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에는 그래도 '스물'이라는 글자를 말할 수 있음에 좋았다.
"몇 살이에요?"
"아, 스물(그리고 잠시 꾸물거린다)..."까지만 해도 저 사람 머릿속에는 내가 스물셋? 넷? 여섯? 뭐 그쯤으로 말하지 않을까 상상하는 게 엿보여서 재밌었다. 물론 뒷 숫자를 말하면 묻는 이의 상상은 깨지겠지만.
나보다 한 살 위인 친구는 내가 스물아홉에 서른을 맞았다.
"벌써 서른이야? 하하 나는 아직 그래도 이십 대인데. 내가 아홉이긴 해도 이십 대랑 삼십 대랑 느낌 확 다르 거 아냐?"
그리고 머지않아 곧 그 친구를 따라 나도 서른에 들어섰다. 겨우 한 살 차이이면서 무척이나 어린 척했던 내가 우스웠다. 그냥 우린 함께 늙어가는 건데 말이다.
예전에 '서른'하면 흔들리는 이십 대를 지나 안정기에 접어들 줄 알았다. 모두가 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나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서 자기도 그랬다는 걸 보면. 계획이 딱히 있지 않더라도 막연한 동경일지도 모르겠고, '그때면 뭔가 되어 있겠지'하는 겁 없는 기대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만 서른에 나는 미국에 산 지 이미 6년째였고, 그것에 비해 그리 해 놓은 건 없었다. 내 머릿속에는 미국에 가면 미술을 해야지, 생각했지만 대학교에서 어학연수만 했을 뿐 정규수업을 듣지 못하고, 풀타임 일을 전전하며 돈만 모았다. 그런다고 비싼 뉴욕의 물가와 무대디자인을 위한 학교는 어림도 없어 보였다. 그렇게 어정쩡한 이십 대를 보내며 나는 어느새 애매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 시기는 나의 형편없는 인생과도 이별하고픈 시간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인데, 이십 대가 그리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기는 아니라는 거다. 혼란과 무지, 방황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나의 삼십 대는 진짜 인생이 무엇인지 탐구하며 보낸 시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말 그대로 탐구! 무언가를 이루었거나 해놓은 것은 여전히 없었다. 그러나 자존감이 바닥났던 나의 모습은 차차 채워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마흔을 향해 준비 연습을 했구나, 싶다. 지난한 마음의 고통과 아픔은 오히려 축복이 된다는 걸 실감했다.
나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일이 없었다면, 그래서 나의 자아가 바르게 서있지 못했다면, 지금 엄마로서의 모습은 상상도 못 했으리라. 아마 '나, 더 이상 엄마 못해!'라며 박차고 집을 나오지 않았을까? 종종 뉴스에 나오는 나이 어린 엄마의 철없는 행동들이 혹시나 나였을 수 있었겠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렇다고 딱히 지금 온유한 엄마는 아니지만, 적어도 행복한 엄마이기 때문에 모든 게 노력하면 된다는 긍정의 마음이 있다. 나는 아이가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그 자존감 높이는 일 때문에 스스로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좋은 인간관계 가운데 당당히 세상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박 준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조금 미리 사는 사람이라고.
나는 이 말에 적극 동감한다. 아이를 키우며 알았다. 그 돌봄이란 아이에게는 크나큰 세계이고 의지이고 전부라는 걸. 그게 엄마라는 걸. 아, 물론 양육자를 말한다. 양육자가 아빠면 아빠가 되겠고, 할머니일 수도 있다.
조금 미리 살아서 그 경험으로, 돌보는 자에게 손 내밀 수 있다는 건 무척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너무나 고되어서 엄마 아빠가 되는 일에 자격증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에게도 그 자격증을 위한 배움은 매우 또 상당히 필요해 보였으니까. 그러나 아이를 사랑한다는 전제 조건만 있다면 이렇게 저렇게 키워진다는 걸 알았다. 그 사랑만 있다면 충분히 들을 귀와 마음이 준비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마흔에 오니 비로소 보이는 게 조금씩 많아졌다. 그것도 마흔이 주는 축복일 거다. 내가 만약 육아를 삼십 대 중후반에 했더라면 철없는 행동까지는 아니어도 깨달음이 더디었을 거다. 나 조차도 심리적으로 제대로 서지 못하면서 아이는 아이대로 징징거렸을 게 뻔하다. 그래, 사람에게는 모두가 다 다른 타이밍이 있지. 혹 이른 서른에 지금의 나와 같은 생각을 누군가는 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마흔이 훌쩍 지나고도 철이 덜 들었을 것이다. 전자라면 내 생각에 자신을 응원하며 마흔에 접어들겠고, 후자라면 조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다만 마흔을 오르는 길이 가파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고, 오십을 가는 중에라도 쉬엄쉬엄 풍경을 즐기며 걷길 바란다. 육십은 양희은도 그랬다. 몸이 움직이는 속도가 마음이 움직이는 속도를 따라주지 못해 답답한 나이라고. 그래도 마음껏 조절할 수 있을 때 오르고 쉬고 오르고 쉬고를 마음껏 누리자고 나는 이 펜을 든 건지도 모르겠다.
10년 전으로 돌아가라면 그럴 일도 없거니와 다시 사는 게 싫다. 서른이 싫은 건 아니지만 촘촘히 걸어온 내 인생이 그저 기특할 뿐이다. 그걸로 되었다. 나의 서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