과도 같았다. 이 날을 위해 마치 내가 아이를 낳고 온 것처럼 말이다.


아이는 사람이 많은 곳이 신이 났는지 깔깔대고 웃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이를 봐줄 많은 손이 나에게는 안정감으로 다가왔고, 친정집에 대한 그리움이 현실로 다가오며 포근함이 나를 안도하게 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따뜻한 물은 나의 긴 피로를 씻어주듯 나를 어루만지며 도르륵 하수구로 내려갔다.


'괜찮아~ 괜찮아~' 샤워기에서 튄 물방물이 내 몸 구석구석에 흐르며 위로하듯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그날 밤 아이도 나도 기절하듯 아침까지 잠을 잤다. 엄마의 집은 마치 새둥지처럼 느껴졌고, 우리는 짹짹거리며 차려주는 아침밥을 또 맛있게 먹었다. 아이는 엄마가 한 이유식을 거나하게 들이켰다.

예전 같았으면 엄마를 돕기도 하고, 설거지라도 했을 텐데, 엄마는 극구 도우려는 나를 말렸다.


"그만둬! 친정이 이래서 좋은 거지. 별거 있냐. 넌 가서 쉬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달콤한 말을 들었다. 마치 사랑한다는 말을 수백 번 들은 것처럼 나의 마음은 설레고 또 설레었다.


엄마라는 이름은 그제야 쉬운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 내어 주어도 또 무엇을 더 내줄까 생각하는 게 부모의 마음 같다. 남편을 일찍 여윈 여인의 몸으로 애 셋을 키워낸 특별한 이름, '엄마'. 나에게 엄마는 남들이 다 생각하는 그 엄마에서 곱하기 몇 배는 된다. 아빠의 몫까지 해내며 어린 나에게 '아' 하는 신음 소리조차도 내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으며 해달라는 것은 되도록 해주려고 애썼던 엄마.


눈물을 얼마큼 삼켜야 엄마의 마음을 다 알까.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이제 겨우 한 발 내디뎠을 뿐인데 그 이름에 목이 메는 건 뭘까.


사람에게 빈자리란, 공허감이고 외로움이고 쓸쓸함이다.

엄마에게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었던 것은 시간이었고, 그리고 그리고... 우리였다. 우리 삼남매.

삼남매 또한 졸지에 끈 떨어진 연인 줄 알았지만, 엄마로 인해 사랑을 채움 받았다. 그렇게 서로를 부둥켜안고 살아온 삼남매는 각각의 인연을 만나 새로운 가정을 모두 꾸렸다. 그래서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딸로서, 엄마가 되어 엄마를 드디어 만났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07 본의 아니게 슈퍼우먼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