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맞은 복권
내 아이가 크면 언젠가 묻게 될 태몽이야기에 대해 생각했다. 엄마의 나이가 많다는 게 어쩔 때는 불편한 감이 좀 있다. 혹시 내가 아파서 아이에게 어떤 말을 못 해주는 상황이 되면 어쩌지, 이삼십 년 후 아이 옆에 내가 함께 있어 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이런 방정맞은 생각이 참 불편하다. 다르게 보면 하루라는 시간을 매우 아껴서 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기도 하다. 최선으로 사는 삶 말이다. 그래서 내가 독박 육아(아 이런 단어는 좀 가려서 쓰고 싶지만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이 사실 없다.)를 하면서도 악착같이 살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태몽이야기를 지금부터 할 테지만 태명 또한 세트로 붙여서 풀어 볼 생각이다.
“태명으로 어떤 이름이 좋을까?”
“글쎄… 생각해 보자.”
남편과 얘기 끝에 조금 더 생각해 보고 태명을 짓기로 했다. 사실 이름을 짓는 것도 아닌데 태명이 이렇게 어려운 건지 몰랐다. 아무래도 '잘' 짓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살면서 이 '잘'이라는 단어 때문에 망한 경우가 한두 번은 아니지만 힘을 좀 빼고 말하거나 들으면 그나마 낫다. 이것도 아마 마흔을 넘긴 나이가 되어 생긴 능구렁이 같은 생각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많은 이름들이 떠올랐지만, 조금 더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 마음에 선뜻 고르지 못했다. 꼬물이, 콩알 이런 이름은 이미 누구나 한 번쯤 다 지어봤을 이름일 것 같아, 우리만 아는 암호 같은 비밀스러운 이름을 연구했다.
어느 날 남편은 “보름이가 어때?”라고 놀이동산에 온 아이처럼 흥분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보름이… 왜 보름인데?”
“신에게 보냄 받고 부름 받은 아이로 앞뒤 글자 따서 보. 름. 이.”
나도 늦은 나이에 가진 아이라 신이 은혜를 베풀지 않았으면 가지지도 못했을 아이라는 생각에 공감도 되었다. 태명은 그렇게 ‘보름’으로 지어졌다.
지인이 물었다.
“태명 지었어?”
“네. 보름이에요.”
“보름? 뭐 보름달 정기받아 애 가진 거야? 으으음~”
음흉한 웃음 덕에 그럴 듯도 하여 같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지만, 곧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거 조선시대 왕들이 아들 가질 때 기도하면서 보름달 날짜 잡고 뭐 그런 거요? 그런데 아니에요.”
보름이란 이름은 그렇게 지어진 건 아니어도 뱃속에 아들은 맞았다. 미국은 배 속에 아기의 성별을 알려줄 수 있다. 초음파로도 선별이 되지만 더 정확한 것은 유전자 검사를 할 때 함께 그 결과가 나온다. 99.9%가 정확하다고 한다.
사실 나는 딸이라고 생각했다. 추호의 의심도 없이.
어느 날 잠시 소파에 앉아 있다가 졸았는데, 그 꿈속에서 큰 사과나무를 보았다. 탐스럽고 빨갛게 열린 사과는 먹음직스러웠고 예뻤다. 그 사과 한 알을 따서 맛있게 먹는 꿈이었는데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사과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과일은 애당초 즐겨 먹지를 않아서 사과도 그리 호감 가는 과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꿈속에 사과는 너무 탐스럽고 입에 군침이 돌 정도였다. 그 꿈을 꾸고 나서 꿈해몽을 보니 딸일 가능성이 많단다. 피부가 특히 하얗고 부드럽고 매끈한 아이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꿈은 정말 엉터리 같은 거였다. 아이는 태어나서 아토피를 겪었고, 그것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꿈해몽 따위 믿는 사람도 아닌데 다른 꿈도 아니고 태몽인 것 같아 그때는 내심 기대도 되고 설레었다. 혼자 딸이 생기는 상상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산부인과에서 유전자 검사 결과 딸이 아닌 아들이라는 말을 들었다.
의사가 정신이 좀 없고 나름 깜빡깜빡 잘 잊는 사람이다 보니 또 잘못 알려준 건 아닌가 의심도 했지만, 아들이 맞았다. 초음파로도 아들이라고 못을 박아 말했다. 갑자기 큰 망치로 정수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한동안 멍해 있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당황하다가 눈물까지 핑 돌았다.
고려적이지만 옛날 같았음 “아들입니다.”하는 순간, 엎드려 절이라도 할 듯 굽실대며(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아이는 본인이 가지고 의사한테 넙죽거리다니)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텐데, 요즘은 시대가 남아를 선호하는 시대는 아니다. 나 또한 아들보다는 딸이 더 좋았다. 조곤조곤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딸, 쇼핑도 함께 하며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러 다니는 상상을 하며 딸을 꿈꾸었는데 졸지에 크나 큰 유리판이 내 안에서 와장창 깨지는 것을 경험했다.
