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맙소사! 말로만 듣던 육아전쟁!

전쟁 일지 01

by 리앤


마흔이 넘은 나이에 말로만 듣던 육아전쟁을 몸소 겪게 되다니. 흔히 여자들이 출산하고 만나는 젖몸살이 무엇 인지도 알게 되었다. 육아가 어땠어요?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오 마이 갓'을 다섯 번은 외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마 반은 정신이 나간 여자라고 생각할라나. 그러나 사실이다.


어느 책의 문구를 보았는데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그리고 육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더 미친 짓'이라고 그 책은 정의 내렸다. 한바탕 크게 웃었는데 그 안에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아 책을 읽지도 않은 내가 아는 체를 해버렸다. 저자도 누구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다른 내용으로 쓴 글이었다면 우선 사과의 말을 전한다.


혹 마흔이어서,라고 오해는 하지 않기를 바란다. 육아가 마흔이어서 힘든 게 아니라 그냥 힘든 게 육아다. 이십 대라면 그게 멋몰라서 힘들고, 삼십 대라면 알 듯 하나 뜻대로 안 되어 힘들고, 사십 대면 끊임없이 주어야 하는 육아라 힘들다. 안정적으로 살 것 같은 사십 대에 늦은 육아는 다시 내 모든 걸 내어 주며 시작하다 보니 힘들다. 사실 몸이 힘든 건 이삼십 대에 아이를 안 낳아 보아서 지금 더 힘든 건지 어떤 건지 가늠이 안 갈 뿐이다. 아무렴 어떤가, 그냥 힘든 게 육아인 것을.


육아를 처음 맡으며 느꼈던 그때의 감정들을 되살려 지금부터 적어 보겠다.


깊은 잠을 깨운 건 다름 아닌 단단해져 가는 가슴이었다.

맞다. 아이가 없는 허전한 뱃가죽과 태어난 아이의 부재는 그 우울감이 오래가지 못했다.
젖몸살이 오려고 했다. 세상에서 처음 맞는 고통. 그때부터 유축기의 쉭쉭 돌아가는 소리는 친근하게 리듬까지 더해져 나의 마음을 더 쓸쓸하게 했다.


기다리던 병원에서의 전화를 받았다. 아이는 배꼽 이상으로 다른 검사가 필요했고, 나 홀로 집에 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괜찮다'는 전화 한 통은 나의 큰 걱정을 한시름 내려놓게 했다. 아이는 배꼽에 이상이 없었다. 단지 좀 빨갛게 부었을 뿐이었던 거다. 외근을 하는 남편에게 전화해 아이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병원에 전화해도 아이가 없다는 얘기를 남편에게 듣고 말았다.

다시 병원으로 전화를 했다.


"아이 이름이 00라고요? 그러나 맡겨진 아이는 없습니다."

"뭐라고요? 방금 아이가 괜찮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없다니요?"

"다른 쪽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처음에는 '에이, 아니겠지. 뭔가 착오가 있는 거 아니야?'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같았다. 아이가 없어진 것이다. 몇 군데 연락을 해봤지만, 아이 이름이 뜨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답변만 듣고 끊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다. 내 뱃속에서 나간 아이가 없다니. 없을 리가 없지 않은가. 방금도 아이가 괜찮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순식간에 사라지다니. 마치 그런 아이를 받은 적이 없는 것처럼 말하는 간호사들이 더 어이가 없었다. 힘이 툭 풀렸다. 남편은 다시 연락해보고 있으니 기다리라며 병원으로 가고 있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그렇게 아이를 잃은 엄마로 한 시간을 넘게 보냈다. 허전함이 어두운 밤을 이끌고 오는 것처럼 내 앞은 그저 캄캄할 뿐이었다. 하루 먼저 집에 온 내가 가슴이 시리도록 미웠다. 어쩌자고 아이를 낳고 혼자 집에 돌아온 건지. '하루만 참았어도 테스트 결과를 알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짓눌렀다. 후회를 하는 성격도 아닌데 그날따라 일 초가 일 년처럼 느껴지면서 마음이 쓰리고 또 쓰렸다.


