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호시탐탐 지구를 끄는 아이

첫 돌의 시간 가까이

by 리앤

아이가 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미국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한국에 간 것은 오로지 쉬면서 가족들과 함께 있으려는 의도였기에 다른 지인이나 친구에게도 연락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이번 여행이 이상하게 비밀리에 치러지게 되었다. 그런데 브런치에 올리면서 이번 기회로 쉽게 말해 '뽀록'이 나버렸다.

‘나의 잘못을 용서해다오~~~'


독박 육아는 그때부터 다시 시작이 되었다. 미국으로 돌아와 아이와 나는 한국과 미국이라는 얄미운 시간의 간격을 좁히기 시작했다. 낮에는 끝도 없이 졸렸고, 아이는 낮잠을 자는 시간에 아예 밤잠을 자며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어서 찾아오는 캄캄함 속에서는 자기는 자되 여러 번을 깨어 칭얼대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렇다 보니 나 또한 비몽사몽이 되어 여러 날을 견딜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내 품에서 떠나는 것을 싫어했다. 부드럽고 연한 얼굴을 내 어깨에 파묻고 아침이 올 때까지 그렇게 선잠을 자길 원했다.

추가적으로 거실과 방을 걷는 잔잔한 흔들림은 필수였다. 그 리듬을 아이는 끝까지 기억했고 잊지 않았다. 잠시라도 멈추는 몇 초를 귀신같이 찾아내어 발길질을 했고, 나의 걸음걸이의 진동을 자장가 삼아 자신의 안식으로 삼았다.


유축을 하는 고달픔에 이어 두 번째로 찾아온 나의 딜레마였다. 벗어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저 한국에서의 나의 행복에 대한 대가라고 스스로 마음을 진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수면 교육은 시차라는 환경에 의해 완전히 박살이 나면서 그 후로도 적응을 하기까지 5개월이란 시간이 더 필요했다.


한국을 다녀온 후 시간 시간마다 아이를 안고 거실을 왔다 갔다 걸어야 하는 고단함은 어쨌든 나의 온전한 몫이었고, 침대에 눕히면 얼마 안 되어 깨어 우는 아이 덕에 나의 몸무게와 다크서클은 한없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출산하고 한 달도 안되어 되찾아진 몸무게가 육아를 하며 점점 야위듯 말라갔다. 그나마 한국에서의 몸무게는 나의 마음 상태와 같이 가장 부풀었던 시기였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못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아이를 안고 이리저리 걸으며 불렀던 노래는 다름 아닌 '섬집 아기'였다. 나의 콧등을 시큰한 게 한 것은 1절이 아닌 2절. 2절에는 가슴 시린 엄마의 마음을 온전히 담았다. 걸어지지도 않는 모랫길을 달려서 오는 엄마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가만히 짚어보면 동요에도 우리나라의 한과 아픔이 그대로 드러난 가사가 많다. 그 시절 겪는 아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 캄캄한 밤, 자다 말고 우는 아이를 달래겠다고 빠질 듯이 아픈 어깨를 다시 내어주는 엄마라는 이름의 고초도 그 노랫가락 속에 함께 녹아 구슬프게 불러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음을 통해 아이는 오히려 편안함을 누렸고, 구슬픈 자장가는 내 버석거리는 볼을 시나브로 촉촉이 적시었다. 그날 밤부터 간절하게 원하는 것 딱 하나가 내 눈 앞에 왔다 갔다 했다. '누워서 사람처럼 자고 싶다'는 것, 그것 하나.


아이는 조금씩 낮잠을 줄여가기 시작했다. 일부러 데리고 나가기도 했고, 방에서 함께 놀아주는 시간을 늘려가기도 했다.

아이의 놀이는 한국에 나가기 전과 후 확연히 달랐다. 길 줄 알다 보니 평소 관심이 없던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원하면 기어서 찾아갈 수 있고, 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후부터 여러 가지 물건들이 위험해지기 시작했다. 닥치는 대로 물건들을 잡아당기고, 모든 것을 궁금해했다.


"아이가 기기 시작하면, 주변 물건부터 다 치워둬! 특히 탁자 위는 아예 뭘 두지 않는 게 좋아."


