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네 엄마가 이렇게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니?

뜻밖의 횡재

by 리앤

친정엄마가 사랑에 빠졌다.

아침마다 기도하는 엄마의 두 입술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며 내리 달짝거렸고, 그걸로 기도의 절반을 채우셨다. 그리고 부스스 일어나셔서는 부랴부랴 저녁에 준비해 둔 아침거리를 식탁에 가지런히 내놓으셨다.


"뭐하면 좋아할까? 뭘 하지? 응? 응?"

"그냥 아무거나요. 다 잘 먹는데."


나는 젖병의 눈금을 맞추어가며 아기 분유를 타고 있었는데, 엄마의 계속되는 질문이 다소 귀찮아 시큰둥 대답했다. 솔직히 무엇이든 다 잘 먹는다. 어떤 음식인들 안 맛있을까. 처음 먹어보는 맛에 얼굴 표정은 다소 웃기기까지 하는데 말이다. 엄마는 계속 나에게 추궁하면서도 싱글벙글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으셨다. 분명 엄마는 사랑에 빠진 얼굴이었다.


"얘~ 네 엄마가 이렇게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니? 난 절~대 아니라고 봐. 어쩜. 전화만 하면 아주 들어주기 바쁘다니까. 말도 많아지고 있잖니~ 아주 웃~~~ 긴다!"


엄마는 그랬다. 엄마의 친한 친구이자 내가 이모라고 부르는 멋쟁이 문학박사님이 엄마의 호박씨를 알뜰하게 까서 질근질근 씹으셨다. 나도 그 호박씨가 싫지 않아 같이 맞장구를 쳤다. 사랑에 빠지면, 괜히 재미있지도 않은 일에 떠나갈 듯 웃게 되고, 하루가 내내 즐겁다는 걸 사랑을 해 본 우리로서는 다 안다.

과연 무엇이 엄마를 웃게 했는가.


어쨌든 엄마의 질문에 짜증 섞인 내 대답이 미안해 다시 정정했다.


"추어탕이 치아에도 좋다니까 좀 곱게 체에 내리면 먹기에도 좋지 않을까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는 집 앞 시장으로 가 싱싱하고 좋은 놈으로 꿈틀꿈틀하는 미꾸라지를 골라 집에 가지고 오셨다. 열심히 인터넷 레시피를 뒤지더니 한 방법이 마음에 드셨는지 따라 하기 시작했다. 물도 끓이고 하시더니 곧 믹서기가 위잉~ 하며 갈리는 소리가 났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서 미끌미끌 움직이던 미꾸라지가 날카로운 칼날에 마구잡이로 휘갈겨지는 걸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눈이 찡그려졌다.


아이는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잠시 할머니를 쳐다보더니 이내 나를 바라보았다.


"아아~ 할머니가 우리 00 주려고 맛있게 미꾸라지 갈아대는 소리야~"


내 소리가 안 들릴까 봐 일부러 아이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말하고 보니 약간 뉘앙스가 이상하긴 했다.


"아가야~ 뭐 그런 게 있어! 넌 맛있게 먹기만 하면 돼~ 할머니가 우리 00한테 아주 푹! 빠져 버렸네~"


아이는 할머니의 사랑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손수 끓인 추어탕을 호기심 있게 탐색하며 후루룩 먹어댔고, 마지막 국물까지 싹싹 들이켰다. 몇 번을 그렇게 먹더니 이후로 아이가 낮잠을 자지 않았다. 치명적인 후유증이었다. 쌩쌩해서 늘 놀 생각뿐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띄엄띄엄 먹이던 찬라 엄마가 수산시장까지 찾아가 이번에는 직접 냇가에서 잡은 자연산 미꾸라지를 가지고 오셨다. 나는 뒤로 넘아갈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열정은 추어탕 백 그릇 먹은 사람보다 더 활활 타올랐다.


