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뭐가 제일 맛있었어?
남편이 물었다. 아니 내가 물었다. 남편은 바로 "자장면"이라고 대답했고, 나는 "피자! 돈까스!"라고 소리쳤다. 세대차이라면 이런 것도 아마 그런 류일지 모른다. 남편은 지금도 자장면을 잘 먹는다. 그래서 좋아하는 음식이 그거냐고 물으면, 이상하게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한 달에 몇 번은 테이크아웃으로 시켜 먹는다. 만만한 게 자장면이라나. 그래서 먹는다고.
나는 어렸을 때 제일 맛있는 게 피자나 돈까스였다. 십 대에서 이십 대 초반까지 내 돈으로 스스로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건 아무래도 피자보다는 돈까스였다. 초등학교 때는 경양식집에서나 먹던 돈까스가 전문점이 생기며 인기를 끌기 시작할 무렵, 나는 친구들과 그 전문점의 단골이 되었다.
돈만 생기면 돈까스집으로 뛰어갔고, "여기 돈까스 둘이요!"를 외쳤다. 서빙하는 사람이 와서 "밥으로 하실래요, 빵으로 하실래요?"란 서빙하는 사람의 말은 그 어느 말보다 달콤하게 들렸다. 세상을 살며 그렇게 달콤한 선택만 있으면 좋으련만 녹록지 않은 인생은 쉬운 자리를 내어줄 리가 없다.
음식을 시키고 나면, 제일 먼저 나오는 게 크림수프다. 희고도 걸쭉한 수프를 거룩하게 한 스푼을 떠서 입을 오, 하고 모은 다음 후~~~ 후~~~ 두 번을 불고 나서 입 속으로 냉큼 집어넣는 맛이란! 이 수프를 먹어줘야 돈까스 먹는 기분이 난다. 요즘은 바삭하고 두껍게 구워진 일본식 돈까스가 대부분이고 가끔은 '옛날 돈까스'집이 찾아지기도 한다. 넓적하고 큰 돈까스가 나오고 소스도 옛날 그 소스다. 그런데 예전에 먹던 그 맛은 아니다. 아마 추억으로 간진한 그 분위기 통째를 내가 원했던 건 아닌가 싶다.
그래도 고기가 두툼하고 부드러운, 게다가 마른빵가루를 부셔서 바로 튀긴 일본식 돈까스도 그럭저럭 잘 먹는다. 내가 돈까스 자체를 그냥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다. 제대로 된 그 옛날 경양식집 돈까스의 맛! 얄팍한 돈까스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는 건 순전히 추억 때문이다.
요즘은 돈까스에 쫄면을 함께 먹는다. 그건 아니지 않아? 세트메뉴다. 메뉴 하나에 한 가지 메뉴를 더 얹어 먹으라는데 느끼한 것보다는 쫄면이 나아 그렇게 선택하고부터 그게 또 맛있어졌다.
"아니 돈가스에는 크림 수프라며!"
이렇게 반발하는 소리가 막 들린다. 맞다. 그러면 이건 어떤데? 그 예전에 먹던 크림수프를 두툼한 돈까스 먹기 전에 먹어주는 센스! 크림수프는 백종원의 레시피를 따라 하면 딱 그 맛이다.
나도 만들어 먹었다. 버터와 밀가루를 볶아 만든 루에다 우유와 물을 넣고 저으면 끝이다. 아니 아니 마지막엔 '미원'이다. 집에 미원은 없다. 모르고 먹었던 음식이 더 맛있는데. 알고 스스로 미원을 넣으려니 참 께름칙해서 소금으로 대신했다. 대충 비슷한 맛은 난다. 참, 후추는 기본!
피자를 시켜도 조카들은 프링클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단어들을 대며 그게 맛있단다. 치킨도 역시. 그러나 시켜서 먹어보면 내 입맛엔 아니다. 프렌치 프라이도 역시 뭔가를 뿌려서 출시한 메뉴를 좋아한다. 아, 어떻게 먹지? 짜기도 하고 달기도 하고.
그래서 내가 나이를 운운하게 되는구나. 이런 여기서 또 티나네. 그런 조카에게 내가 "돈까스 전에 수프 안 먹냐?"라고 말했다간 뭐야 이모! 소리나 듣게 생겼다. 그래도 그게 진리인데.
나는 그냥 내 추억을 짓밟지 않고 촌스럽게 경양식집 돈까스를 더 찾아보겠다. 남편은 옛날 자장면을 찾아보려나? 나에게 자장은 그냥 자장일 뿐. 뭐 특별할 게 있나? 하지만 그걸 기억하는 사람은 그 나름대로의 맛을 찾을 거다. 나처럼. 훗날 아이가 커서 그러겠지.
"엄마! 돈까스도 거기서 거기지 뭐가 달라."
그래도 남편보다 내가 어리다고 좀 더 낫지 않냐? 자장면이 뭐냐. 진짜 촌스럽게! 큭큭 혼자 웃어본다.
마흔이다. 마흔몇. 그 몇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 나도 나도 왕돈까스! 를 좀 외쳐 주려나?
맞다니까! 돈까스엔 크림수프가 진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