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탄생
임신을 하고 사계절을 순서대로 겪으며 쓴 일기와도 같은 글을 올려본다.
봄
소파에 누워 흘러나오는 노라 존스의 늘어지는 재즈를 들으며 휴식을 취했다. 봄이 되어 푸릇푸릇 새싹들이 얼굴을 내밀었고, 목련이 얼굴크기만큼 활짝 웃으며 핑크빛을 뽐내는 봄이었다. 그나마 임신 중의 봄은 봄다운 계절이었고 그 이후 아이를 키우며 계절이 어찌 가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때는 하얀 실을 손가락에 꼬고 코바늘을 대어 티 코스터를 정신없이 뜨다가 벌러덩 소파 위에 누워 감미로운 음률에 취해 있곤 했다. 그때 우리 집 애완견인 몰티즈, 딸기가 소파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내 겨드랑이 밑으로 얼굴을 파묻다가 순간 껑충 토끼처럼 내 배 위를 뛰어올랐다. 무방비 상태로 갑자기 습격을 당한 나는 그때부터 아랫배가 조여 오고 아파오기 시작했다. 찌릿찌릿한 게 기분 좋지 않은 아픔이었다. 남편과 오후에 스테이크를 먹으러 레스토랑에 가겠다고 예약까지 한 상태였다. 배는 아픈데 안 가자니 스테이크가 너무 먹고 싶어 조금 먹더라도 가겠다고 말하고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배는 계속해서 묵직해지는 느낌이 났다가 찌릿함으로 변하고 다시 지그시 누르듯 아파왔다. 보통 키우던 강아지는 주인이 임신을 하면 대번에 안다고 들은 적이 있다. 배은망덕하게도 딸기는 평소에 안 하던 짓까지 하며 나를 배신했다. 그 경험 이후로 딸기 옆에서는 몸을 가리게 되었다. 배아픔이 반나절까지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무 탈 없이 위험하다는 초기를 잘 넘겼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사람 중에는 첫 째 아이의 생각지도 못한 기습공격에 종종 놀란다는 이야기도 어디선가 주워 들었다. 게다가 첫 째가 어리면 안을 때 만삭의 배를 의자 삼아 올려놓는다고. 배가 의자 역할도 하는구나 싶어 혼자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낄낄대고 웃었다.
싱글일 때는 생각도 못했던 기이한 일들이 임신 때부터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아마 내 얘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도 아줌마일 가능성이 높다.
여름.가을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임신이 아닌 것 같은데도 배가 나온 아줌마들을 많이 본다. 그다지 남의 배에 신경 쓰지 않고 살다가 내 배가 불러오니 남의 배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국이라면 ‘아, 저 여자도 임신했네. 몇 개월이지?’이런 생각이 들었을 텐데, 내가 사는 곳이 미국이다 보니 체질적으로 배가 나온 사람들이 많아 함부로 속단할 수가 없다. 아시아인의 체질은 확실히 서양인의 체질과는 현저히 다르다.
어쨌든 사람들 속에 끼어 배 나온 나의 배를 사람들이 살찐 것으로 오해할까 봐 기분이 다소 좋지는 않았다.
의심 어린 눈으로 쳐다볼 것 같으면 당장에 “내 배 똥 배 아니거든~”하고 말해주고 싶었다. 솔직히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데 말이다.
나중에는 그러거나 말거나 내 배는 지금 생명을 품은 배인데, 당신들의 배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자부심이 스스로 생기기도 했다.
예전에는 임부복이 크고 펑퍼짐한 원피스형이었다면, 지금은 슬림하고 약간 스판이 들어가 있어 타이트한 원피스를 선호한다. 아래는 임부복 청바지도 스타일 있게 나와서 얼마든지 패션에 떨어지지 않고 예쁜 코디가 가능하다. 이십 대 시절, 헐렁한 친구의 임부복이 생각나 갑가지 세대 차이 아닌 차이를 느끼게 되었다. 그 친구는 지금 딸의 임부복을 고를 수도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배가 조금씩 나오면서 나에게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바로 거울 앞에 서서 배를 자꾸 확인하는 일이다. 사진도 이리저리 찍어 본다. 아마 초보 임산부 시절, 누구나 이 시기에 나 같은 시간을 보내었다고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매일 다른 하루하루를 맞이하며 배가 불러온다는 것은 우주 하나하나를 내 속에 품는 일과도 같이 벅차고 특별했다.
