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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앤 Nov 25. 2021

그녀에 대한 기억

 그녀는 예뻤다.


 털은 아무리 곱게 빗어도 곱슬하고 누런빛을 띠며, 체리같이 동그란 눈은 그 언저리로 검은 딱지가 군데군데 내려앉았다. 하물며 눈가 주위로 노랗기까지 하다. 옆으로 힘없이 누워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잠을 자는 것이 죽은 거마냥 안쓰럽다. 뒷다리는 바들바들 무언가에 놀라 사시나무 떨 듯 흔들리고 멈출 줄을 모른다. 핑크빛으로 축 늘어진 살가죽은 어디에도 탄력을 기대하기 힘들다. (지금은 없지만 여기까지가 내가 본 그녀였다.)


그런 그녀는 과거에 예뻤다.


말똥말똥 검은 눈을 드리우며 미용이라도 하고 올라치면 세상에서 제일 예쁜 강아지가 되었다. 하얀빛의 털은 더없이 보드라웠고 그녀를 안고 있으면 사람보다 따스한 온기가 내 심장 주변으로 편안하게 퍼져 나갔다. 앞머리는 늘 길어서 똥 머리를 만들어 주기도 했으며, 핑크색 리본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했다.


  나는 열감기로 며칠을 끙끙 혼자 앓던 날, 그녀만 안고 종일을 뒹굴었다. 타이레놀의 약기운이 온몸에 퍼져 들어 아픈 뼈 마디마디가 나아질 때쯤 강아지의 콤콤한 발 냄새가 맡아지며 꿈같은 잠에 빠져들고 깨기를 반복했다. 아팠지만 그녀가 내 옆을 지키듯 보초 서고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말은 없었지만 많은 말로 내게 말을 걸어왔고, 위로했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없다. 어디에도 없다. 그녀가 마신 공기와 내뿜은 이산화탄소를 가까이에서 나 또한 마실 수 없고 뿜을 수 없다는 사실이 공허함이 되어 돌아왔다. 그녀의 영혼도 이젠 없다. 그냥 없다. 땅과 함께 묻힌 그녀의 말간 눈과 털과 콤콤했던 발은 그저 차가울 따름이고,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렇게 내게서 그녀는 떠나갔다.


 그녀는 마지막 눈을 감지 못했다고 했다. 몸은 이미 차가웠지만 눈을 감지 못해 여러 번, 손으로 쓸어 주어야 했다고 남편은 담담히 전했다. 나는 그녀의 끝을 볼 수 없는 지구 반대편에 있었다. 새벽녘 급히 핸드폰이 울려 댔지만 예감은 불길했고, 직감했고, 그래서 더 받지 못하고 잠에 빠져 있어야만 했다. 아닐 거라고 그런 소식은 좀 늦게 알고 싶다고 몸부림쳤던 새벽이었을 것이다. 눈을 떴을 때 정말 아침이었다. 그리고 문자로 내가 키우던 딸기는 떠났다, 고 전했다. 곧이어 사진도 몇 장 도착했다. 살면서 올 거라 예상했던 일은 너무 빨리 찾아왔다. 그리고 사진을 봐버렸다. 그리고 그 일은 사실이 되어 내 아픈 심장을 두드렸다.


 한 달을 넘긴 지금, 나의 핸드폰 곳곳에 담겨있는 그녀의 예뻤던 사진은 이제 과거가 되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의 사진부터 여러 에피소드가 담긴 수백 개의 사진은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 미소를 주고 있다. 마치 어제의 일처럼. 그런 걸 보니 누군가가 추억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고, 함께 머무른다는 뜻일 거다.(매우 식상한 표현이긴 하지만 달리 말할 무엇이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딸기가 숨을 쉬고 어딘가에 살고 있다가 언제든 기억 속으로 소환하면 찾아와 준다고 생각한다. 떠난 자는 몰라도 모든 몫은 남은 자의 것이니 차라리 내 마음대로 생각하련다. 편안하게 안정되게 기쁘게 아름답게 너를 기억하련다.



 









 키우던 말티즈 딸기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그 소식을 남편으로부터 들을 수밖에 없었지요. 나이가 아주 많지는 않은데 번식견으로 살던 시절이 매우 혹독했나 봅니다. 짧은 인생을 살고 몸이 순식간에 늙고 아파지다 떠났습니다.


 제가 키운 세월은 8년입니다. 약 11년의 인생을 살다가 갔네요. 싱글일 때부터 키우다 하나 둘 가족이 늘면서 함께 살았는데, 아이는 저를 보지 못하고 그만 떠나버렸습니다.


 남편 말로는 마지막에 저를 찾다가 눈을 뜬 채 간 게 아닐까 말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끝이 더 미안해집니다. 남편과 통화를 할 때면 핸드폰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나의 목소리에 딸기가 힘없이 누워있다가도 눈을 동그랗게 번쩍 뜨고 두리번거렸다고 했습니다. 아마 마지막 순간에도 저를 기다렸을 겁니다. 눈앞에 나타나기를.


 저는 이 글을 한 달이 지나고 나서야 씁니다. 정리가 되지 않아 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딸기에 대해 쓸 수 있게 되어 좋습니다. 그 아이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아마 언젠가는 저의 마음이 생각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한 조각을 미리 준비하며 오늘을 살고 많이 함께 기뻐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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