한참 후 남편이 내게 전화를 했다.

"어떻게 됐어? 찾았어?"
남편의 대답은 다행히 내가 기다렸던 답변이었다. 아이를 맡긴 곳에 전화를 받는 담당자가 확인을 잘못한 거였다. 이런 일은 미국에서 매우 큰 사건에 속하기 때문에 전화를 다시 받은 그녀는 똑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며 "확인되었다."라고 남편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코끝이 찡해지면서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아이를 낳고 흘리는 눈물이 이렇게도 많아질 줄 알지 못했다. 나의 호르몬 이상은 구석구석 내 모든 감정을 쑤시고 다니며 작은 일에도 쉽게 무너지게 했고, 빠른 감정의 변화에 내 몸이 적응을 하지 못했다.


어쨌든 남편은 차가 막히는 시간을 뚫고 카시트에 담은 작은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의 얼굴은 너무 태연하면서 맑고 평온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그렇게 아이는 잠을 새근새근 잤다.


그때부터였다. 정신없는 육아 전쟁이 시작된 것은.

아이는 두 시간, 세 시간마다 빽빽 울어댔다. 배가 고파 울고, 기저귀가 젖어서 울고, 졸려서 울고, 끊임없는 욕구에 아이는 그저 울기만 했다. 그 욕구에 반응을 하며 그때그때 많은 것을 확인해야 하는 자리가 바로 엄마였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그런 일상은 반복이었다. 매일 해야 하는 일은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잊게 만들었다. 거울도 보지 못했고, 세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저 나의 시간은 온전히 아이를 위해 있는 시간이었다. 밤에도 아이는 두세 시간마다 일어났고, 나는 젖병을 물렸고, 기저귀를 갈았고, 유축기를 돌렸다.


아이는 젖을 물지 않았다. 이미 병원에서 그 짧은 사이 젖병에 익숙해져서 진짜 젖을 알아보지 못했다. '힘만 들고 어렵게 온 몸을 써야 하는 짓은 왜 해? 입만 달짝 거려도 금방 먹을 게 나오는데. 내가 바보야?'라는 것만 같아 나는 또 그 앞에서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많은 노력에도 아이는 마음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처음 맞닥뜨린 아이에 대한 나의 거절당함은 '엄마'라는 자리를 생각하게 했다. 엄마라는 단어가 가지는 느낌을 사물로 표현하자면, 난로, 모닥불, 나무, 하늘, 길, 빛처럼 따뜻하며, 포근한 것이다. 생각하면 마음에 미소가 지어지고 세상에서 이처럼 아름다운 이름은 없을 것 같다. 부르기에도 좋은 '엄마'라는 단어를 갖기 위해서 엄마는 또 얼마나 많은 걸 참고 견디어 왔는지 그 전에는 알지 못했다. 쉽게 가져지는 이름인 줄 알았던 내가 뒤통수 한 대를 보기 좋게 맞은 날이었다.


“아니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이 아주 약았다니까. 나 같으면 젖을 물지 이깟 고무 대가리 줘도 안 물겠다.” 산후조리사 이모님이 옆에서 보다 못해 말을 거들었다. 나를 위한 말이었을 텐데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혼자 긴 싸움이 이어졌다. 아이와 나, 단 둘이 힘을 겨루 듯 ‘누가 이기나 보자’ 식으로 나는 덤비고 또 덤벼 굳이 안 물겠다는 아이를 울리면서까지 배를 곯게 만들었다. 그래도 젖은 물지 않았다. 아주 잠시 시늉만 낼뿐 자지러지게 우는 건 늘 마찬가지였다.

