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아이의 물건으로 채운 집
아이는 자신이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했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걷기를 원했다. 한 발 한 발 마룻바닥을 내딛으면서 몸에 균형을 맞추느라 양 팔을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세네 걸음... 쿵... 한 발 두발. 아이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침대가 있는 방에서부터 거실까지 아이의 힘으로 걸었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서 좋은 건 아이만이 아니었다. 엄마인 나도 좋았다. 전에도 물론 기어서 원하는 장소까지 잘 가기는 했지만, 밖에서의 이동수단은 늘 나의 도움이 필요했다. 크로스 핸드백을 옆에 끼고 기저귀와 물티슈, 간식거리를 챙긴 커다란 가방을 들고 아이를 안는 일은 늘 나의 에너지를 많이 고갈시켰다. 아이가 걸으며 엄마에게도 신세계가 찾아왔다. 자신이 걷을 수 있다는 걸 안 아이는 한동안 안겨 있지 않으려 해서 나의 아픈 팔이 잠시의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며칠이 지나고 다시 안겨 있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그마저도 나에게는 큰 변화였다.
아이의 장난감만 모아놓은 방이 있었다. 되도록 아이의 물건이 거실까지 침범하는 걸 막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리만 잘하면 아이의 물건이 거실에 차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아이는 아침부터 방에 있던 장난감을 모조리 가지고 와 거실에 두었고, 남편도 새로 사 온 러닝홈이나 주방놀이 세트를 거실에 배치했다.
아이의 어른 밥 같은 이유식을 만들고, 야채를 삶고, 과일을 준비하면서 부엌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부엌에 있으면 거실이 훤히 보였다. 아이가 노는 게 내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에 거실에서 노는 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거실 전체가 눈에 들어오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거실은 차츰 정리될 수 없게 아이의 물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러닝홈이 생기고, 플레이 터널과 텐트가 생겼다. 거실은 며칠 만에 키즈카페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나는 거실만큼은 어른의 공간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아이 있는 집에 가면 사방팔방 아이의 물건들로 넘쳐나 마치 아이들만 존재하는 공간처럼 느껴지는 게 싫었다.
"아이 태어나면 아이방에 따로 재운다면서?"
남편은 이 말로 2년 넘게 나를 놀렸다. 아이가 아직 뱃속에 있을 때 나는 남편에게 장담을 했었다. 함께 옆에 두지 않고 아이를 따로 재우겠다고. 그때 남편의 표정은 마치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믿지 않겠다는 얼굴이었다.
"왜? 내가 못 할 거 같아? 미국에서는 이렇게 엄마들이 따로 재우잖아?"
굳이 핑계를 들자면, 그놈의 책이 문제였다. 글쓴이는 미국에서 유명한 육아서를 낸 저자였고, 그녀의 방침은 매우 좋아 보였다. 물론 함께 자는 아이의 정서에 대해 좋은 이야기도 했지만, 결국 떨어져서 잘 재울 것을 권했다. 티브이나 미국 드라마, 영화에서도 그렇게 따로 재우는 모습은 나에게 매우 익숙하기도 했다.
결국, 나는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해주는 이모님께 부탁해 이동식 포터블 침대를 안방 침대 옆에 딱 붙여 달라는 요청을 하고야 말았다.
"아니 왜 애 침대를 다른 방에 놓았대?"
이모님도 대충 눈치는 챘을 것 같다. 첫 애를 키우니 몰라서 하는 말이지, 생각할 수도 있고, 아 저 엄마는 미국식인가 보네, 이 둘 중 하나였을 것 같다. 그러나 내 행동만 보아도 당연히 전자 같은 기분을 떨치지 못했을 지도.
그나마 걷기 전까지는 거실이 소파와 긴 테이블만 놓이면서 깔끔하고 깨끗함을 유지했었다. 거실은 순식간에 그 모습을 달리했다. 나의 아마존 주문이 큰 이유이기도 했다. 공간을 크게 차지하는 텐트 3개들이 세트를 샀던 것이다. 도저히 방에 놓을 수 없는 사이즈가 도착했고, 택배를 여는 순간, 거실에 놓아야겠다는 생각은 의심 없이 찾아왔다. 1평 되는 텐트가 2개나 되었으니.
시간이 점차 지나자 거실의 구조까지 바꾸는 상황이 오고 안방의 침대는 아이와 내가 자는 침대로 바뀌었다. 이동식 포터블 침대 역시 작은 플레이 공간으로 바뀌며 풀볼을 사서 열심히 채워 넣게 되었다. 물론 위치도 거실이었다.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로 무지개 총 천연 빛의 아이 장난감과 교구들이 하나 둘, 거실을 가득 채웠다. 그제야 문득 다시 생각났다. 아, 나는 이렇게 안 한다고 했었는데.
그걸 문득 다시 깨달은 건, 한국에 있는 친정언니의 전화통화에서였다.
"샛별이 집에서 찍은 동영상 보니까 완전 어린이집이던데. 너도 애엄마 다되었네. 원래 애 있는 집 가면 다 그렇게 살잖아. ㅎㅎㅎ 너도 똑같구나!"
"그럼 똑같지 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의 다짐과는 동떨어진 삶이 조금은 아쉬웠다. 그리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태평한 얼굴로 핑크색 플라스틱 냄비에 피자 한 조각을 열심히 올려놓고 있었다. 얼마 전에 남편과 함께 산 푸드트럭 놀이였다. 원래 가격이 70불이 넘는데 특별 세일로 35불에 나온 걸 보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아무리 저렴하게 사도 30% 이상의 세일은 검색 결과 찾을 수 없었던 상품이었다. 순전히 나의 욕심으로 그 박스를 샛별이를 위해서, 라며 카트에 넣었다.
사고 보니 다시 거실을 꾸미는 하나의 공간으로 배치되었다. 뽀로로 매트는 가장 큰 사이즈를 깔아 넓게 바닥을 차지하고, 내 키에 1.5배 되는 긴 테이블은 벽 끝으로 밀려났다. 집은 누가 봐도 아이 키우는 집이었다.
점점 불어 가는 살림은 모두 아이의 것으로 변해 버렸고, 나의 물건들은 서서히 서랍 속에 넣어지고, 수납장에 들어가면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렇게 모습을 감춘 물건처럼 나의 존재도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이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지며 뛸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때에 진한 핑크빛의 여름꽃 배롱나무가 집 앞마당에 색을 더해갔다. 마당에서 아이와 놀다가 1층 창문으로 건네다 보이는 우리 집 거실은 마치 무당집처럼 온갖 색들이 뒤섞여 있었다. 원하지는 않았어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는 엄마야'라는 나의 존재감을 더 두드러지게 심어주었다. 그와 동시에 곧 나를 다시 찾고 싶은 날이 오겠지, 하는 예견도 함께 찾아왔다.
너도 겪어 봐. 그렇게 된다니까, 지인의 말은 맞았지만, 나의 물건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건 조금 서운한 일이었다. 나를 다시 찾기 전까지 순간 멈춤,으로 잠시 살기로 했다. O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