소리 내어 울고 싶었는데 뱃속에 아들이 서운할까 봐 입 밖으로 소리 내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소매 끝으로 훔쳤다. 나 자신도 그런 건 의외의 모습이었다. 그렇게까지 슬퍼할 일도 아닌 것을 어쩌자고 남편 앞에서 이렇게 눈물이 끝도 없이 나오는지. 후유증을 며칠 앓았지만 그냥 혼자 삼킬 뿐 듣고 있는 아이에게 미안해서 입을 꾹 닫고 말았다.
“딸입니다.”
“네? 아이 농담도…”
“......”
친정엄마가 나를 처음 안았을 때 ‘아들’이라고 생각했단다. 간호사가 아기를 포대기에 안고 나와 딸이라며 건네주었는데 그때까지도 엄마는 아들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간호사가 그 순간에 왜 농담을 하겠는가. 그것도 막 아이 낳은 산모에게 아이 성별을. 기대가 큰 나머지 믿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엄마는 그 얘기를 재미있다고 지금까지도 내게 이야기한다. 어린 나이에 내가 들었을 때는 적잖이 충격이었다. 그러면서 내 마음 안에 든 생각은 이랬다.
‘아들을 원했는데 내가 나온 거구나. 그래. 하필 엄마는 임신인 것도 모르고 임신해서. 뱃속에서 내가 산 것도 용해. 엽산은 잘 챙겨 먹은 거 맞아?’
어린 나이에 그것이 확실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지금에야 그 말이 재미있게 들린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는 아니니까. 그래도 나는 내 감정을 숨기고 싶었다. 아들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하지만 완벽하지 못한 연기가 끝내 눈물을 왈칵 쏟게 했고, 그때의 엄마의 심정을 알 것도 같았다.
낳고 보니 지금은 너무나 씩씩한 아들인 데다 애교도 딸보다 더 많다. 복을 두 개나 받은 셈이다. 그때는 알지 못해 며칠을 뾰로통해 있었는지 모른다. 이 이야기는 아이가 몰랐으면 좋겠다. 커서도.
이렇게 글로 남겨지긴 하지만, 비밀에 부치는 걸로.
보름이는 건강하게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랐고, 입덧은 몇 개월이 지속되었다. 참 이상한 게 먹기는 먹는데 냄새에 굉장히 민감해져서 주변에서 나는 냄새까지 모두 맡아질 지경이었다. 카펫 냄새, 조미료 냄새, 마늘냄새, 냉장고에 두었다 먹을 때는 그 냉장고 냄새까지 고스란히 느껴졌고, 물맛도 비렸다.
속이 울렁거려 김치 같은 게 속을 달래줄 것도 같은데, 김치류는 전혀 먹지를 못했다. 김치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싫었고, 오히려 미국 음식이 더 입맛을 당겼다. 게다가 평소에는 즐기지도 않는 과일을 종류별로 사다 놓고 돌아가며 허겁지겁 맛있게 먹었다. 지금도 과일은 그렇게 먹어지지 않는다. 그나마 잘 먹는 게 사과 정도다. 방금도 사과 한 알을 깎아 먹었다.
그 날 꿈이 잊히지 않고, ‘왜 나는 태몽으로 사과 꿈을 꾸었는가’ 의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임신을 알고 몇 주가 지나 자궁에 아이가 잘 안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엄마에게 전화를 건 것은 물론이고, 친구에게도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했다.
“뭐 임신? 어머어머. 웬일이니. 축하해! 축하해! 내가 꾼 꿈이 네 태몽이었네~ 주변에 임신할 인간들이 없는데 누구 꿈인가 의아했어. 그게 너였어? 어머어머.”
“무슨 꿈이었는데? 사과 꿈 아니지?”
“나 메기 꿈꿨잖아. 냇가에서 힘세고 큰 메기를 잡는데 두 마리가 튀어 올라오는 거야. 세상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내가 막 잡았지. 깨고 보니 꿈이네. 범상치 않은 게 내내 생각이 나는 거야. 보통 때면 꾸고도 잊었을 텐데 말이야. 신기해서 누구 꿈인가 찾고 있었지. 만약 안 나타나면 나 복권 사려고 그랬다!”
친구의 복권은 나로 인해 날아갔다. 다음에 만나면 복권 하나 사줘야겠다고 생각하며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내 사과 꿈보다 더 잘 들어맞는 꿈을 꾼 것 같아 그때는 기분이 온화한 게, 잘 맞는 옷을 하나 선물 받은 느낌이었다. 아이가 어느 날 자기의 태몽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으면 이 둘 중 나는 어떤 걸 이야기해 줘야 하나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둘 다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태몽이 살아가면서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자신의 몫을 알리는 거니까.
그나저나 친구에게 아직 못 갚은 그 복권은 빚처럼 아직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