하는 수 없이 유축기로 모유를 짜내고, 그걸 젖병에 담아 먹이는 방법을 택했다. 2시간마다 젖을 찾는 아이가 버거워 며칠이 지난 후부터는 반은 일반 분유를 타서 혼합해 먹이기 시작했다. 젖병 소독과 유축기 소독, 시간마다 아이 젖병 물리고, 나는 나대로 유축기로 모유를 짜고. 이중의 힘듦이 나의 잠을 방해했고,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된 육아는 예뻐하고 사랑하는 시간보다 힘든 일을 매일 반복하며 버티어 내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단, 아이가 잘 때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은 나의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힘이었다. 그것으로 나의 하루가 꾸역꾸역 살아졌다. 2-3시간마다 깨는 일은 고역이었고, 학창 시절 시험기간에도 밤은 새우지 않았던 내가 한두 시간마다 깨어야 하는 일은 고문과도 같았다. 아이를 키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시간을 지나간다. 아이는 이런 엄마의 희생을 먹고, 몸무게를 키우며 몸이 자라는 거였다. 비로소 엄마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희미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때마다 소아과에 가서 재는 아이의 키와 몸무게는 정확한 퍼센티지로 매겨져 엄마에게 전달이 되었다.
나의 경우 엄마로서의 자격을 검증받는 것 같아 매번 알 수 없는 한숨을 쉬게 했다. 이런 감정은 알고 보니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엄마의 말로는 ‘시험성적표’ 받는 기분이라고 표현해 나를 깔깔 웃게 만들었다.

맞다. 시험성적표. 나는 고개 숙여 그 점수를 받아내야 했으며, 나의 모든 수고와 인내와 헌신이 “잘하셨네요.” 혹은 “몸무게를 좀 더 키우셔야겠어요. 저번이랑 차이가 별로…” “100명의 아이 중 순위 00위에 속하네요.”라는 단 한 마디의 결과물로 나에게 전달되었다.
어떨 때는 기분 좋게 병원을 나왔지만, 또 어떨 때는 씁쓸한 마음으로 병원을 나와야 했다. 아이를 안고 집으로 향하는 그 걸음은 알 수 없는 이상한 호수에서 헤엄치다 빠져나온 듯 무겁고 질퍽거렸다.

"나 병원 왔다 갈 때마다 기분 이상해. 그 기분 알아?"

바쁘게 일하다가도 아이의 검진 날이면 꼭 참석했던 남편도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게 차라리 현명한 생각이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지금은 이 느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위로가 된다. 이렇게 글로 표현할 수 있어서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콜라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눈치 보지 않고 트림 한 번 시원하게 한 느낌이랄까.


에피소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이가 3개월이 되어갈 때 집 안에 건조함 때문인지 피부가 빨갛게 번지기 시작했다. 누렇고 끈적끈적한 바셀린 타입의 젤을 열심히 발라도 소용이 없었다. 급기야 병원을 찾게 되었는데, 처방약은 스테로이드 1%가 들어간 연고였다.

"아니 스테로이드 들어간 걸 3개월 아기에게 바르라는 거야?"

남편에게 나지막이 괜한 하소연을 했다.


한숨이 길게 쉬어졌다. 온도를 아이에게 맞추고, 보습을 위해 종류별로 로션을 발라도 소용이 없었는데, 결과는 스테로이드 들어간 연고를 바르라는 거였다.

다른 엄마들도 해 볼 건 다 해보고 병원을 찾을 테지만, 그 처방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선 알겠다고 말하고 소아과를 나왔다.


아이는 아직 통잠을 자기 전이었고, 전쟁 같은 하루하루에 보너스처럼 더해진 피부 버짐은 나에게 충분한 부담감을 더해 주었다. 소아과를 나오며 다시 엄마로서의 자격이 있나 없나 시험하는 시험대에 올려진 듯 마음이 옥죄어 왔다. 차로 와서 아이를 카시트에 태운 후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는 아이의 볼을 스르륵 어루만졌다. 그 어루만짐은 나 스스로를 위로하듯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그리고 나는 며칠 동안 차마 연고를 아이에게 대지 못했다.


그렇게 마흔을 넘긴 육아는 시작되었다. 육아도 처음인 것을 아토피는 또 뭐란 말인가. 아무 정보가 없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새롭게 알게 되는 게 이처럼 많을 수 있다니. 마흔의 육아는 역시 신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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