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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앤 Mar 02. 2022

사람은 냄새를 기억한다

향으로 맡아지는 추억이 사람에게 있을까? 정답은 '있다'다.


마흔을 넘게 살면서 향에 대한 아무 추억도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기억을 잃었거나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살았거나. 


나는 특별히 맡아지는 밤 냄새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야간자습을 할 때면 종종 낮과는 다른 밤 냄새를 맡았다. 밤이라고 모두 같은 냄새가 나는 건 아니다.


쉬는 시간에 친구와 밖으로 나와 돌계단에 앉으면 먹지 같은 어둠뿐인 밤이 있었다. 학교에서 켜놓은 인위적인 불빛 외에는 그냥 깜깜한 시골이었다. 집은 1시간이나 멀리 떨어졌는데, 어쩌다 논밭을 지나는 그런 학교로 배정이 되었는지 모른다. 배정이 되었으니 그냥 다닐 뿐이었다. 학교 첫날, 친구는 택시를 타고 왔는데 택시기사가 자신을 시골로 납치해 가는 줄 알고 뒷좌석에서 벌벌 떨며 혼자 눈물을 훔쳤노라고 말했다. 들어보니 혼자서 16년의 인생을 다 정리하고 왔다.


그 말에 모두가 웃었지만 그만큼 시골인지라 그럴 만도 했다고 우리 모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시골에 밤이 찾아오면 정말 깜깜했다. 하얀색 건물만 덩그러니 있을 뿐 주변은 온통 귀뚜라미 소리와 개구리 소리만 뒤덮일 뿐이었다. 


"밤 냄새라는 게 있기도 하나? 지금 막 나지 않냐?"

함께 나와 밤공기를 맡은 친구에게 물었다. 

"어."


친구는 정말 어,라고 말했다. 그냥 대충 어,라고 한 건지 진짜 밤 냄새가 나서 어,라고 한 건지 지금도 궁금하다. 별일 아니라는 듯 너무 빨리 대답했기 때문에 다시 묻을까, 하다가 침묵 속에 그냥 밤 공기만 들이마셨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몇 번 그 냄새가 맡아졌다. 그 냄새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냄새가 되었다. 한국과 먼 땅, 미국에서도 그 냄새가 난 적이 몇 번 있다. 어김없는 추억 소환이다. 


그리고 두 번째 생각나는 향은 연필 향이다. 

모든 연필마다 나는 향은 절대 아닌데 그것이 삼나무향도 아닌 것 같고, 연필심에서만 나는 향도 아닌 것 같다. 연필이 아닌 것에서도 맡아진 적이 있으니 문구류 쪽의 향이라고 해야 할까. 만약 인위적인 향을 흡수시켜 나는 향이라면 그 이름이라도 찾고 싶었다. 지금은 모르는 게 더 즐겁다. 어느 순간 다시 맡아질지 모르는 비밀의 향처럼 그렇게 놔두련다.


세 번째 향은 내가 키웠던 말티즈 강아지 '딸기'의 콤콤한 발 냄새다. 지금은 세상에 없다. 지금은 땅에 묻은 털이 어떻게 되었을까, 그 맑던 눈은 어떻게 되었지? 발톱은 어디까지 자라다 멈추었을까를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조금 잔인한 생각 같지만 내가 키우던 날들의 손때가 흙 속 자연으로 묻힌다는 게 공허하기도 하고 섭리 같기도 해 숙연해진다.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분명히 올 테니 말이다. 


친구의 집에서 모양새가 조금 우습지만, 강아지의 발을 들어 올려 발바닥 냄새를 킁킁 맡아본 적이 있다. 역시나 냄새는 달랐다. 딸기에게서 맡아지는 그 냄새가 아니다. 어린왕자의 길들인 장미꽃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듯 그 냄새도 하나다. 앞으로 살면서 더 이상 맡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향이다. 


그리고 또 하나를 굳이 더 들라고 한다면, 바로 내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맡아지는 발 냄새다. 지금은 만 4세인데 그때의 냄새처럼 진하지는 않다. 신생아에게 발 냄새가 났다고 말하면 열에 열은 다 "에이~ 무슨 소리야. 아기한테 무슨 발 냄새가 난다고!" 그런다. 억울하다. 진짜인데! 

태어나 하루 이틀 된 아이에게 그 냄새가 맡아졌을 때 나는 생각했다. '아, 이런! 내 뱃속에 발 냄새 밴 거 아니야?' 엄마여도 이런 생각은 할 수 있구나, 싶어 혼자 아무도 모르는 웃음을 지었다. 한국 친정집에 와있는 중에 새언니는 말했다. "아이 발에서 진짜 그런 냄새가 나는데, 토마토 냄새 같아요." 장난이었지만 아이는 자기 발에서 정말 토마토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여기 발에서 무슨 냄새 나?"

"토마토!"

자신 있게 말하는 아이가 귀엽기도 하다. 그 향이 약해졌지만, 반은 진짜 토마토향이다. 


당신에게도 훅, 끼쳐지는 추억의 냄새가 있는가? 인생에 그런 추억 소환의 향 하나 둘쯤은 괜찮은 것 같다. 그런 재미없이 100세를 살면 좀 심심할 테니. 


제목을 <사람은 냄새를 기억한다>라고 적으니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당신도 예상했던 <기생충>이다. 해외에서 이 작품을 선보였을 때, 봉준호 감독을 천재라고 했단다. 어떻게 냄새로 계급을 정할 생각을 했느냐며. 천재의 이유는 영화 곳곳에 나타나지만 냄새는 정말 기가 막혔다. 부라보! 를 외쳐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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