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냘픈 숨이 내게로 왔다. 그리고 텅 빈 집.
당신에게 마흔은 어떤 나이인가? 중년이 되어 조금씩 자유로워질 나이라는 생각은 아마 내 친구들도 모두 같을 것 같다. 나는 조금 다른 마흔을 살고 있지만 말이다. 마흔을 넘겨 안아 본 첫 신생아라니.
내가 지금 이렇게 말하니까 마흔을 넘긴 엄마들이 모두 자신의 출산을 회상할 수도 있다. 빠르면 이십 년 전의 일일 수도 있고 늦다 하더라도 나처럼은 좀 드문 일일 것 같긴 하다. 솔직히 말하면, 내 친구의 딸은 결혼을 생각하는 남자가 있다고도 했다. 아뿔싸! 내 아들과 조카 같은 아이의 자식이 거의 친구 뻘이 될 수도 있다니! 하긴 뭐 '세상에 이런 일이' 외치다 보면 칠순을 넘긴 할머니가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았다는 어느 인도의 이야기도 있다지. 여자라면 바로 드는 생각이 '생리를 그때까지 한 거야?'라는 의문이 잠시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의 출산을 되짚어 보면 이렇다.
뱃속 아이의 머리는 컸다. 자궁이 열리려는 듯 이슬이 맺히고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한 날, 제왕절개 수술을 준비했다. 물론 이미 준비된 날짜였지만, 의사는 다시 한번 “자연 분만해 볼래요?”라고 물었다. 물론 의사는 임신 기간 후반쯤 아이 머리가 커서 수술이 더 나을 것 같다고 조언을 준 상태였다. 남편은 내가 힘들게 자연 분만하다가 결국 수술로 갈까 봐 차라리 현명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도 처음 출산이어서 두려운 마음도 있었고, 아이 머리가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할 경우에 생기는 난산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제왕절개 절차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산부인과 층의 대기실 같은 곳에서 나의 건강 상태를 확인했고, 수술할 수 있는 편한 옷을 주어 갈아 입고 침대에 누웠다. 드디어 내가 누운 침대가 움직이며 수술실로 향했다. 척추를 통한 마취주사를 맞았는데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수술 경험자들이 써 놓은 글을 충분히 찾아 읽었기에 모든 절차가 예상이 되었고, 마음이 더 안정되었다. 상체는 마취가 되지 않아, 말도 하고 움직일 수도 있었다.
특별히 추위를 잘 타는 나는 수술실의 온도가 마음에 들었다. 얇은 거적때기 같은 천을 환자복이라고 입고 있었고, 긴장한 상태로 손과 발이 차가울 줄 알았다. 의외였다.
친절한 스태프들은 내 마음까지 진정시키며 수술에 잘 임할 수 있도록 안정감을 주었다.
마취가 퍼져 하체에 느낌이 없을 때쯤, 의사와 보조하는 사람 둘이 더 와서 수술을 시작했다.
잠시 후 아기를 꺼내렸는지 몸이 들썩였다. 느낌은 나지 않지만 어떠한 상황인지 인지가 되니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뭔가 안되는지 의사가 지시를 내렸다. “머리가 생각보다 크네. 옆에 더 컷 해봐.” 말소리까지 들리니 기분은 더 이상했다. 남편은 내 머리맡에 앉아 더 긴장된 얼굴로 손을 잡고 있었다.
배 부위 옆을 더 확장하고 아이를 꺼내려고 내 몸이 몇 번 더 들썩였다 잠시 후 수술실 안이 분주해졌다. “아빠분 이리 오세요.”라는 소리와 함께 남편은 황급히 일어나 아이에게로 갔고, 탯줄을 자르는 것 같았다. 곧이어 수건으로 아기를 감싼 후 몸 구석구석을 닦아 내었다. 그 후 분주히 몸무게를 재고 키를 쟀다. 누워 있어도 한쪽으로 아이를 안고 바삐 움직이는 스태프들이 보였다. 남편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고, 아이는 으아아 앙~ 가냘픈 울음을 울었다.
으아아아앙.
