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소원
오랜만에 읽기 쉬운 장편소설 한 권을 후딱 해치웠다. 스토리 위주로 나아가는 소설인데 마치 판타지가 섞인 2,30대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결말이 왠지 예상이 되어 ‘이 또한 뻔한가?’에 조금 심심해지려고 했지만 읽기 속도가 빠르게 잡았다. 결국 한 권을 다 읽고 내려놓았다.
앗싸~ 이번 연도 책 읽기에 한 권 추가요!
내심 쾌재를 부르며 마음속에서 시원함이 몰려왔다. 읽기 아니면 쓰기, 영어공부, 뭐라도 하고 하루가 지나가야 잠자리에 누웠을 때 뿌듯함이 찾아오기에 그저 육아 하나로 끝나는 하루가 조금 아쉽다. 그래서 정말 뭐라도 한다.
마녀식당은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레시피를 마녀가 만들고 소원성취자가 그걸 먹는 곳이다. 맛은 알싸하다. 쓰기도 하면서 맵고 달콤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물론 나는 독자이지 먹어본 적은 없다.
판타지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기에 이런 허무맹랑함이 다소 당황스러운 소설이지만, 어쨌든 나는 집 근처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렸다. 가볍게 읽기에 좋겠다, 싶어 짧은 시간 무작정 집어 든 책이었다.
리뷰에 혹해서 이미예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사실 읽고 싶었으나 막상 대여를 하려 하니 누군가 예약을 해놓은 책이란다. 헉, 그러면 도서관 책장에 꽂아 놓지 말던가. 괜히 마음만 설레었다.
그래서 ‘꿩 대신 알’이라고 나름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대상을 받은 작품이 바로 <마녀 식당으로 오세요>였다.
인간의 소원은 그 맥락을 쫓아가 보면 본질적인 면에서 거의 비슷하다. 욕심과 복수. 그렇게 이 식당을 찾은 사람들은 타인이 망가져가는 모습을 보게 되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게 된다. 그러나 공통적인 건 그런다고 해서 자신의 인생이 변하거나 예전보다 월등히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우리의 드라마가 아니 내가 보아 온 드라마가 거의 그랬다. 특히 아침드라마나 월화수목금 매일 방영되는 일일드라마가 특히 그랬는데, 나도 이런 드라마를 미국에 살면서 종종 보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삼십 대에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 진은 책의 마지막 즈음하여 자신이 마녀가 되는 걸 선택하고 그 대가를 치른다. (약간의 스포로 책 읽고 싶은 사람에게는 주의가 필요하다.) 상대가 양심을 갖는 것, 죄책감을 갖는 것, 그리고 평범한 행복을 갖는 것, 이 세 가지 소원으로 말이다.
책을 덮고 생각했다. 세상의 사람들이 이런 양심과 죄책감,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되면 어떻게 변할까. 아마 작가는 그런 걸 상상했던 것 같다. 그것만 해도 세상은 정말 아름답겠구나, 하고.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한다. 치유되지 않는 상처는 없다고. 맞다.
그리고 뜬금없이 성경 속 한나가 꺼이꺼이 울던 장면이 생각났다. 이미 피폐해진 나라. 부패하고 진실에서 멀어진 사람들, 더 중요한 건 그렇게 살면서도 잘못된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시대를 살았던 한 여인의 울부짖음은 단지 아이를 낳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남편의 둘째 부인이 먼저 아이를 가져 자신을 업신여기는 것이 분해서도 아니었다. 하나님과 통하지 못하는 슬픔이 그녀의 가슴을 짓눌렀다. 처음은 전자의 이유였다 하더라도 그 슬픔은 끌어안을 수 없는 단절로 이어졌을 것이다. 마치 하나님의 마음처럼.
아픔이 아픔으로 오지 않는 세상, 슬픔이 더 이상 슬픔으로 존재하지 않는 세상, 양심과 죄책감이 더 이상 인간을 따뜻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만들지 않는 세상. ‘갑자기’가 아니라 ‘서서히’ 그런 세상으로 물들어 가는 사람들에 대해 구상희 작가는 메시지를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삶은 살아가는 우리는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 따뜻함으로.
이번 연도에 그것도 7월에 이 작품이 웹드라마로 나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드라마 제작자였어도 이건 딱 드라마화할 작품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인스타그램에 355만 명의 팔로워를 키우고 짧은 단발 변신으로 화제가 되었던 송지효가 마녀식당의 마녀로 등장했다. ‘탄쿠’라는 이름의 뱅갈고양이를 키우는 배우 남지현이 진 역할을 맡았다. 그녀는 작품 이해도가 뛰어나다는 설도 있다. 물론 연기력도 좋겠지, 싶다.
이제는 드라마를 끝장내가며 보는 시기는 지났다. 나의 삼십 대는 지났고, 육아하는 사십 대에 책 한 권 읽고 뿌듯해하며 이 글을 쓴다.
누군가는 이 웹드라마를 보았거나 볼 생각이겠지.
문득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