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처음 배운 환대의 냄새
아버지는 생사조차 알 수 없는 할머니와 여동생을 떠올릴 겨를도 없었다. 그는 수용소 천막 밑바닥에서 잠들고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하루하루는 단지 '버티는 일'뿐이었다. 그 천막 안은 늘 눅눅했고, 좁고 눅눅한 천막 안, 파리떼가 윙윙거렸다. 흙냄새, 음식찌꺼기, 땀의 냄새가 뒤섞여 숨 쉬는 일조차 고역이었다. 갈 곳이 없었고, 알아들을 수 없는 미군들의 말소리 사이에서, 심부름이 그의 하루를 채웠다.
"그게 내 살 길이었으니까."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그날, 그는 짐을 처음 만났다. 미군들은 트럭을 닦고, 캔에 든 음식을 나눠먹었으며, 그 옆에는 하얗고 깨끗한 개 한 마리가 있었다. 같은 공간인데, 전혀 다른 세상 같았다. 아이들이 다가가면 대부분 손짓으로 밀어내거나 욕을 했지만, 그 사람은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 속에서 아버지는, 생전 처음으로 달콤한 초콜릿 한 조각을 받았다.
"그걸 입에 넣는 순간, 햐! 세상에 이런 맛이 있을 수 있나 싶더라."
그날 이후, 세상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천막 안의 습기와 냄새, 전쟁과 배고픔 사이에서, 그 달콤함은 소년의 온몸을 단번에 깨운 작은 기적이었다. 그 한 조각으로 세상을 다 얻은 듯 들떴을 아버지를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낯선 언어와 냄새 사이에서, 처음으로 초콜릿을 쥔 열두 살의 소년이라니!
그날 이후 아버지는 짐이 있는 구역 근처를 자주 맴돌았다.
"Water, please. Bring this."
영어는 몰랐지만, 몸이 먼저 반응해 그의 필요를 채웠다. 그러면 어김없이 빵 한 조각이나 크래커, 껌 등을 얻었다. 처음 보는 맛의 세계에 빠져들듯, 아버지는 그 맛을 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짐과의 만남이 이어졌다. 아버지는 그를 '미스터 짐' (개인적으로는 '엉클 짐'이라고 했다) 이라고 불렀다. 푸른 눈, 짙은 갈색 머리. 거칠지만 다정한 얼굴이었다. 다른 미군들이 아이들을 거칠게 밀쳐낼 때도, 짐은 늘 "No, no. Easy."하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이'가 아닌 '영수'라 불러주던 그 순간, 아버지는 처음으로 자신이 한 사람으로 불린다는 걸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짐이 아버지에게 다가왔다. 군용 재킷을 조심스레 그의 어깨 위에 덮으며 말했다. "Tomorrow, help me. okay?"
아버지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무 아이나 불러 심부름을 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그가 자신을 콕 집은 것이다. 그 순간, 아버지는 정말 '살았다'고 느꼈다. 그때의 전율과 안도감이 지금까지도 그의 몸속 깊은 곳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이제 아버지는 천막 안팎에서 짐을 돕는 일을 더 적극적으로 하며, 그 구역의 작은 일들을 책임졌다. 물통을 나르고, 바닥을 청소하며, 낯선 언어를 몸으로 배우고, 작은 손길 하나에도 정성을 다했다. 그 모든 순간이 소년에게는 '살아 있음'의 증거였고, 세상 어디엔가 자신을 기억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희망이 되었다.
아버지는 곧 짐에게서 영어를 배웠다. ‘Water, clean up, good job.’ 사소해 보이던 단어들이 그를 살게 한 언어였다. 그는 종이에 어설픈 철자를 적고, 밤마다 천막 구석에서 그것을 되뇌웠다. 꼬깃꼬깃해진 종이는 마치 생명처럼 그의 손에 쥐어 있었을 것이고, 다음 날이면 짐은 "youngsoo, Good! You smart boy." 라며 머리를 쓰다듬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내 표정을 읽고는 함께 웃었다. "웃음이 날만도 하지. 그게 내 잡이었으니. 미스터 짐한테 잘 보이고 싶었거든."
