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로 위안하며
아이의 첫니는 생후 8개월이 좀 넘은 한글날 즈음하여 생겨났다. 한국에 머물 때였다. 그날 친정엄마와 회사 쉬는 날이었던 오빠와 함께 집에서 나른한 오후를 보낼 때쯤이었다.
"점심은 나가서 가볍게 먹을까?"
어쩌다 나온 국수 얘기에 모두 동의했고, 유모차를 끌고 집 앞에 있는 국숫집으로 가 가벼운 우동을 시켰다. 내가 우동 몇 젓가락 먹고 있을 때, 엄마는 아이 옆으로 가 유모차를 밀고 계셨다. 그렇게 유모차를 왔다 갔다 밀고 있던 엄마가 큰소리로 놀란 듯 말했다.
"아니 어머나, 이것 좀 봐봐!"
친정엄마의 높은음은 국숫집에서 일하던 아줌마의 시선까지 사로잡았다. 다 끊지도 못한 우동 가락을 길게 늘어뜨린 채 엄마를 향해 바라보았다. 엄마는 유모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앉아 있는 아이의 입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호들갑을 떠는 엄마의 얘기로는 아이의 첫니가 '뿅'하고 나왔다는 거다. 이가 언제쯤 나오나 기다렸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동을 먹다 알게 될 줄이야. 그래도 나는 태연하게 우동을 마저 먹었다.
옆에 있던 오빠도 신기하다는 듯 "어허허"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젓가락을 든 채 아이의 치아를 구경했다. 어른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자기의 입 속을 확인하고 좋아하니 아이는 뭣도 모르고 신이 났다.
그렇게 차츰 이빨이 하나둘씩 생겨나 지금은 어금니까지 모두 밖으로 나온 상태가 되었다. 아이의 치아를 보며 성장에도 순서가 있다는 걸 알았다.
나올 것 같아 보이지 않던 치아가 어느 날 정말 뿅 하고 올라와 있는 것. 어른들이 "치아가 나올 때가 되었는데~"하며 걱정스레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이미 아이의 잇몸 속에서는 단단한 뼈가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다. 그다음 치아도 이어서 하나 둘 빠르게 나오기 시작했는데, 아이는 그때쯤 씹을 거리를 찾아 잘근잘근 앞니로 씹어 먹는 연습을 했다. 어금니가 생길 때는 비교적 단단한 것도 먹고 싶어 했고, 3살이 되기 전에 모든 치아가 제자리를 찾아갔다.
지금은 아이 자신이 노가리도 먹을 줄 안다고 착각을 하고 있을 정도다.
의사의 말이 어금니가 나올 때쯤이면 많이 칭얼대고 자다 깨는 일이 잦아진다고도 했다. 아이의 투정을 졸려서 혹은 어젯밤 잘 못 자서, 배고파서 등으로 추정하지만 정말 뭐가 맞는지는 모르고 지나간 세월이 더 많았다.
그냥 투정 부리고 짜증 내는 아이를 안고 왜 그럴까를 생각하기보다 순간을 잘 달래며 넘기는 게 당장에 나의 할 일이었으니까.
아무튼 개월 수의 차이는 있지만 발달상황에 맞게 아이들이 사람 꼴이 되어가는 것은 나로서 참 흥미로운 일이었다. 치아는 순차적으로 앞니부터 시작해 점점 안쪽 치아까지 자라나 갔다.
신이 아니고서는 사람을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이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하니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게 실감이 났다. 마치 한 땀 한 땀 실로 떠내려간 퀼트 인형을 보는 것처럼 아니 이보다야 우주만큼 귀중한 게 사람이지만 꼼꼼한 성장 과정 하나하나를 거쳤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사람이 정신적으로 성장할 때에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에 순서가 있듯 우리 삶이 거꾸로 오지 않는다. 다만 내 선택에 의해 느릿느릿 오는 성장도 있다는 것!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성장의 시기가 오고 그걸 어떻게 극복하며 나를 만들지는 각자의 몫이 된다.
다 자란 아이의 치아를 보며 이제 관리는 각자 나름의 일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관리할지는 물론 엄마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지만, 이 치아를 통해 나중에 진짜 치아가 잘 자리를 잡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치아뿐만 아니라 아이의 삶에 있어 방향에 대한 지침도 물론 부모의 몫이 된다. 좋은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로의 역할을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더 숙연해졌다.
아이가 웃을 때마다 치아를 다 훤히 드러내고 웃는데 그 웃음은 늘 나를 상쾌하게 만든다. 과일향 나는 치약을 칫솔 위에 짜서 꼼꼼하게 치아를 문지르고 있는 아이를 보며 '그래도 이때까지 잘 왔다'싶은 마음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문득 정말 문득, "나는 고3 맘이야~ 벌써 두 번째잖니~"했던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나는 이제 겨우 치아 하나 났다고 좋아하고, 또 얼마 지나 다 나왔네! 하며 좋아하는 수준인데 말이다. 친구는 이미 고등학생인 아이 하나를 대학 보내고, 또 하나가 이번에 고3이 된다고 했다. 같은 나이를 살며 같은 관심사 속에 살던 친구가 일찍 결혼을 하여 이십 대, 삼십 대는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것 같은 친구였다. 그래도 어린 시절 알던 친구라 오랜만에 만나도 할 말이 무척이나 많은 친구인데 갑자기 쑥 그 말을 꺼내밀었던 거다. 고3 엄마. 그렇구나. 스무 살이 넘은 딸도 신기하고 다시 고3 엄마가 된 것도 신기할 뿐이었다.
이제야 친구의 아기 키우던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느릿느릿 친구가 걸어간 길을 지금 걷고 있다. 생각해보니 또 다른 친구는 두 아이를 이미 대학 보내고, 박사님이 되어 1인 기업을 하고 있다. 왜 내 주변은 나만 빼고 결혼에 육아에 바빴던 거야? 새삼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진작 애 낳고 살 걸 그랬나 하는 농담 같은 아쉬움도 있다. 사람의 나이 마흔이면 이미 불혹의 나이인 것을.
아이 키우며 성장 순서 하나하나를 거치면 내 친구의 지금 이야기가 또 떠오를 날이 올 것이다. 뒤늦은 육아와 뒤늦은 성장이어도 나는 매일 어제보다 마음이 크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흡족해진다. 이만하면 불혹이 아닌가. 어떤 사물에도 흔들림이 없는 마음! 어차피 성장에는 순서가 있으니 나는 그걸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불혹의 나이를, 이제서 어금니가 다 자란 세 살 아들과 동행하고 있다. 100세 시대니까 괜찮아, 스스로 위안하면서! 당신도 괜찮다. 100세 시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