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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앤 Feb 19. 2022

비 온다니 꽃지겠다, 하기 전에

블로그 체험의 재미를 맛보며


 한국에 와서 재미가 들린 게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블로그 체험이다. 한국에 사는 사람보다 더 한국인처럼 가장하며 살고 있는 5개월째의 삶이 나름 재미있다. 버스를 타기 위해 걷는 길은 내가 유일하게 하루 걷는 날이다. 차가운 바람이 귀 끝을 아리게도 하지만, 추운 날씨가 어떻게 보면 반갑다. 미국에 없는 미세먼지가 한국의 겨울을 덮기 때문이다. 추운 날은 그마저도 물렀거라, 가 되니 둘 중 어느 게 낫냐? 물어보면 그냥 추운 게 낫다. 요 며칠 내 마음을 알았는지 날씨는 매서웠다. 


 이제는 주변 부천의 상권도 훤히 들어온다. 제법이다. 아마 친정집에 함께 살고 있는 오빠네도 이 정도는 모를걸.


 블로그 체험 이번 당첨은 에스테틱이었다. 팔 관리. 평소 팔뚝이 두껍다는 사실이 내내 거슬렸다. 예전에 필라테스를 하러 다닐 때도 동갑내기 야무진 강사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팔뚝살 다이어트는 어떻게 해요?”


 그녀는 알아봐 준다고 했지만, 덧붙이는 말은 전체적인 운동을 하게 되면 빠져야 할 곳이 자연스럽게 빠진다고 했다. 그리 속 시원한 답은 아니었지만, 꾸준한 운동이 답이라는 소리겠지 싶었다. 


 나는 초록색 버스를 기다리며 박준의 시집 한 권을 펼쳐 들었다.


제목은 생활과 예보


비 온다니 꽃 지겠다


진종일 마루에 앉아

라디오를 듣던 아버지가

오늘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이렇게 짧다. 이 짧은 언어 속에 나의 상상력은 눈앞에 그려진 듯 머릿속 그림이 그려졌다. 마루에 앉아 라디오를 듣고 있다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하루 첫 말. “비 온다니 꽃 지겠다.”


 마음이 아쉬웠다. 아니 내 마음이 아쉬운 게 아니라 그 아버지 말이다. 온통 아쉬움으로 가득 찬 그 한마디는 하루 진종일 아들의 마음에 퀑 하니 들어왔을 것 같다.  


 늦은 봄날의 꽃이었을 수도 있고, 젊은 날의 자신이었을 수도 있는.


 세상은 어쩌면 아쉬운 것 천지라고, 붙잡고 싶은 것 천지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건 아니었을까. 알 수 없다. 그저 아버지는 내뱉었고, 저자는 썼고, 나는 글로 읽었을 뿐이니까. 여기까지 딱 생각했을 때 기다리던 초록 버스가 내 앞에 섰다. 정확하게 내 앞에. 버스 아저씨는 저 멀리서 사람들이 타겠다는 신호를 보내면(손을 살짝 든다든지 탈 준비하며 한걸음 앞으로 온다든지 하는) 탈 사람들을 가늠해 정말 오차 없이 앞문을 코앞에 가져다 댄다. 마치 물먹고 싶다는 아이에게 물 잔을 코앞에 대 주는 것처럼. 혹시 버스 운전기사들이 이걸 게임으로 착각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가 탄 아저씨의 스코어는 몇 점이고 어느 단계까지 올라섰을까? 이 분도 만만치 않은 경험치다, 생각할 때쯤 나는 버스의 버저를 지그시 누르고 내릴 준비를 했다. 


 건물을 찾아 에스테틱에 들어서자 세상의 온갖 밝은 빛은 이곳에 다 모아 놓은 것 같았다. 밝음, 빛. 사람에게 이런 것들이 주는 긍정의 마음은 역시나 상업적으로도 잘 쓰이고 있구나 생각했다. 


“예약자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내 이름을 밝히고 탈의실에서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샤워실도 네 개다. 누가 여기까지 와서 샤워를 하고 가지? 의아한 마음도 들었지만 누구누구는 에스테틱에 혹은 피부관리실에 가서 샤워도 했노라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볼 수도 있을 것 같긴 했다. 아직 만나본 적은 없지만.


 나의 어깨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관리사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악! 비명을 속으로 삼켰다.


 “아프세요?”

 “네, 그런데 참을만해요.”

 “참으면 안 좋아요. 멍들 수 있고 오히려 근육이 긴장해서 나중에 아파요.”


 참을만하다는 내 말에 이렇게 말하는 관리사는 처음이었다. 계속하던 대로 진행하거나 그래야 풀린다는 말을 들었을 뿐. 다르다. 이 관리사는 뭔가 다른 거다. 마치 친언니를 돌보듯 조근조근 말하며 걱정도 해주고 안타까워도 한다. 이런 곳이라면 10회라도 끊어서 꾸준히 어깨와 팔뚝 관리를 좀 받고 싶다. 아, 그러나 나는 한국에 살지 않는다. 다음 달이면 돌아갈 고향이 있다. 버지니아. 


 아이는 어제도 울었다. 괜스레 마음이 들뜨는가 보다 했다. 고향이 가고파서. 버지니아에 두고 온 자신의 장난감 쌓인 방이 그리워서. 그래서 눈이 빨개지도록 눈물이 하얀 볼을 타고 흐르는 걸 허락하며 그렇게 울었다. 토닥토닥.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도 가고 싶어. 우리 집.”


 우리의 모자는 그렇게 서로를 안고 잤다. 마치 상대가 고향인 것처럼.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되자 나는 또 블로그 체험을 기웃거렸다. 아, 나이가 드니 별게 다 재밌단 말이지! 세상이 변하는 대로 함께 그 세상 기웃거리며 말이다. 위로인지 뭐인지 모르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며 전날 밤 그리워한 것은 대체 뭐란 말이냐,도 덧붙여본다. 5개월째 되는 나의 한국살이를 꼼꼼하게 오늘도 또 지내볼 참이다. 


 시 속 아버지의 한마디처럼 꽃 지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전에. 재밌는 건 재밌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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