햇살이 천막 안으로 뜨겁게 내리쬐던 여름이 지나 늦가을이 되자, 공기는 서늘해졌다. 아버지는 다가오는 겨울을 걱정했다. 전쟁이 길어지자 일부는 미군 부대나 피난민촌 근처로 흩어졌다. 식량 배급도 끊겼고, 좁은 공간엔 질병이 돌았다. 어딘가로 떠나야 했던 열두 살 소년에게 짐은 유일한 '집'이자 안식처였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본격적으로 하우스보이 일을 시작했다. 그 작은 방에서 그는 하루에도 열 번씩 ‘살아 있다’는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빨래, 청소, 어설픈 통역까지. 그에겐 그 모든 게 최고의 일이었다.
짐은 스무세 살이었다. 늘 결혼반지를 끼고 있었다고 했다. 밤이면 'Martha'라고 적힌 봉투에 편지를 쓰곤 했다. 그제야 아버지는, 짐에게도 돌아갈 가족이 있음을 느꼈다. 어느 날은 그림을 그려보라 했는데, "그릴 게 없어 짐을 그렸지. 눈을 감고 고향 생각을 하는 것 같았거든. 아내 마따를 생각했겠지." 짐은 그 그림을 무척 좋아했고, 나중엔 편지와 함께 부쳤다고 했다. 나는 조용히 '마따~'라는 이름을 불러보았다. 어딘가 따뜻하고, 짐과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그는 휴대용 라디오도 그때 처음 보았다. 'Motorola'라 적힌 작은 라디오에선 늘 사람의 목소리와 음악이 흘러나왔다. "짐은 노래듣는 걸 좋아했어. 'Music. For peace.'라며 그 짧은 문장을 흥얼거리듯 중얼댔지. 그때만큼은 전쟁 속에서도 짐의 얼굴이 평화로 빛났어." 아버지는 Nat King Cole의 '모나리자'를 나직하게 불렀다.
"Mona Lisa, Mona Lisa, men have named you..."
강의에서 '전쟁 속에서도 예술이 인간을 사람답게 만드는가' 를 가지고 토론한 적이 있었다. 나의 답은 분명했다. 예술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짐에게 음악은 총보다 강한 위로였을 것이다. 피와 연기가 가득한 세상에서, 인간을 잊지 않으려는 마지막 다리였을지도.
"전쟁 속에서도 그의 눈빛엔 고향의 불빛이 어려 있었어. 가사는 몰라도,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오면 미군들이 다 따라 부르더라. 그때 느꼈지, 사람 사는 건 다 같구나."
한겨울이 다가오자, 밤마다 모닥불 옆에 앉아 짐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담배 연기가 바람에 흩날리는 동안, 그들은 말없이 서로를 지켜보았다. 침묵 속에서 오가는 시선과 작은 손짓이, 전쟁 속에서도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짐이 미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이 들렸다. 전쟁은 모두에게 상처였지만, 짐은 돌아갈 곳이 있었고 아버지는 없었다. 그 말이, 내 일처럼 아팠다.
"그가 나를 붙들고 말했어. 여긴 안 된다고. 내 또래 아이들 시체가 트럭으로 쌓이는 걸 봤거든. 그땐 흔한 일이었지. 난 안 죽는다고, 괜찮다고 했는데, 그 날은 달랐어. 'Come with me. I'll take care of you.' 그러면서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나를 보는거야. 무슨 뜻인지 알았지만, 따라갈 수 없었다." 그가 떠난 자리엔 바람만 남았다. 그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아버지는 여전히 짐의 냄새를 맡았다.
"아버지, 왜 못갔어요? 마음은 가고 싶었을텐데."
아버지는 잠시 침묵했다. 아마 할머니와 여동생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도 아버지를 애타게 찾고 있을까봐, 그 길을 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잠시 후, 아버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Just in case, If you come to America...call here.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뭘 꺼내 내 손에 쥐어주더라고. 보니까 자기 이름하고 집 주소가 쓰여 있었어. 옆엔 별표까지 쳐놓고, 아주 중요하다는 듯이."
그 이후로 짐을 다시 보지 못했다고 했다. 대신 그 쪽지는 평생 아버지 곁에 남았다.
"지금도 짐이 썼던 군용 비누 냄새가 길을 가다 문득 스치지. 'Good job.' 'Eat.' 그 목소리도 가끔 들리는 것 같아."
아버지에게 짐은 어떤 존재였을까. 세상의 모든 끈이 끊어진 낭떠러지에서도, 그래도 삶은 살 만한 것임을 알려준 사람. 그 종이를 손에 쥔 순간, 아버지는 세상 어디엔가 자신을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믿었을 것이다. 그 주소 한 장이, 아버지에게는 마지막 희망이었고, 지금은 나에게로 이어진 끈이었다. 그 끈이 내 안에서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