지인의 조언은 맞았다. 의자면 의자, 테이블이면 테이블, 손에 닿는 모든 것은 아이의 호기심 많은 장난감이 되었다. 여러 가지 물건들에 대한 탐색이 시작되며, 창으로 들어오는 가는 빛줄기에도 관심을 보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빛줄기 방향이 바뀌고 다른 모양으로 바뀌어가는 걸 오래 바라보았다.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뇌가 다 발달된 것이 아니어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어른처럼 자연스럽지 못할 텐데 저 조금만 머리로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지 신기했다. 아이가 빛의 변화를 갸우뚱 보는 것처럼 나도 따라서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간이 멈춰진 듯 우리는 잠시 얼음이 되었다. 그 순간 오로지 영롱하게 움직이며 흔들리는 것은 빛뿐이었다.


그때부터 일일이 바라보는 사물에 대해 이름을 붙이고 또박또박 설명도 잊지 않았다. '책상', '사과', '침대', '비누' 내가 뱉은 단어는 소리를 통해 아이에게 전달되었다. 여러 번을 해도 사물의 이름은 똑같았고, 그때부터 모든 것에는 '이름'이란 게 있구나 인지하는 폭과 이해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도 단어를 말했지만, 구체적으로 생각하며 일러주지는 않았다. 직감적으로 이제는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드는 게 나도 엄마가 되어감을 깨달았다.


혼자 아이를 보는 시간이 많다 보니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 언어였다. 아이에게 말을 걸고 매일 만나는 사람은 오직 나였기에 대단한 책임감이 앞섰다. 나는 솔직히 말수가 적은 사람이다. 수다스럽지 않으며 조용한 성격이고, 또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편이다. 그 시간을 통해 내가 힘을 얻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인데, 아이 앞에서 혼자 원맨쇼를 하며 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큰 장애로 다가왔다.


그걸 타파해 보겠다고 조금씩 아이의 모든 행동을 말로 알려주었다. 실제로 하다 보니 수다가 힘들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되돌아오는 말은 '아으~' '어어어'등이어서 도저히 오래 지껄이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만큼이 나에게는 변화였다. 대답도 별로 없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많은 말을 쏟아낸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변화가 딱히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나도 평소 말하는 연습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마흔이 넘어 좀처럼 변할 것 같지 않은 성격과 행동이 아이 하나로 깨어지며 변할 수 있는 것은 엄마의 힘이었다.


그렇게 나를 바꾼 아이는 집 안 곳곳을 누비며 탐색전에 들어갔고, 물건을 잡고 서서 다른 쪽으로 이동하는 즐거움도 맛보았다. 아이는 마치 지구를 끌듯 자기 앞으로 모든 사물을 끌었고, 그것들은 질질 대책 없이 끌려갔다.

곧 첫 돌을 맞이하는 때쯤 아이는 날쌘돌이가 되어 기는 데 선수가 되었다.


1년 동안의 시간은 어른에게 그저 지나가는 한 세월일 수도 있지만, 아이에게 1년은 엄청난 변화의 시간들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어났고, 온몸으로 먹었고, 주먹을 필 줄도 알게 되었고, 눈을 맞추는 법도 알게 되었고, 사물을 만질 수도 있게 되었고,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만큼 길 줄 알게 되는 시간.


세상을 살아갈 모든 방법을 하나하나 익히는 시간은 아이에게 매우 특별했다. 그리고 없어서는 안 될 단 하나의 재료는 바로 엄마였다. 그렇게 아이는 나의 시간을 좀먹듯 살금살금 갉아먹으며 자신의 시간을 채워갔다.


낮잠이 자리를 잡았어도 밤잠은 여전히 내 품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는 아이를 안고 수없이 돌던 그때, 호시탐탐 구석구석의 물건들을 노리며 사냥하듯 낚아채어 입으로 가져가 혀로 음미하는 시간, 잘근잘근 물어뜯으며 촉감을 살피고, 사물의 이름을 알아듣고 모양과 맛을 여전히 음미하는 그때에 아이는 첫 돌이라는 시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 또한 엄마가 된 지 꼭 1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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