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바람에 흔들리는 꽃과 함께 자유로운 엄마의 상상

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 잔 마셔봤으면...

by 리앤

여름이면 배롱나무의 핑크빛 꽃이 바람에 흔들흔들 여유롭고 또 자유롭게 살랑거리는 게 좋았다. 지금은 사는 곳이 미국이지만, 한국에 잠시 들어와 살 때였는데 그때는 싱글일 때였다. 오피스텔에 혼자 살았고, 그 앞이 아파트였는데 조경이 참 잘 된 곳이었다. 특히 여름에는 이 배롱나무가 너무 예뻐 강아지와 산책하며 노상 그 길을 거닐 던때가 있었다.


미국에서 아이를 낳고 이사를 두 번 했는데, 그중 첫 번째 집 안방에서는 마당에 심은 배롱나무가 창 밖으로 환희 내다 보였다. 아이를 낳고 거실이 마치 키즈카페와 같다고 말한 그 집이다. 나는 그곳에서 아이를 낳고 만 2년을 살았다.


샛별의 나이 만 2세 전, 그 처음 집에 살면서 아이 기저귀를 갈다가 문득 바라본 창 밖 풍경은 너무나 고요하고 한적해 보여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몸은 바쁘면서 생각은 몇 년 전으로 돌아가 한가하게 꽃구경을 하곤 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육아로 돌아가겠다.


샛별이가 1년이 안되었을 때 종종 물총처럼 쏘아 올린 오줌이 발사해 내 코와 입을 적중할 때가 있었다.

'이노무시끼!'

물론 마음속으로 했다. 입을 벌리기라도 하면 오줌이 윗입술에 붙어 있다 뚝, 하고 떨어질까 손에 든 모든 걸 그대로 놓아두고 화장실로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쩔 때는 아이의 노란 오줌이 이마와 머리카락을 쏠 때도 있었다. 기저귀 가는 시간이면 정말 신속하고 정확하게 갈아야 했다. 기존에 차고 있던 기저귀를 벗기기 전 '여이~~~ 땅!' 하며 손이 안 보일 정도로 샤샤샥!! 그런데 늘 마음뿐이었지 그때 누군가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 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기저귀를 가는 일이라고 답할 만큼 그 일은 늘 도전이었다.


어느 날은 잠시 집에 들른 얄미운 남편에게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했다. 제발 오줌을 타이밍에 맞추어서 아빠 얼굴에 보기 좋게 쏘아 올리기를 기도하면서. 그러나 아빠의 이미지를 꼭 닮은 아들 샛별이는 아빠 편이었나 보다. 아쉽게도 그리고 슬프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후 며칠이 지나 엉뚱한 날에 쏘아 올린 적은 있다. 예기치 못할 때 남편이 당하는 모습은 통쾌하다 못해 즐겁고 샛별이가 대견하기까지 했다.


어쨌든 말로만 듣던 '아들 키우기'는 그렇게 실전이 되어 내 삶에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아이의 하루하루 빠른 성장은 정말 엄마가 허덕이며 쫓아가야 했다. 이다음은 뭐! 그다음은 뭐! 등 쉴 새 없이 사람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늘 필요한 건 엄마의 수발이었다. 이유식조차도 처음에는 미음식으로 그다음은 쌀을 많이 갈아서 또 그다음은 쌀 굵기를 좀 중간으로. 야채는 이런 순서, 저런 순서, 과일은 언제부터 차근차근! 또 세월이 좀 지났다고 분명하게 생각은 안 나지만 때에 맞는 이것저것은 엄마를 매우 바쁘게 만들었다.


창 밖으로 배롱나무 꽃을 보다가 테라스에 앉아 커피 한 잔 먹어 봤으면, 하는 생각에 상상의 나래를 펼 친 적이 있었다. 그 와중에 생각나는 테라스가 또 있었는데 그건 바로 예전에 한국에서 친언니가 잠시 일했던 커피집이었다.


