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일이 마냥 좋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는 왜 이리 일기가 싫었을까. 남에게 강요당해 나의 하루를 탈탈 털리는 기분은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마치 담임선생님을 위해서 나의 하루를 점검받는 기분이랄까. 가끔 작가들의 초등학교 일기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만의 일기장이 따로 있었던 사람도 있었고, 일기를 자기 속풀이식으로 풀어 초연함을 보인 사람도 있었다.
나? 나는 그냥 싫었다. 밀린 일기를 쓰느라 얼굴이 일그러져서는 허구한 날 끙끙댔다. 그때는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사실 내 친구는 아니고 엄마 친구의 아들)의 일기를 공유했고, 그 자식의 하루하루 일상을 훔쳐서 베꼈다. 완전범죄였다. 그도 별반 좋은 일기를 쓴 건 아니었지만, 아이디어가 생겼다고 좋아했다.
초등학교 6학년으로 진급했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보라색 옷을 입고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수 이소라와 미묘하게 닮았다. 그녀는 내 주변에 앉았고, 또래와 비교해 표정이 매우 진지했다. 범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일기장은 남달랐다. 일반적으로 쓰는 초등학교 일기장이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언니들이나 쓸 것 같은 두꺼운 진짜 일기장이었다. 빽빽한 글씨는 뭘 그렇게 쓰고 싶었던 걸까. 나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일기장을 선생님에게 검사받는 일도 독특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봐! 오늘 날짜 맞지? 나 매일 일기 써. 그러니까 내 건 신경 쓰지 마! 넌 나의 일기를 읽을 권리가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멋있었다. 그녀는 짙은 보라색 목 칼라 옷을 자주 입었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성숙하게 보였고, 빠르게 발육된 가슴마저도 진지하게 보였다.
“너 무슨 색깔 좋아해?”
“검은색"
“아…”
나는 그녀가 ‘보라색’이라고 말할 줄 알았다. 그리고 다음 말에 더 충격을 받았다. 검은색이라니. 검은색이 색이야? 그게 왜 좋아? 많고 많은 색깔 중에 시커먼 게 대체 왜 좋아? 그러나 내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래 뭐 취향이지.
그녀를 좋아했지만, 검은색은 늘 낯설었고 함께 공유할 만큼 그 색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그녀의 방에서 배를 깔고 누워 뒹굴거리며 비밀 일기장에 대해 캐물었다.
“그 일기장 말이야. 대체 뭐라고 써?”
“그냥 일기지 뭐.”
“아…”
“보여줄까?”
“어!”
나는 신이 났다. 선생님에게 3초 이상 내보이지 않던 그 일기장이 내 손에 들어왔다. 벅찼다. 그리고 급히 읽었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루 일과를 적고 내 느낌 쓰고 그게 일기의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하나의 물건이나 사건 하나를 가지고 자기의 생각을 우르르 적어낸 일기는 처음이었다. 단어 선택도 꽤 우아했다. 보통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런 한글을 대체 어디서 배웠을까.
종종 그녀에게 일기를 보여달라고 했다. 어떤 날은 되었고, 어떤 날은 안되었다. 나도 글을 쓰는 건 좋아했다. 단지 공개되는 일기가 싫었을 뿐. 10살 무렵부터 독후감 쓰기나 글짓기는 제법 했다. 거기에는 엄마의 손길이 마법처럼 조금 가미되었다. 그러면 어김없이 상도 탔다. 공부상은 없어도 글을 써서 타 온 상은 꽤 되었다. 할 줄 아는 게 글 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연기가 좋았지만 대학 입학까지는 가지 못했고, 그저 만만하게(?) 글 쓰는 학과를 선택했다. 패션잡지에 객원기자로도 일했다. 물론 학생의 신분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녀의 일기를 계기로 나만의 일기장을 마련했고, 그녀처럼 글을 썼다. 그 쾌감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아, 그래. 이게 진짜 일기지. 나는 원숭이처럼 하라는 것에만 이끌려 억지 일기를 써왔던 거야. 그건 진짜가 아니었어.’
그렇게 한 학년을 마무리하고 긴 6년의 초등학생 신분을 벗어나 어엿한(지금 생각인데 그리 어엿할 필요는 없기도 하고 다만 초등수준을 좀 벗어났다는 표현을 쓰고 싶었음) 중학생이 되었다. 그녀는 다른 중학교에 배정되었고, 우리는 서서히 서로를 잊었다. 마치 전수받은 것 같은 일기만이 기록으로 남았다. 대학교를 졸업해 친구들이 하나 둘 취업전선에 뛰어들 때 그녀 생각이 났다. 그녀라면 방송국에서 일하거나 작가가 되기를 결심하거나 뭔가 특별한 걸 할 것 같았다. 물론 그 생각은 내 상상이 빚어낸 그녀를 향한 로망적 기대 때문이었으리라. 정 반대로 군인이 되었거나 이른 결혼으로 피 터지게 열심히 아이를 키우는 중이었을지도.
살면서 일기 운운하며 삼삼오오 모여 앉아 추억을 이야기할 때마다 지금도 그녀가 내 머릿속에 들어온다. 쓰는 일에 대해 얼마큼 진지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그녀. 생활의 모든 것이 쓸거리가 되어 진정한 관찰자의 역할을 톡톡히 보여주었던 그녀. 나는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좋아한다던 검정이 아닌 보랏빛이 떠오른다. 그래, 그녀 이름도 보라였지. 그래서 더 각인된 이름.
쓰는 일이 벅찰 때마다 보라가 나에게 ‘괜찮아’라고 성숙하게 대꾸해 주는 것 같다. 30년도 넘은 그 음성으로 말이다. 나는 지금도 그녀가 쓰는 일을 하며 먹고살고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