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애착 물건에 대하여
몸무게가 아무리 출산 전으로 되돌아왔다고 해도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아줌마 같은 몸매와 뒤태는 어쩔 수 없었다. 아이를 하나 낳고 이 정도면 둘은 어떻다는 거야? 혼자 구시렁거리며 예전 옷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아 도로 다 벗어두었다. 집에서 애만 보다 혹시 이대로 퍼지는 거 아닐까 하는 공포스러운 마음이 스키니 바지를 주섬주섬 찾게 했다.
게다가 피부는 쩌억쩌억 갈라진 마른땅 같아 수분을 듬뿍 채워 넣기도 하고, 그 속을 꼼꼼하게 오일과 앰플로 메꾸기도 했다. 사람이 훅 가는 것은 정말 시간문제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 낳고 훅~ 갔구나, 적어도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아 시간이 나는 틈틈이 화장품을 찍어 발랐다.
<조지아의 상인>이라는 다큐영화에서도 감자를 캐는 여인들이 나와 "여자들에게 아름다움은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아이를 키우는 우리 엄마들이라고 뭐가 다를까. 아니 이럴 때 꼭 표현을 '감자밭 여인'으로 해야만 하는 거니? 라고 또 생각한다. 꼭 집에서 애를 보더라도 아줌마로 전락해야만 하는 이유는 없었다. 애 보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라는 것을 정말 뼈가 시리도록 알아 버렸기 때문에 '집에서 애 본다'는 표현은 여자에게 대단히 중요하고도 심오한 많은 것이 서려있다는 걸 간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튼 나는 오히려 더 나를 나답게 만드는데 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외적인 것이든 내적인 것이든.
하지만 현실은 아직 나를 자유롭게 놓아주지는 않았다. 아이는 내 품에 안겨 왼쪽 어깨의 티셔츠를 징걸징걸 씹어 온 지 오래였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애착하는 것 한 가지씩이 있는데, 그게 인형일 수도 있고, 작은 담요일 수도 있고, 베개일 수도 있다. 아이 엄마들의 말을 들어보면 애착 물건은 정말 천차만별이다. 엄마를 대신하여 심리적 안정을 누리고 싶어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애착 물건을 가지기에 좋은 시기는 생후 12개월 이후가 적당하고 당연히 3세 이후 부터는 다른 것으로 옮겨갈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애착 물건이 왜 꼭 내가 입은 옷의 어깨 부분이어야 했는가 하는 것이다.
아이는 내가 없이도 그 애착 물건을 통해 안정감을 느낀다고 하는데 '이런, 망했다'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냐하면 엄마 없이도 인형이나 담요, 베개를 끌어안고 있거나 코를 후비거나 입으로 잘근잘근 씹는 행위를 할 동안 엄마에게는 잠시의 휴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망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도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을 통해 휴식을 취하고 스트레스를 표출할 무언가를 함으로써 다시 아이를 볼 힘이 생긴다. 나에게는 아이가 낮잠 자는 유일한 2시간을 제외하고는 딱히 혼자인 시간이 없었다. 밤에는 쓰러지듯 아이를 재우며 함께 잘 수밖에 없었고 아니 거의 실신한다고 봐야 했다. 아침이면 아이와 함께 깼고, 전쟁 같은 육아는 피아노의 도돌이표처럼 다시 돌아가는 반복을 삶에서 가차 없이 진행시켰다.
그리고 지금에야 나는 생각한다. 허지웅의 <살고 싶다는 농담>에서처럼 '만약에'를 언급한다면, 나는 행복했을까. 나는 누누이 그 시기를 거치며 생각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라고. 끊임없이 나로서의 나로 서고 싶은 마음이 그런 외침을 만들며 자꾸 나를 재촉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여기서, '만약에'를 도입해 보자면, '만약에 아이를 봐줄 누군가를 고용하거나 어린이집에라도 보내었다면, 나는 내 시간을 좀 더 활용하며 잘 보내었을 텐데'라는 결론이 과연 나왔을까 하는 거다. 내가 이걸 상상하면서도 도저히 적응이 안되어 글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만약에... 했더라면 더 나았을 텐데.' 불행에 대한 나의 도피일 수도 있고, 결과에 대한 나의 아쉬움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히려 그 시기를 살아냄으로 나는 엄마가 되는 길을 더 나답게 해쳐갈 수 있었다. 그래서 행복은 상황이 아닌 내 안에서 만들어 낸다는 것을 육아를 하며 더 실감했다.
갑자기 방문한 누군가가 보았더라면 "아니 넌 왜 그런 옷을 입고 있니~ 아무리 집이라도 그렇지."라며 오해할 만했다. 그러나 다행인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는 않았다.
왼쪽 어깨들이 모두 너덜너덜해진 티셔츠와 원피스들은 버리자니 아깝기도 했다. 이걸 버리고 나면 다른 옷을 어차피 사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 옷도 마찬가지로 다 뜯어질 건 각오해야 했다.
그래서 입던 옷을 꾸준히 입으며 빨래라도 잘하자는 생각에 아이 옷과 함께 매일 빨기 시작했다. 찢어지고 해진 옷은 웃기게도 빨수록 구멍만 더 커져갔는데 볼수록 가관이었다.
어느 날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몇 벌은 그냥 집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런데 아이가 내 평소의 옷이 쓰레기통 안에 있는 걸 보자, 주섬주섬 꺼내와 서툰 걸음걸이로 다시 내게 안겨주었다. 도로 받아 든 옷을 바라보며 뭔가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신세가 느껴졌다. 앨리스라면 꿈에서라도 깨 깼지만 나는 현실이니 깰 건더기도 없었다.
아이를 키운 지 1년 반이 넘어가니 나는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 동굴 속에서 아이만 키운 사람처럼 점점 골몰이 우스워져 갔다. 이제는 인기가수가 누구인지 그 그룹의 인원이 몇 명인가 하는 것은 나의 관심사가 아닌 지 오래되었고, 요즘 뜨는 미드(미국 드라마)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 나눌 사람조차 희미해졌다. 요즘 핫하게 뜨고 있는 립스틱 색깔에 대해 무감각해진 지도 오래이고 말이다. 물론 그런 것에 관심 가지는 덕후는 아니었지만 나의 젊은 날의 시절이 자꾸만 떠올려지는 건 왜일까.
변해가는 내 뱃살과 허리를 보며 이건 몸무게와는 또 별개라는 것을 알아버린 지금, 정말 박하사탕 영화의 한 장면 '나 돌아갈래~'가 간절히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나의 체형과 패션 그리고 싱글의 안락함과 맞바꾼 나의 육아 현실. 그리고 그걸 통해 깨달은 삶의 태도만이 고스란히 내게 남아 있었다. 옷이 침으로도 삵을 수 있다는 것도 함께.
아이로부터 내 삵은 옷을 도로 받아 들고, 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품기로 했다. 옷에 구멍이 난 만큼 뜯어져 해어진 만큼 나는 어른이 되어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것을 그때서야 주섬주섬 내 안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 이 순간만이 느끼고 지나갈 수 있는 행복에 대하여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비록 셔츠를 입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더라도.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나에게 적어도 지금, 패션은 오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