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는 내가 직접 세팅한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다 보면, 나의 가치가 종종 남이 정한 기준에 따라 줄 세워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 일은 특히 내 중심이 그닥 잡혀 있지 않을 때 찾아온다.
<폭풍의 언덕>의 캐시는 사랑과 안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렸고,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는 자기 삶의 진정성을 스스로 선택했다. 나 역시 엘리자베스처럼 내 가치를 스스로 세팅한다고 선언해도, 현실에서는 흔들리는 일들이 끊이지 않는다. 주변 엄마들의 이야기, 과장된 학습 정보, 남편의 잔소리까지, 사방에서 영향이 몰려온다.
흔히 "옆집 엄마 만나지 않기"라는 말이 있다. 아이 또래의 엄마들을 만나면, 모여서 하는 이야기가 늘 비슷하다. "집에 적어도 자연과학책부터 시리즈로 구비해야 한다." "그 학원이 기가 막힌 학습을 한다더라." "구구단은 다 알고 학교 보내야지." 남편의 사회적 지위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다. ‘남편 월급은 적어도 1억 밑은 아니어야지.’ 같은 별난 기준이 오가기도 한다.
아이와 함께 한국집 친정에 머물던 어느 날, 쇼핑 중 한글 학습 판매원에게 발탁(?)되어 백만 원이 훌쩍 넘는 제품을 소개받았다. 그때 나는 일주일 내내 고민에 휩싸였다. 정말 지금이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쳐야 할 골든타임일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여러 군데를 검색하며 비교했다.
결국 태클을 건 건 남편이었다.
"당신은 세 살 반에 한글 알았어?"
아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한글을 몰라 애먹는 아이를 본 적도 없다. 아이는 저절로 내 나라 말을 이해하고, 뜻을 파악하고, 글자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만 세 살 아이에게 ‘지금’이어야 한다고 압박하는 건 과한 강요였다.
한국인이면 해외에 살아도 한글을 알아야 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말은 백번 옳다. 하지만 그 뒤에 교묘하게 따라오는 유혹, '해외에서도 엄마들이 이 제품만큼은 꼭 산다'는 말은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한 발 물러서고보니 그건 엄마의 욕심이었다. 남들이 한다고 해서 나도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내 기준으로, 내 속도로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비로소 받아들였다.
이런 경험을 통해 깨달은 건, 엄마 계정에서의 성취 지표가 내 진짜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꼭 엄마로서가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나를 지탱한다는 걸 기억해야겠다. 로그아웃한 자리에서 나는 다시 선언한다.
"남이 정한 기준에 내 인생을 맞추지 않겠다. 나의 가치는, 오직 내가 직접 세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