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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앤 Apr 03. 2021

웃자람이 없이

 ‘웃자라다'라는 말이 있다. 선인장을 방치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바로 웃자라는 현상이 일어난다.

 며칠 전 남편이 책장을 옮기다 그만 선인장의 이파리 하나를 싹둑 잘라먹었다. 볼 때마다 잘린 귀가 아쉬웠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잘못 키워 웃자라는 경우다.


웃자라다

쓸데없이 보통 이상으로 많이 자라 연약하게 되다.

-출처 : 국어사전


 해가 오롯이 들지 않는 창가 책상 위에 며칠간 작은 선인장 화분을 두었다. 교회 소모임 중에 식물을 잘 키울 것 같은 하얀 얼굴의 고은 씨가 그랬다.


 “나는 식물 못 키워요. 우리 집에만 오면 다 죽는다니까! 하물며 그게 선인장이라도."


 ‘하물며'라는 말은 그만큼 키우기도 까다롭지 않고 다른 것에 비해 손이 덜 가는 고마운 녀석에 속한다. 물도 한참을 잊다 주어도 충분히 그 물을 머금고 살아간다. 그러나 이런 선인장이라도 해를 쐬어 주어야 잘 자란다. 특히 물을 줄 때는 해를 보게 해야 한다. 만약 식물을 내내 해가 안 드는 곳에서 키우게 된다면 웃자라는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관리가 없다면 위 지인의 말처럼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될 수도 있다. 그게 선인장이라도.


 “아니 해가 중천인데 왜 물을 뿌리고 그래?"


 예전에 플로리스트로 일했을 때 뜨거운 한낮에 물을 주는 내 모습을 갸우뚱 바라보았던 옆집 폭탄머리 아줌마의 한마디였다. 나는 그 말에 더 갸우뚱해져서 한참을 생각했다. 보통은 해가 뜨겁게 내리쬐기 전 아침에 식물에게 물을 주는 게 맞았다. 그러나 선인장은 이와는 또 반대다. 그 특성을 잘 알아야 키울 수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식물도 마찬가지라니.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은 또 어떠하랴.


어쨌든 식물이 빛에 대해 반응하는 것은 같다. 단지 활용을 잘해야 한다는 거다. 식물을 사기 전 이름표를 보면 해를 좋아하는 녀석인지 해의 그늘을 이용해 키워야 하는 녀석인지가 나온다. 해를 직접적으로 받아야 사는 녀석이면 다소 나도 부담스럽다. 그래도 선인장이라면 잠깐의 빛에도 넉넉히 살아갈 힘을 얻기에 다행이다 싶었다. 식물의 생존이 빛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는 요즘 봄이 되어 꽃 화분을 집에 여럿 두고 싶다. 꼭 꽃이 아니더라도 잎이 길고 생명력도 긴 산세베리아부터 신홀리페페라는 잔잔하고 잎이 작은 화분도 상관없다.


 남편의 출장을 함께 종종 따라가는데 그럴 때 갈 곳 잃은 이 아이들은 어쩌나 하는 생각에 선뜻 키우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 정기적으로 집에 와서 물만 주고 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소심하게 시작한 게 아기 손바닥만 한 두 개의 선인장 화분이었다. 집에 히야신스도 있지만 피었다 지고 구근을 잘 처리하고 갈 만한 상황은 된다.


 히야신스는 해를 무척이나 좋아해 아침해가 뜨는 거실 창가에 아주 가져다 놓았다. 그 향이 주는 기쁨은 또 색달라서 내가 부담스럽다던 '태양광을 좋아하는 식물'이지만 함께 데리고 살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이렇게 한 번씩 관심을 주고 나면 나도 사는 맛이 난다. 세 살 먹은 아들도 또 우리 집 연장자가 된 강아지 딸기도 그리고 식물들도 웃자람이 없이 골고루 받은 사랑으로 무럭무럭 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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