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모드로 길을 잃다
엄마가 된다는 건, 내가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던 인생의 페이지를, 예행연습 없이 그대로 펼쳐 읽는 것과 같았다. 물론 삶이란 원래 리허설이 없다는 걸 알지만 이건 너무했다. 마흔을 살아낸 나에게, 또 다른 세계를 살라고 내민 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미로 같았다.
앨리스가 미로에서 몸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듯, 나도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 흔들렸다. 애벌레가 앨리스에게 "너는 누구니?"라고 묻던 장면처럼, 나 역시 멈칫했다. ‘나’였지만, 예전 같지 않았고 ‘엄마’라는 이름은 낯설었다. 그런데도 하루 종일, 그 낯선 이름으로 살고 있었다.
아이는 9개월 동안 내 몸 안에 있었고, 태어난 후에도 단 하루도 떨어지지 않았다. 모성애는 자연스럽게 피어난다고들 하지만, 그만큼 예전의 나는 점점 작아지고, 희미해졌다.
며칠 전, 그 감정을 정확히 짚어낸 영화 한 편을 보게 되었다. 에이미 아담스 주연의 블랙코미디 <나이트비치>다. 육아에 지친 여주인공이 밤마다 개로 변하는 이야기인데, 화가였던 자신을 알아본 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일은 이젠 제겐 전생의 일 같네요.”
웃긴 대사였지만 이상하게 슬펐다. 정말 나의 ‘이전 삶’은 끝나버린 걸까? 그 두려움 앞에서, 나는 “그래도 이어진다”고 말하고 싶었다. 앨리스가 결국 미로에서 깨어났듯, 나도 언젠가 다시 깨어나리라는 희망으로.
육아는 끝없는 로그인 상태 같았다. 아이를 재우다 잠들면, 다시 아이의 울음에 맞춰 부팅되는 삶. 그렇게 나는 '나'로 돌아가려다 번번이 '엄마 모드'로 하루를 통째로 보내곤 했다. 눈물은 이유 없이 차올랐고, 며칠씩 같은 옷을 입으며 샤워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던 날들이었다. 앨리스가 버섯을 먹다 뱀이 되어버린 장면처럼, 나도 괴물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하지만 울고 있는 아이를 안고 함께 울던 그 밤들도 결국 지나갔다. 미쳐버릴 것 같은 날들이 이어졌지만, 앨리스가 정신 나간 다과회에서 버텼듯 나도 매일 펼쳐지는 말도 안 되는 파티 속에서 버텼다. 아이의 미소 하나가 그 모든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천국의 순간이었으니까.
육아의 90%를 혼자 감당했던 시간들. 어디가 출구인지 모른 채 미로를 헤매면서도, 나는 나를 잃지 않으려 애썼다. 결국 나는 그 미로에서 내 발로 걸어나왔다. 다만 그전까지는 오래도록 '엄마'라는 아이디로만 로그인한 채 살아야 했지만.
이제는 안다. 로그인해야 할 때와, 로그아웃해도 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의 나는 다시 '나'이면서, 동시에 엄마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여전히 미로 속을 헤매고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언젠가 당신도 반드시 출구를 만나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