아기를 기다리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기다림이 되었다.
겨울
막달이 되었을 때는 움직이고 숨을 쉬는 것조차 힘에 겨웠다. 밤에 잠을 잘 때는 제대로 뒤척일 수도 없고, 몸을 똑바로 누워서 잘 수도 없었다. 이미 그렇게 잠을 잔 지 오래였지만, 무거워진 배는 오른쪽 왼쪽 몸을 뒤척일 때마다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나왔다. 마치 커다란 자라 한 마리를 배 안에 감추고 사는 느낌이랄까.
다리는 퉁퉁 부어서 손가락으로 누르기라도 하면 한참 후에 살이 채워져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웠다. 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배가 나온 게 아름답지만은 않는구나.’ 느끼며 아기가 나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그것만 빼면, 뱃속의 태동은 너무도 신기했다. 배가 터질 듯 당기기도 했다가 스윽 몸을 돌려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은 남편에게 말로 설명이 되지 않았다. 발로 힘껏 찰 때는 나도 모르게 ‘아’ 하는 짧은 신음도 튀어나왔다. 그러면 탱탱하게 불러온 배가 울룩불룩해지며 뚫고라도 나올 기세였다. 힘이 센 아이임에 틀림없다, 생각했다.
배가 남산만 한 채로 장을 보러 한인마트에 갔다. 출산 후 미역국에 넣을 소고기도 미리 필요했기 때문이다. 미역은 친정엄마가 한국에서 10 봉지나 보내왔다. 직접 딸에게 와서 미역국이라도 끓여 주고 싶었을 텐데 나는 굳이 오시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산후조리 이모님도 미리 예약을 해 둔 상태이고 엄마가 오신다 해도 힘든 일만 있을 것 같아 부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멋 모르고 했던 당부였다. 엄마는 또 딸이 오지 말라니 내 의견에 존중해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출산을 앞두고 혼자 장을 보는 건 뭐 그리 즐거울 건 없었다. 붕어빵과 함께 말랑말랑한 찹쌀떡을 그 자리에서 떼어 팥고물에 묻혀주는 코너가 있었다. 그나저나 눈에 들어온 건 붕어빵이었다. 3개에 5불이란다.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주문을 하고, 근처를 맴돌며 기다렸다. 한국에서 붕어빵 파는 리어카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돈 내고 기다리는 기분을 또 오랜만에 느껴보았다.
“애기 엄마~ 붕어빵 나왔어~”
내 뒤통수에 대고 분명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속으로 웃음이 나오는 걸 참지 못했다. 환하게 웃으며 “감사합니다.”라며 붕어빵을 받아 들고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내 웃음의 정체를 들키기라도 할까 봐 쑥스러웠고, 낯간지러웠다. 태어나서 처음 “애기 엄마~”소리를 들었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날아갈 듯 좋은지 다시 가서 절이라도 넙죽하고 싶었다. 그 말의 즐거움은 밤까지도 이어져서 혼자 히죽거리며 실성한 사람처럼 ‘애기 엄마’를 되뇌었다. 지금에야 너무 익숙해진 이름이지만 그 말을 들은 첫 날은 잊을 수 없게 지나갔다.
그날 말이 주는 따뜻함에 초겨울의 찬바람을 몽땅 녹일 것만 같았다. 봄과 함께 찾아온 소식은 무르익어 여름을 맞이했고, 배는 티가나 게 커지면서 낙엽이 함부로 땅에 뒹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출산이 가까운 12월에 접어들었다. 라디오에서는 리믹스한 크리스마스 캐럴이 흔하게 흘러나오고, 밤에는 집집마다 알전구들이 반짝였다.
루돌프의 코가 빨갛게 빛나기도 했고, 산타가 집 지붕을 넘느라 애쓰는 풍선인형도 있었다. 빨간색과 하얀색의 스트라이프 지팡이가 나란히 집 드라이브 길을 안내하며 반짝이기도 했다. 세상은 온통 빛으로 밤을 밝히는 것 같았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 백~성 맞~으라~~”
성탄일, 성탄 노래가 하루 종일 흘렀다.
탄생
다음 날부터는 캐럴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반짝이던 빛이 시들하게 느껴질 때쯤 아이는 세상에 태어났다. 성탄 이후 나에게 또 다른 빛이 찾아온 것이다.
알전구의 빛과는 상상할 수도 없는 따뜻함과 밝기를 가지고...
나는 그렇게 아이의 탄생을 기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