이 소리를 듣기 위해 품었던 40주의 긴 시간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쳤다. 아득해질 정도로 설레었던 순간부터 아이를 위해 먹었던 음식들, 늘 함께 같이 다니며 대화했던 차 안, ‘엄마, 나 여기 있어요’하는 것 같은 발길질. 알록달록 색을 입고 나뒹구는 낙엽들 사이를 발로 밟고 지나가는 것처럼 내 추억의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가냘프게 이어지는 울음소리는 길지 않았다. 짧은 순간에 멈추었고, 대신 내 볼에 뜨근하고도 축축한 것이 또르르륵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남편은 잠시 뒤돌아선 채 팔로 얼굴을 쓸어내리는 듯하더니 이내 나를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이 따뜻한 봄 햇살에 살포시 얼굴 내미는 할미꽃처럼 미소가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남편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가냘픈 숨을 고르는 조그마한 아이를 스태프 중 한 명이 데려와 내 가슴팍에 안겨 놓았다. 그 순간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내 전신을 타고 흐르는 찌릿함이 좀처럼 가시지를 않았고, 봄에 흐드러진 꽃을 보는 듯 나의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아이는 조금 우는 듯하다가 금세 울음을 멈추었다. 쪼글쪼글 작은 아이를 생각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는 피부도 매끈하고 건강한 체질의 아이였다. 태어났을 때 몸무게가 3.6Kg이었다. 머리가 큰 건 모르겠는데 둘레가 앞뒤짱구이다 보니 뱃속에서 매우 큰 듯 보였을 듯도 했다.
나는 선물처럼 온 밝은 빛을 한 아름 내 손에 안아보는 느낌이었다. 아이는 다시 데려갔고, 나의 회복상태를 보기 위해 회복실에서 나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회복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전되었다. 혈압이며 모든 것이 정상이었고, 수술 후 통증을 위해 진통제만 처방해 주고 스태프 둘이 입원실로 나를 뉘었다.
그리고 곧 투명한 플라스틱의 작은 아기침대가 도착했다. 조금 전 가냘프게 울었던 아기가 인형처럼 누워 있었다.
나직이 속삭였다. ‘어서 와, 세상은 처음이지?’
여러 간호사들이 나의 입원실을 들락거리며 아기 앉는 자세와 주의사항을 일러 주었다. 그리고 아기 상태를 여러 번 확인하고 갔다. 피곤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하지만 첫 날을 제외하고 다음 날부터 알 수 없이 아이는 보채고 울었다.
“왜 우는 거예요?”라는 질문에 간호사들은 한결같이 “그냥 운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신생아들은 이유 없이 운단다. 내 물음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간호사들은 자리를 떴다.
처음에는 좋았지만 계속되는 건조한 입원실의 히터가 답답했고, 시켜먹어야 하는 미국 음식이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 수술 후 돌아와 방귀를 뀐 후 먹은 것은 수프와 빵조각, 치킨을 넣은 퀼사델라, 에그 오믈렛 같은 것들이었다. 그래도 비교적 흐물거리고 따뜻한 것을 주문했다. 식단도 두세 가지 중 고르는 것이면 좋을 텐데 길게 다음 장, 또 다음 장으로 이어지는 레스토랑 메뉴판 같은 메뉴는 나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 음식메뉴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뿐더러 나의 눈은 수술로 인한 것인지 침침한 게 글씨가 또렷이 보이지 않았다.
아기 낳은 걸 축하하기 위해 지인들이 들락거렸다. 그들이 남기고 간 손수 끓인 미역국과 밥은 내 영혼을 어루만지듯 반가웠고 구세주처럼 고마웠다.
후루룩 후룩
미역국에 밥을 말아 수저로 한가득 입에 가져갔다. 밥알이 입 안 가득 씹히며 그동안의 낯설고 힘든 하루하루가 위안을 받는 것처럼 알알이 뭉개지며 단맛을 내었다.
창 밖의 날씨는 매섭게 바람이 불고 있었고, 나무뿌리는 뽑히기라도 할 것처럼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진눈깨비 같은 눈이 질서 없이 공중위로 마구 흩어졌고, 걸어서 주차장과 병동을 오가는 사람들의 움츠림은 사막 위 바람을 만난 사람처럼 흔들리면서도 의미심장해 보였다.
그 바람을 뚫고 온 지인의 얼굴이 새삼 고마웠다.
젖이 조금씩 돌 때쯤 나는 먼저 퇴원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배꼽에 이상소견을 보여 병원에 더 머물러야 했다. 집에 현관문을 열고 아이 없이 들어오는 나의 발걸음은 마치 울리는 복도에서 쿵쿵 내딛는 발걸음과도 같았다. 무거우면서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아이를 낯선 병원에 홀로 두고 어두운 불 꺼진 집 안을 들어오는 내 모습은 기괴했고, 금방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그동안의 알 수 없는 피곤함과 내 뱃속의 허전함은 한꺼번에 나를 짓눌러 끊임없이 눈물을 쏟아내게 했다.
빈 껍데기 같은 배를 쓸며 곧 깊은 잠에 빠졌다.
여기까지가 나의 출산 이야기다. 출산은 임신을 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다. 나도 여러 명의 제왕수술을 한 이야기를 훑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마흔 하나에 건강한 출산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당신도 물론 해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사십 대도 결코 늦지 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