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혹독한 터널 하나를 통과하며

아이의 첫 돌만큼 자유로워진 엄마

by 리앤

"애가 벌써 첫 돌이야?"

사람들이 아이가 첫 돌을 맞았다는데 눈을 토끼처럼 동그랗게 뜨고 놀랐다. 나는 그렇게까지 놀라며 '벌써'라는 말을 쓰는 게 마음이 아팠다.

나 스스로는 이 1년을 위해 40년 넘게 살아온 사람 같은 기분이었는데. 나의 존재는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아이를 재우고 먹이고 키우는 데만 나의 모든 에너지를 활용했다. 쓰러질 것만 같은 몸으로도 다시 아이를 안고 반복의 힘을 키우는 엄마.

배가 터질 듯 커다란 자신의 몸을 질질 이끌고 느릿느릿 기어가는 아이의 동화책 속 고양이처럼 시간은 그렇게 느리게 흘렀다.


"이상한 게,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흘러가요."


내가 지인 중 한 명에게 했던 말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1년은 지루하기 짝이 없을 만큼 더디게 흘러갔다. 첫 돌이 되었을 때 두세 돌은 맞아야 정상인 것처럼 내 모습은 늙어 있었다. 엄마로 살아가는 게 좋다고 해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번뜩 스쳤다. 화장대로 쓰는 화장실 세면대 공간은 이미 아이의 비누, 샴푸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방 안을 둘러보니 내 것은 없었다. 겨우 첫 돌 맞은 아이의 짐만이 집 안 가득 메워졌을 뿐이었다. 거실을 가도 아이의 러닝홈이나 풀볼 플레이그라운드 등으로 마치 어린이집을 연상케 했고, 아이방은 이미 장난감으로 도배가 되었다. 기부를 통해 받은 것도 있었고, 산 것도 있었고, 중고로 구매한 것도 많았다.


어디에도 나의 흔적은 없었다. 부엌? 부엌은 아이가 잘 먹는 것 위주로 냉장고가 채워졌고,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이를 보기 위한 나의 처절한 에너지 전용이었다.


우울한 마음이 내 안에서 꿈틀꿈틀 기어 나와 나를 다 갉아먹을 듯싶었다. 산후 우울감은 호르몬의 변화, 스트레스, 양육에 대한 부담감으로 1년을 지속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아이를 낳고 생기는 여자만 아는 여자만의 기분인 것이다. 이 기분을 남편에게 토로한들 도대체 알아들을 기색도 보이지 않아 혼자서 삯이는 감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예쁜 아이가 있는데 그런 기분은 왜 들어?"


남편은 의아할 대로 의아해져서는 옳고도 맞는 답변을 한 것 같아 스스로 으스대는 얼굴을 하고 내게 말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변화가 크게 다가올 때가 있다. 아이에게 최선의 것을 다 주고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야 하는 엄마는 과연 죄인인가? 나를 찾고 싶은 감정은 사치인가? 계속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당연히 아니다가 맞다!


얼마 전에도 나는 아이를 아빠에게 맡기고 장을 보러 다녀왔다. 그렇다고 편안하게 장보고 집에 느릿느릿 오는 엄마들은 없을 것이다. 급하게 부랴부랴 장보고, 차에 실어 또 부랴부랴 집에 오게 된다.


며칠 전, 장보고 집에 오면서도 마음은 급했다. 남편은 전화했다.

“언제 와?"

“가고 있어. 애 잘 놀아? 그런데 왜?"

“배고파서."


며칠 전 장보고 돌아오며 세상에서 제일 싫은 말을 급기야 또 듣고 말았다.


사실 출산 후 1년은 남편이 아이를 혼자 본다는 것은 대단한 큰 일이었고, 나는 내 시간을 위해 외출을 한 것처럼 고개가 숙여지는 일이 허다했다. 몇 번의 경험 끝에 그러지 말자고, 스스로 생각했다.


누가 그런 감정을 선물로 준 것도 아닌데 혼자 끙끙대는 일이 더 웃겼다. 그 후로 마음은 조금 더 평화로워졌다.


그래도 듣기 싫은 말은 있다. 그 말을 꼭 장보고 돌아오는 아내에게 했었어야 했나. 하지만 남편의 입장에서는 나름의 이유도 있다. 바로 먹을 무언가가 있는지 궁금도 했고, 저녁에는 자신이 바비큐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역시 나의 생각은 오버였다.


한 템포를 낮추고 가면, 상대의 마음이 보이는 것을. 서투른 판단은 금물이라 생각하며 온유한 마음을 가져보자고 나를 다독였다.


아무튼 출산 후 1년은 그렇게 세월이 느리게 간 적이 또 있을까 싶게 천천히 흘렀고, 그 1년이 나에게 준 것은 첫 돌을 맞은 아이의 웃음이었다. 이 웃음을 위해 그토록 긴 밤과 새벽을 깨우며 미친 척하고 나를 내려놓고 살았구나 싶었다.


엄마가 되는 시간은 꼬박 1년이라는 세월 앞에 나 자신과 싸울 것이 많았다. 온전한 나로 살기보다 엄마로 살게 한 시간. 이 시기도 어느 때나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챈 이 후로 나의 마음은 넉넉해졌다. 그리고 열심히 엄마로 산 내 세월이 대견스러졌다. 우울한만큼 아니 우울할 새도 없이 달려온 세월 끝에 첫 돌을 맞으며 나를 보던 그때, 나는 어쩌면 이미 좋은 엄마가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이 시기를 살아야 한다고 해도 나는 아마 똑같이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더 용기 있게 더 당당한 마음가짐이 되지 않았을까.


모든 엄마들이 겪어내는 이 시기가 그저 우울함으로 종지부를 찍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우울함 뒤에 숨은 ‘나’라는 키워드는 엄마가 추가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것은 쉽게 오지 않는다는 걸 기억한다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계산이다.



첫 돌을 지나가며 처마 밑 고드름이 툭 하고 떨어지듯 내 안에 얼고 있던 마음들이 서서히 녹아감을 느꼈다. 그리고 어느샌가 툭, 하고 떨어졌다.


1년은 나에게 ‘나 없이 살아가라’는 조언을 했지만, 앞으로는 그 시간만큼이나 자유로워질 나를 상상했다. 아이는 그만큼 자라 있었고, 나는 엄마가 되는 혹독한 터널 하나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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