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제인 에어의 자존감

늘 양보하는 서브 계정 같을 때

by 리앤

메인 계정은 아이, 남편, 가족의 일정과 필요에 맞춰 돌아간다. 엄마의 취향과 욕구는 늘 뒷순위로 밀린다. 그래서 엄마의 자리는 언제나 서브 계정으로 로그인하는 존재같다.


식탁의 마지막 자리, 아이들 뒤에 서서 남은 반찬을 챙겨 먹는 내 모습, 늘 “괜찮아, 나는 나중에”라는 말이 습관처럼 입에 붙어버린 일상. 가족 안에서 나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뒤로 밀렸다.


서브 계정은 권한이 제한된다. 설정을 바꾸려 해도 허락이 필요하고, 화면은 늘 작고 불편하다. 엄마로 산다는 건 그와 비슷했다. 나의 욕구와 취향은 자주 묵살되고, 이름조차 가족의 요구에 가려졌다.

그럴 때마다 제인 에어가 떠올랐다. 고아로 자라나며 사랑받지 못했지만, 끝내 자신을 존중했던 그녀. “나는 무척 가난하고, 천하고, 보잘것없을지라도, 영혼만큼은 당신과 동등하다." 그녀의 단호한 목소리는 결코 메인 계정의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된 뒤로 제인 에어처럼 강하지 못했다. 아이와 가족을 위해, 나를 뒤로 세워두는 일이 당연해져버렸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늘 갈증이 일었다. 나라는 존재가 지워진 채 살아도 괜찮을까? 엄마라는 계정에 로그인했지만, 나는 여전히 나여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서브 계정 속에서도 작은 반란을 이어갔다. 아이가 잠든 새벽, 혼자만의 차 한 잔, 서랍 속에 숨겨둔 책 한 권, 아무도 모르게 이어가는 글쓰기. 아주 사소한 시간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메인 계정에 접속한 것처럼 숨이 트였다.

제인 에어는 내게 속삭이는 듯하다. “네 삶의 주인공이 되어라. 엄마라는 이름이 네 본질을 대신할 수는 없어.”


그리고 문득, 나 자신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 쉽게 양보하며 살아왔을까.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당연한 듯 나를 뒤로 밀어왔던 날들. 제인의 이야기는 내게 말해준다. 사랑도, 가족도, 의무도 결국 내가 나를 지킬 때 비로소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작은 순간마다 나답게 로그인한다. 그때마다 엄마로서의 삶도 함께 빛난다. 이것이 제인 에어가 내게 남긴 가장 큰 선물, 자존감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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