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첫걸음과 봄볕 작약 같은 미소

세상에 내디딘 아이의 첫걸음마

by 리앤

첫 돌을 넘기고 15개월이 넘어가는데도 늦게 기기 시작했던 아이는 또 걸을 줄을 몰랐다.


"음... 다음 주까지 만약 걷지 못하면, 병원에 다시 찾아오셔야 해요. 다른 문제들을 좀 검사할 필요가 있거든요."


매번 아이에 대한 시험은 왜 내게 오는 걸까 생각하며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내 마음은 예전과 다르게 별 요동이 없었다.


‘이렇게 튼튼한 애가 안 걸으면 누가 걸어. 늦게 기니 늦게 걷는 거겠지 뭐.'


아이의 발달이 뭔데 매번 발달사항마다 체크해서 내 아이는 이렇고, 저렇고를 자로 재어 판단을 하는지 심통이 나기도 했다.


내 아이는 퍼센티지에서 늘 중간 이하였다. 게다가 15개월이 넘어도 걷지 못한다고 하니 병원에서는 문제로 삼을만하기도 했다.


물이 잔잔하게 흐르는 포토맥강가에 조그마한 잔디광장을 가게 되었다. 생각을 하고 간 건 아니었는데 남편과 모처럼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아이는 그 잔디밭에서 아빠와 걸음마를 연습했다. 아이는 한 걸음 걷는 듯하다 이내 주저앉았다. 걷고 뛰는 아이들 옆에서 아이는 "아아~ 어~~"소리를 내며 함께 신나 하기는 했어도 통 걸을 생각을 안 했다. 걸음마 연습을 시키려고 간 건 아니었지만, 이내 주저앉고 기려고만 하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아이가 처음 걸을 때를 보면, 부모의 마음이 찡하다고 했던가. 나는 그 느낌을 다음 날 알고 말았다. 아이가 거실로 기어 나온 후 의자를 기대어 일어나더니 갑자기 혼자 한 걸음, 두 걸음 걷는 게 아니겠는가.

곧 주저앉다 다시 땅을 짚고 일어나 걷기를 시도했다. 다시 한 걸음 두 걸음. 나의 얼굴은 봄의 작약처럼 환하게 미소 짓고 있으면서도 눈에서는 눈물이 고였다. '아이가 걷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모두가 자기 나이에 맞는 성장이 있다. 이 나이에는 걷는 것 하나로도 손뼉을 쳐주며 주변 사람들이 감격을 마지않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기대치라는 것이 생긴다. '그 정도는 했으니 이 정도는 해야지'하는. 그러다 미치지 못하기라도 하면 가차 없이 내쳐지는 것이 바로 세상이다. 물론 조금씩 상하관계의 직장생활 시대가 변하며 1인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어쨌든 냉정한 세상에서의 잣대는 우리를 참으로 피곤하게 만든다.


아이의 걸음을 보면서 이것이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명 가정에서 보듬어야 할 사랑의 책임 같은. 이십 대 접어들며 시작하는 세상의 첫걸음은 어쩌면 아이 혼자 가야 하는 어려운 고비가 될 수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야 그렇게 놔두고 싶지 않지만, 그때까지 함께 있어준다는 보장은 없다.


나이가 들어 아이를 낳다 보니 마음이 아려지는 건, 내가 아이의 세월에 함께 손 잡아 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하는 문제였다. 갓 태어난 아이를 보면서도 그랬다. 아이가 열 살이면 내 나이가... 아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이면 내 나이가... 언제나 그것이 숫자로 내게 다가왔고, 지금도 달라지지 않는 나의 한계다. 사회가 고령임신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도 서러운데 나이까지 계산하며 우울할 필요는 없지만 실질적인 현실의 한계는 그렇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늘 지켜보며 살게 될 거라고 자부하는 부모는 과연 몇이나 될까. 영원한 것은 없다. 없기에 삶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아름답지 않더라도 지켜보며 살고 싶은 마음은 아마 같을 것이다. 하지만 늙어보면 다른 마음이 든다는 것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자식에게 해 끼칠까 봐', 혹은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그런 이유들로 연락을 끊은 채 살기도 하고, 혼자 따로 집이든 방이든 나가 사는 모습은 합당해 보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기도 하니 말이다.


적어도 아이를 키우는 지금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격려의 박수를 힘껏 주어야 하며, 아이의 성장과 노력에 빛나는 상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걸음마를 보고 있는 나는 많은 생각들로 눈물이 나기도 했다. 큰 성장 앞에 기뻐하며 손뼉 쳐 줄 수 있는 지금, 이 지금을 아이가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하나 둘 축하가 쌓이고 쌓여 그것이 아이의 보살핌이 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엄마는 언제든 너를 축하할, 한 사람이란 걸 잊지 마라, 아가야' 한 살 한 살 살아낼 때마다 솔직히 이 말을 늘 해주고 싶다.


어쨌거나 그날의 걸음마로 병원에 갈 일은 없어졌다. 아이는 빠르게 적응하며 걷기에 능해졌다.

한 살 된 아이가 일찍 걷는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만큼 많이 넘어져야 하는 걸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걸음마를 통해 배울 수도 있겠지만(과연?), 다리에 힘이 어느 정도 생기고, 균형을 알아갈 때에 무리 없이 일어서고 한 걸음 두 걸음 걸어갈 수 있다는 건 바로 아이에게 자신감이 되었다.


그날 걸었던 아이의 오묘한 미소가 떠오른다. '어어~~ 내가 걸어? 진짜 걸어?' 하는 듯한 믿기지 않는 그 순간을 믿어야만 하는 그때에 오만가지 감정이 스치는 얼굴을 아이에게서 보았다.

처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몇 미터를 걸어 스스로 우리에게 왔던 날, 아이의 오묘했던 미소는 얼굴을 다 뒤집을 만큼 큰 웃음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왔다.


누구나에게 이 첫걸음은 있다. 그리고 기억해 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참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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