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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앤 Jul 02. 2022

사람과 사람 사이


 밖에서 샛별이와 노는 일은 나에게 조금 고된 일이다. 활동적인 사람이 아닌 데다가 어른의 일이 아닌 아이의 일을 함께 한다는 건 나에게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에 가려고 하면 아이는 좀처럼 따라오지 않는다. 그럴 때 쓰는 방법은 먹는 걸로 유인하는 거다. 

 "샛별아! 집에 가서 어제 사온 콘에다 아이스크림 얹어 줄게!"

 "더운데 먹고 싶다!"

  샛별이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 말이 자신을 유인하는 것인 줄 모르고 얼굴에 미소를 가득 채우며 나를 따라나섰다. 매우 흡족한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마치 엄마인 내가 자신의 마음을 콕 집어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지 어떻게 알았어?"라고 되묻는다. 이 또래 아이들의 마음을 아는 건 참 쉽다. 단순해서 뭘 하고 싶은지가 여실히 얼굴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 엄마는 내 맘을 다 아는구나'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씩 해가 바뀌면 엄마는 왜 내 마음을 이리도 모르나 생각할 때가 오고, 급기야는 '비밀'이란 게 생길 수도 있다.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나왔다. "나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외로워 본 적이 없는데, 당신을 만나고 나서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꼈어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더 외로워지는 모순이 온다. 온전한 하나가 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미약함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결코 사람은 누군가와 합체될 수도 없거니와 상대의 마음을 모두 알 수도 없다. 때로는 몰라주는 것에 서운함이 생길 수도 있지만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좋은 관계가 유지되는 사이도 있다. 그런 만남이 오래 가까울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은 원래 혼자이기 때문이다. 독립적인 나로서 잘 서 있을 때 상대를 바라보는 눈이 편안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바람이 오고 갈 만큼의 거리가 필요하다. 누구나 결국엔 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외로움이 슬퍼할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오랜 동행을 꿈꾸게 된다." - 에피소드 16, 원형, 심승현


 이곳에 이 말을 적게 될 줄은 몰랐지만, 지금까지는 샛별이의 마음이 내 눈에 쏙 들어온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하기 싫은지. 하지만 아이도 점차 커가면서 마음이 성장할 것이고 숨기고 싶은 감정 따로, 보이고 싶은 감정 따로가 가능해질 수도 있다. 조금씩 그런 기미가 샛별이에게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면서도 엄마는 다 알 거라는 생각에 "엄마 정말 몰라? 왜 몰라? 알잖아!" 하며 떼를 쓴다. 복잡한 감정에 휘말릴 때도 엄마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그럴 때  사람은 급격하게 외로워질 수 있다. 태어나 3개월 이전의 모습대로 엄마가 움직이면 자신이 움직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그런 일체적 모습을 그리워할 수 있다. 그러나 살면서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그 그리움을 성인이 되어 이성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갈구할 수도 있지만 더 외로워질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일 수 있고, 그 외로움에 종종 들락날락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가 온다. '아, 나는 네가 될 수 없구나.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도 없구나'같은 생각으로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 그 기분에 암울해할 필요는 없다. 여행이 꼭 여럿이 떠나야만 즐거운 건 아니다. 혼자만의 여행 속에서도 우리는 배우는 게 더 많다. 홀로 있는 시간을 통해 나 자신을 만나고 정리할 수 있다면 결코 외롭고 우울한 여행이 아니다. 우리는 각자 홀로 있음의 개체가 되어 어느 정도의 거리만큼을 유지하며 타인과 동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불어 가고 불어올 만큼의 바람의 통로가 필요하다는 건 '나는 나, 너는 너'로서의 개인을 인정하는 일이고 아름다운 존중이 자리 잡는다는 뜻으로 이해해본다. 

 엄마와 아들이어도 다르지 않다. 샛별이가 커서 어느 정도의 간격을 원하는 날이 올 때(아마도 사춘기가 되지 않을까 싶지만) 나는 성큼 한 발 물러나 응원하며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음은 우는 거 아닌가 몰라. 꼰대 같이 굴지는 말아야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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