그 당시 나는 키우던 강아지 말티즈, 딸기를 데려와 야외로 통하는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눈이 부시게 찬란한 태양은 테라스의 테이블 곳곳을 밝게 비추었고, 하얗고 매끈하게 빗겨진 딸기의 3센티 정도의 털은 빨랫줄에 널어놓은 흰 빨래보다 더 희고 눈이 부셨다.


언니가 일할 동안 나도 오래 머물 생각에 책 한 권을 작정하고 가져왔고, 딸기는 내가 앉은자리 옆으로 빈 의자 하나를 가져와 그 위에 앉혀 놓았다. 그곳에서 한가로이 주문한 호두파이를 먹으며 아메리카노를 마셨던 기억이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나를 기다렸다.


똥기저귀를 빼서 옆에 놓고 물티슈로 엉덩이를 슥슥 닦는 내 표정은 아무렇지 않았고, 익숙하게 엉덩이를 들어 올려 새 기저귀로 갈았다. 그러면서도 아이는 다리를 들었다 올렸다 하면서 오른쪽 왼쪽 몸을 가만히 두지 않은 덕분에 어쩔 때는 발로 얼굴을 맞는 사태도 일어났다.


그 와중에도 참을성 있게 드라마 이어보듯 이어서 생각하는 차분함도 생겨 나는 테라스의 불어오는 바람을 맞았고, 커피 향도 은은하게 코끝으로 맡아지는 상상을 했다. 겨우 기저귀 하나를 갈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눈을 감으면 그 카페에 내가 앉아 있는 것 같고, 눈을 뜨면 방 안 천장의 모빌 하나가 현실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또 눈을 감으면 카페의 앤틱하고 아기자기한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인 나의 시간은 모두 아이에게 빼앗겨 옴 짤 달싹을 하지 못했지만, 상상만큼은 끝내주게 하게 되었다.


그 후 지칠 때마다 나는 상상했다. 사람도 별로 없는 한적한 카페에 혼자 들어서면, 외모가 엄친아쯤 되는 젊은 청년이, 한 번 앉으면 깊게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푹신한 소파에 나를 안내한다. 눈을 감고 나비처럼 가뿐히 소파에 몸을 던져 깊숙이 소파 속에 파묻히고 나는 에디오피아산 시다모 한 잔, 드립으로 내게 가져와 내려 줄 것을 부탁한다. 엄친아 같은 청년이 곧 드립 잔과 주둥이가 얇고 긴 팟 하나를 쟁반에 받쳐 가져온다. 굵은소금 같이 잘 간 시다모 커피빈을 드리퍼에 담고 뜨거운 물을 담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드립포트를 들어 둥글게 둥글게 둥글게 그러다가 그만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춥시다'하는 아이의 동요와 맞물려 나의 상상은 거울이 깨지듯 쨍그랑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런 적이 한두 번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짧은 순간도 나는 정말 커피 향을 맡는 것 같았다. 그렇게 즐긴 나의 상상은 실제로 육아에 힘이 되었고, 그때부터 몸은 바빠도 나의 생각과 귀가 열려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눈은 창 밖의 싱싱한 배롱나무를 보며 열심히 아이의 똥기저귀를 갈고, 연체동물과도 같은 아이의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옷을 벗기고 입히고를 반복했다. 나의 손놀림이 빨라지고, 많은 것에 익숙해질 때쯤 배롱나무의 꽃은 지고 날은 점점 싸늘하게 변해갔다.


주변 나무들이 노랗고 빨갛게 물들 즈음하여 배롱나무 옆 감나무는 열매 없이 홀로 조용히 입을 닫은 듯했다. 신기하게도 한 해를 걸러가며 열매를 맺는 감나무였다.


그 해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 감나무는 빈 몸만 드러내고 있었고, 그렇게 가을은 샛별의 두 돌을 향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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