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는 ‘이상형'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리했다.
이상형이란?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유형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이라고 했다. 이것만 보아도 이상형이 매우 주관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잔민이라는 사람의 블로그에서 보았는데, 이런 사전적 ‘이상형’을 “아는 만큼 보인다"로 정의했다.
나의 부족한 모습을 알면 상대의 모습에서 채워야 할 이상이 보인다는 말로 해석해도 될까. 남자 혹은 여자를 고르는 기준 중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는 게 ‘외모'다. 남자는 더 특히 그렇다. 잘 생긴 남자치고 예쁜 여자를 이상형으로 두는 일은 거의 못 봤다. 아무튼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부분들을 조합하다 보면 대부분은 나의 부족한 모습이거나 행동, 성격이 나온다. 그 말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다른 이를 통해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이상형이든 아니든 결혼했다고 치자. 이 문제는 내가 고른 남편으로만 끝나지 않고 자식에게 영향을 끼친다. 하나의 독립된 자아로 보지 않고, 자신의 꿈이나 희망을 아이들의 미래 속에 밀어 넣는다.
엄마가 되고 보니 드라마도 내 아이와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나오는 게 재미있다. [그린 마더스 클럽]은 부모의 욕심을 한껏 아이에게 전가시키는 엄마들이 나온다. 성품이 개품인 의사를 남편으로 두고 아이들을 다시 의사로 키우려는 여자의 욕망은 결국 파멸되는데, 그 주변 엄마들은 초등교육에 함께 열을 올리며 몰려다닌다. 자기 철학 혹은 소신이 서지 못한 부모 밑에서 아이들이 참 어렵고 힘들게 크는구나 싶었다. 물론 결론은 각자에게 맡겨진 책임을 다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로 훈훈하게 끝을 맺는다.
내가 이십 대이던 시절, 남자 보는 눈이 누구보다 괜찮다고 자부했던 때가 있었다. 그건 순전히 나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남자에게 마음이 열렸기 때문이다. 사랑 하나만으로 무모하게 뛰어드는 가난한 상황은 정말이지 질색이었으니까. 나의 사랑의 레이더에서는 언제나 ‘후진 남자'는 제외 대상이었다. 속물 같은 나의 마음을 온전히 직시하지 못했으며 사랑은 그 이후라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없는 사람’이 싫었고, ‘무능력자’를 가까이하지 않았던 게 맞다. 상대에게 지식이 없거나 돈이 없거나 어쨌든 비워진 무언가는 나에게 큰 결함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나의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과는 다르게 씩씩한 사람이 좋았고, 의지할 수 있을 만큼의 큰 품을 가진 사람이 좋았다. 정신적으로는 멘토의 역할을 해 줄 만큼 생각이 멋진 사람이 마음에 들었다. 누구나 다 아는 배우로 치자면 조인성이거나 남궁민이거나. 누군가 “오호! 취향이 그런 쪽이세요?”라고 할 수도 있다. 맞다. 이상형은 취향이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이는 취향! 그래도 우리 이대로 괜찮은 걸까? 그 취향을 가지기 이전에 ‘나'라는 사람을 더 관찰하며 들여다본다면 남에게 향한 이상은 나를 향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를 발견하고 채우는 일은 어쩌면 상대를 더 사랑하기 위한 한 걸음일 수 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한 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