맞다. 엄마가 요즘 사랑에 빠진 건, 바로 아이였다. 추어탕 말고도 아이의 멋모르는 작은 행동, 눈웃음에도 혼자 까르르 웃어대며 뭐가 그리 신기한지 집안사람 하나하나를 붙잡고 연신 리플라이만 해댔다. 그것뿐이랴. 아이의 동작과 표정을 똑같이 따라 하다가 그게 또 스스로 웃기신지 까르르르륵 까라라라락 거리셨다.


"엄마, 아까 얘기했는데. 언제 끝나요?"

"아니 으흐흐흑 그러니까 유모차를 태우고 내가 나갔는데, 추울까 봐 옷으로 앞을 좀 가려줬거든~ 으허헉으헉 그랬는데 손을 요~렇게 그 옷을 들추더니 표정이 요~렇게! 아니 꾀가 조조라니깐! 지가 앞이 안 보인다는 거지 말하자면!! 으흑으흑큭큭크"


이모가 왜 내게 그렇게 말했는지 아주 알고도 남는 얘기였다. 그렇게까지 웃을 얘기도 아닌데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코미디 프로를 본 거 마냥 며칠을 따라 하며 두고두고 얘기하셨다. 할머니가 자꾸 웃으시니 아이도 덩달아 깔깔대며 집 안이 며칠간 웃음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집 안에 어린아이는 한동안 없었는데 갑자기 어린 손주가 생기니 엄마는 그것이 그렇게 즐거웠나 보다. 친정언니가 운전을 하며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니느라 함께 애를 많이 썼다. 엄마 집에서는 새언니가 퇴근하고 돌아와 아이를 안고 기저귀도 갈며 재우기까지 했다. 오빠는 사근사근한 모습을 아마 새언니에게만 보였을 수도 있지만, 평소 그런 성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집에 오면 아이를 안고, 거실이며 방이며 두루 돌아다니며 아이를 맡아 주었다. '호르르 록 깍! 꿍'도 하면서.


"우와~ 엄마, 이거 할 만하네! 늦게 낳으니 또 이런 장점이 있었네요! 나 잘한 거 같아!"


집 안에 이미 큰 손주 빼고는 어린아이가 없다 보니 졸지에 모든 관심과 사랑을 한 번에 가득 받게 된 게 대박을 맞는 듯했다. 그런데 사촌끼리는 나이 차이가 나도 너무 나버렸다. 사촌 형, 누나가 아닌 이모나 삼촌뻘이어야 좀 맞는 말이 될 것 같다. 또래로 함께 자랄 수 없어 공감이 없다는 것만 빼면 그리 안 좋은 장사는 아닌 듯했다. 왜냐하면 사촌들이 파트타임 해서 번 돈으로 아이 옷도 사주고, 베이비시터의 역할도 해주기 때문이다. '이거면 뭐 남는 장사 아니야?' 괜히 시익 웃어 본다. 꼬맹이 같았던 예쁜 조카들이 어느새 큰 것도 신기한 일이다.


아무튼 한국에서의 모든 것은 뜻밖의 횡재가 되었다.


그러나 친정식구네 머물던 때에 아이가 9개월이 넘고 10개월이 넘어도 길 줄을 몰랐다. 그저 앉혀준 자리에서 끙끙 만 댈 뿐 더는 움직이지를 못했다. 배를 깔고 엎드린 자세를 해주면 혼자서 뒤집기만 열심히 할 뿐 길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였다. 그래도 언젠가는 기겠지 싶어 굳이 조급해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친정 언니네서 머문 어느 날, 아이가 기기 시작했다. 형부의 몸을 사리지 않는 훈련 덕분이었다. 나는 또 그렇게 횡재를 친정에서만 연달아 맞게 되었다. 엄마는 그게 또 신기하다며 아이가 길 때마다 '으읍읍'하며 같은 신음을 내며 꺽꺽 웃어댔다. 엄마의 웃음은 주름 하나 더 가는 웃음이 아니라 많은 주름 가운데 하나를 빼는 웃음이었다.


'엄마도 웃음이 이렇게나 많을 수 있는 사람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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