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전용 계정 vs 나의 계정
어린 시절 TV에서 보았던 애니메이션 <작은 아씨들>. 그때는 자기 욕망을 당당히 말하던 막내 에이미가 더 매력적이었는데, 엄마가 되고나니 오히려 묵묵히 집을 지키던 마미가 마음에 남는다. 네 딸을 길러내며 늘 가족을 먼저 생각하던 그녀. 예전에는 단순히 참을성 많은 엄마라 여겼지만, 이제는 그 안에 담긴 힘과 선택의 무게가 다르게 보인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조와 마미의 대화다. 욱하는 성격 때문에 번번이 후회하던 조가 울먹이며 고백한다. “엄마, 저는 왜 이렇게 화가 많을까요?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침착하실 수 있어요?” 그러자 마미는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나도 화가 많단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다스리려고 평생을 싸워왔어. 희생이란 남이 시켜서 하는 게 아니야. 선택해야 할 때, 내가 기꺼이 하는 거지.”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마미의 강함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끝없는 자기 성찰과 선택의 결과라는 걸. 그녀는 희생을 강요당하지 않았다. 사랑하기 때문에, 지키고 싶기 때문에 ‘기꺼이 선택한 희생’을 한 것이다.
엄마가 된 이후, 나는 종종 ‘가족 전용 계정’에만 머물렀다. 아이와 남편의 일정에 맞춰 하루를 채우고, 나의 취향과 욕구는 늘 뒷순위로 밀렸다. 내 이름조차 가족의 필요 속에 가려진 것 같았다. 그러나 마미의 대화를 떠올리면 마음이 달라진다. 희생이 곧 자기 부정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진짜 헌신은 자기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걸 깨닫는다.
지난 여름방학, 아들과 하루 종일 붙어 지내며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들의 세계에만 맞추다 보니, 나는 점점 초조하고 예민해졌다. 책상에 앉을 시간도, 글을 쓸 틈도, 나만의 호흡도 사라져버렸다. 그러다 어느 날, 아들을 데리고 도서관에 갔다. 아들은 아동 코너에서 책을 읽었고, 나는 구석 자리에 앉아 짧게라도 글을 적었다. 놀랍게도 그 짧은 순간이 나를 회복시켰다. 가족 전용 계정만 켜둔 채로는 숨이 막혔지만, 잠시라도 나의 계정으로 로그인했을 때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그날 이후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나를 지우는 것은 같지 않다고. 작은 선택이지만, 내 자리를 잃지 않는 순간이 쌓여야 아이에게도 건강한 엄마로 설 수 있다고.
마미가 말했듯, 희생은 강요가 아니라 선택일 때 빛난다. 나는 오늘도 가족 전용 계정과 나의 계정 사이를 오가며 배운다.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건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자기 삶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이다.
언젠가 아들도 알게 되리라. 엄마가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던 순간들, 도서관 한켠에서 스스로의 시간을 지키던 그 고집이, 사실은 그를 위한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