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포기가 쉽냐고 묻는다면

염일방일

by 리앤

나이가 마흔이 넘었다. 서른과 마흔의 차이는 어감부터가 다르다. 3040(삼공사공)어쩌고 하는 얘기들을 보면 오히려 40대를 30대들과 함께 넣어 준 것이 고마울 정도다. 왠지 40대와 50대를 묶어서 얘기한다면, 그건 또 기분이 영 그럴 것 같다. 내가 50대가 되면 4050(사공오공) 이런 말이 고마워할 일이 될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 포기를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포기'라고 하면 어쩐지 무능한 것 같고, 열정도 없어 보이는 게 영 단어가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육아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를 나로 보이게 만들고 싶은 패션이라든가, 내가 쉬고 싶을 때 마음껏 쉴 수 있는 여유라든가, 먹고 싶을 때 마음껏 편히 먹을 수 있는 것 등 싱글일 때 누렸던 많은 것들이 육아를 하며 자연스럽게 포기가 되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던 욕망들이 어쩔 수 없이 하나 둘 사그라드는 경험을 했고, 그것도 반복이 되면 연습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내가 원하는 것을 내려놓는 일이 쉬워졌다. 아이를 키운, 만 3년에 걸친 나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너그러워지는 줄 알았다. 그렇게 할머니가 되면 인정 많고 푸근하고 넉넉한 웃음의 할머니가 될 거라는 건 순전히 나의 상상에 불과했다. 여전히 마흔을 넘어도 내가 하고 싶고 누리고 싶은 것에 대한 욕망은 줄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것에 힘을 빼고, 손을 피는 것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는 건 나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순전히 육아 때문에 알게 되었다. 특히 무언가에 방해받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나만의 틀을 갖추고 그 안에서 노는 걸 무척이나 즐겼던 사람인데 말이다. 누구나에게 이런 비밀방 같은 마음 하나가 있겠지만, 나에게는 방해받고 싶지 않은 테두리이면서 내가 가꾼 정원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그 정원은 시시때때로 엉망이 되기 일쑤였다.


보기에 아주 사소한 걸 예로 든다면, 라면 하나를 꼬들꼬들하게 끓여서 식기 전에 호로록 입으로 가져가는 일 따위나 매우 감성적인 글귀 하나에 제대로 꽂혀서 나만의 메모장에 메모하며 사색하는 일이 그 경우이다.


더 아주 쉽게 말하면,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혼자 조용히 생각할 거리를 만들며 조용히 힘을 주는 일 같은.

남이 보았을 때 "저게 뭐야?" 하는 일거리이지만 나에게는 매우 중요하고도 뜻깊은 일, 즉 방해받고 싶지 않은 공간과 시간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시간에 누군가 수시로 끼어들어 나를 포기를 해야 한다는 건 달콤한 막대 사탕 하나를 3분의 1쯤 먹다가 도로 뱉어내야 하는 것처럼 매우 껄끄러운 일이다.


처음에는 몇 개월 안된 아기를 보며 화장실에 가는 일도 사치처럼 여겨져서 혼자 엉엉 운 일도 있었고, 큰 일을 보는 도중 아이가 '쿵'하고 넘어져서 볼 일을 대충 끊어야 하는 상황도 왔었다. 그때마다 하나 둘 나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러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순전히 밀려서, 그래야만 하는 상황이 되다 보니 어느 날 나는 매우 도 닦는 사람처럼 많은 일에 마음이 비워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도 아이가 자다 깨면 '안아 달라'는 요구가 있고, 때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 10분에서 20분은 안고 있기에 갑자기 화장실에 가야 할 때는 그냥 데리고 들어가 안은 채로 볼 일을 봐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아이가 더 어렸을 때는 그런 일을 숱하게 해왔다. 지금 이 정도는 껌 씹듯 해내고, 아무렇지도 않다. 세월이 주는 약일 수도 있고, 육아로 고수가 된 엄마의 노련함일 수도 있겠다.


육아를 남자가 하면 철없는 남편이 철들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육아를 하는 남자들이 요즘에는 꽤 많다. 왠지 모르게 통쾌하면서 한편으로는 멋있어 보이기도 하는 건 왜일까. 아무래도 육아에 대한 편견이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에 있는 것 같아 내 머리를 스스로 쥐어박는다.


육아를 하며 철이 드는 건,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며 많은 부분 진짜 어른으로의 성장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많은 부분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며 부족한 부분에 대하여 끊임없이 점검당하고 인내를 하게 하는 마법 같기도 하다. 이쯤 되면 도를 닦는 심정이야 식은 죽 먹기로 해낼 수 있게 되고,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나만의 아킬레스를 수시로 내어 주고도 오히려 짓밟을 수 있도록 넓게 펼쳐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 된다.

그래서 그 끝에는 이런 말이 나오게 될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자장면을 싫어해. 그러니 많이 먹어라."

그때야 자장면 한 그릇 값이 쉽게 써질 수 있는 돈이 아니어서일 수도 있지만, 나 자신에게 중요한 일은 점점 줄어든다는 공통점은 있을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게 말이다.


며칠 전에는 차돌박이를 구워서 세 식구가 나란히 앉아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남편은 다 먹은 상태였고, 나는 계속 먹고 있던 중이었는데, 아이가 고기를 계속 오물조물하며 작은 입으로 먹고 있었다. 아이의 밥은 그대로인데 그날따라 고기가 입맛에 맞았나 보았다. 급기야 고기가 몇 점 안 남은 걸 확인하고 나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다 먹고 배불러서가 아니라 아이에게 양보하려고. 자장면을 온전히 양보한 엄마의 마음까지는 아니어도 갑자기 그 장면이 오버랩되며 나도 모르게 시익 웃었던 기억이 있다. 웃었던 이유는 '나 엄마 맞네!' 하는 신기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겨우 고기 몇 점이긴 해도 큰 의미로 보자면, 온전한 '나'를 내려놓으며 '엄마'라는 새로운 콘텐츠를 내 안에 입력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내 전부가 엄마로만 사는 콘텐츠로 변신을 한 건 아니다. 새로운 것을 통해 내 안에 잠재해 있던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도 있고, 그걸 발전시켜 나갈 수도 있기에 그 변신은 누구도 가늠할 수는 없다.


포기라는 것은 어쩌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또 하나의 과정일 수도 있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버려라> 염일방일(拈一放一)이라는 말이 있다. 송나라 시절 사마광이 물독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장독을 돌로 깨뜨린 사건을 말한다. 귀한 걸 얻기 위해서는 덜 귀한 걸 내려놓는다는 뜻으로 많이 쓰는 말이다.


엄마라는 신분은 아무래도 염일방일의 훈련을 끊임없이 해나가는 존재가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본다. 그리고 진정한 어른으로 나이 들며 할머니가 되었을 때는 내가 상상했던 넉넉한 웃음의 할머니가 되지 않을까.


싱글로 살았더라면, 절대로 몰랐을 것들을 육아를 하며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다른 세계에 입문하며 발 하나를 내어 놓는다.


당신의 시간에도 이런 깨달음의 시간들이 찾아오길 바라며.

그게 꼭 육아가 아니어도 뜻밖에 읽은 책 속에서 혹은 나의 낯선 경험 속에서 혹은 생소한 아픔과 고난을 통해서도 당신에게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모든 훌륭하고 좋은 것은 변장을 하고 우리 삶에 찾아온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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