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빨강 머리 앤처럼

사소한 기쁨 패치하기

by 리앤

빨강 머리 앤은 무척 유명하다. 온라인에 검색만 해도 갖가지로 번역된 책들, 영어 원서, 앤을 들먹이며 쓴 에세이, 거기다 문구류까지 차고도 넘친다. 그래서 여기에 하나를 더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래도 쓰고 싶었던 건 내 이름이 앤이기 때문이다.


낯선 곳으로 와서 반갑지 않은 해프닝이 일어나도, 꿋꿋이 적응하며 원래의 밝은 성격을 드러내고 어른으로 성장하는 앤이 나를 닮아서였다. Ann이란 이름이 재미없어서 뒤에 e를 붙인 Anne이라는 것도. ‘애앤~’ 하고 뭔가 여운이 남는다는 건, 이름 뒤에 이어질 이야기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매슈씨, 저는 이 길을 '기쁨의 하얀 길'이라고 부르겠어요. 어때요?"


앤은 무엇이든 자기식대로 이름 짓기를 좋아했다. '빛나는 물의 호수', '귀신 숲, 유령의 숲', '나무요정의 샘', '보라빛 골짜기' 등이 그렇다. 세상을 나만의 언어로 명명한다는 건, 아마 삶을 사랑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게 아닐까, 요즘은 생각해본다. 별 그리 사랑스럽지 않은 세상이, 삶이, 반짝여 보인다니! 혹은 그 이름 붙이는 일 때문에라도 순간순간이 특별해졌던 건 아닐까.


나의 일상이 별볼일 없이 늘 같아 보여도, 거기에 이름을 붙이면 애정이 샘솟는 걸 느낀다. 설거지를 하는 싱크대 장소는 지겹기 짝이 없는 반복의 노동장소지만, 나는 거기를 ‘그릇샤워실’이 아닌 ‘화살기도처’로 부른다.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이나 가족을 위해 짧게 기도하는 처소라는 뜻이다.


사소한 기쁨 패치는 삶의 곳곳에 붙일 수 있는 작은 스티커 같다. 마음이 무너질 때마다 그 스티커를 꺼내 붙이면, 금세 표면이 반짝거린다. 앤이 세상에 붙여놓은 이름들이 그녀의 마음을 빛나게 했듯, 나 역시 내 이름 속 ‘e’처럼, 작지만 확실한 기쁨의 패치를 덧붙이며 산다.


엄마라는 이름의 계정 안에도, 내 기쁨을 기록하는 패치 로그가 필요하다. 사소한 기쁨 하나하나가 모이면, 그것만으로도 나의 하루가 반짝인다. 결국, 내 인생의 OS를 업데이트하는 건, 이런 작은 기쁨들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설거지하며,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며 작은 패치를 하나 붙인다. 별거 아닐 수 있지만, 이렇게 붙인 패치들이 모여 내 하루를 조금 더 나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득, 앤처럼 나만의 이름으로 세상을 불러주는 순간, 내 마음도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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