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마흔 넘어 한 첫 고백

나의 첫 고백

by 리앤

나는 마흔이 시작되는 나이에 그러니까 마흔 하나에 아이를 임신했다. 그것이 내가 남편에게 하는 첫 고백이었고, 그리고 마지막이 되었다. 지금은 이미 아이가 세 살이다. 내 나이를 고려했을 때 이제는 둘째 소식을 전할 수 없음이 매우 아쉽다. 나는 남들이 이십 대, 삼십 대에 하는 일을 왜 이제야 했는지 가끔 한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로 돌아간들 지금의 딱 '이 아이'가 내게로 와줄리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에게 온 모든 상황들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선 '고백'하면 마음이 설렌다. 대체 상대가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단어 자체가 비밀스러우면서도 긍정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말은 모두 이삼십 대나 설레며 쓰는 단어가 아닐까도 싶다.


"나, 고백할 게 있어. 실은..."

"고백? 사고 쳤구나! 뭐야?"


우리의 사십 대는 정녕 이런 고백만 있는 것인가? 그러나 한편으로 사랑을 넘은 정, 신뢰 따위가 밑바탕에 깔린 채 묻는 질문인 것 같아 나쁘지만은 않아 보인다. 아니면 내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거나.


맞다. 내가 아직 제정신이기 전에 설레는 고백을 남편에게 했었다.


그러니까 딱 4년 전 3월. 온전한 추위가 가시지 않은 날, 건조한 히터가 돌아가는 집 화장실에서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을 확인했다. 오지 않을 것 같은 아이를 그 두 줄로 처음 만났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내가 좋아하는 황지우의 시를 이제 마치는 날 같았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그렇게 내게 올 듯 말 듯 3개월째 기다린 아이를 만났는데 그 짧은 시간이 그때는 3년처럼 느리게 지나가는 것 같았다.

임신을 고백해야겠다, 싶은 날 마침 남편은 외식을 권했다.

기찻길이 코 앞에 있는 이태리풍의 카페였다. 처음 간 곳이었는데 그 설렘만큼 나의 임신을 알리기 위한 작전도 설레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장에서 쿵쾅쿵쾅 하는 소리가 서브하는 종업원에게까지 들릴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라앚혔다. 평소에는 시키지도 않던 동글동글한 애피타이저 아란치니를 시키고 마음이 들떴다. 괜스레 웃음이 나 참느라 혼이 났다. 식사를 거의 마친 후에야 나는 임신소식을 알렸다. 괜히 히죽거린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는 듯 남편은 “정말?...... 정말?”만 외쳤다.
그렇게 나의 첫 고백은 세상에 알려졌다.

아이는 내게로 와서 심장을 만들고 팔과 다리를 만들어갔다. 그 해 봄은 찬 기운을 몰아내며 한결 더 따뜻하게 다가왔고, 서서히 꽃을 피우기 위해 봉우리를 트기 시작했다. 나는 기다리던 아이를 뱃속으로 맞았고, 봄과 함께 나의 마음도 꽃처럼 피어났다. 고백의 시작과 함께.


지금은 뱃속에 꼬물대던 아이가 세 살이다. 그 힘들다는 3년의 세월을 지나고 보니 지금 맞이하는 21년의 봄은 아이를 낳고 그나마 수월한 봄이 되었다. 앞으로 다가올 어마어마한 육아는 생각지도 못한 채 그저 임신으로 들떠 있었던 나의 모습은 '철없이 사랑 고백하는 중학생'같은 모습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마흔에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물론 앞으로는 늦은 출산이 많아질 거라는 전망도 있다.


나는 그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기분 좋은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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