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아버지의 시절

'하우스보이'가 되다

by 리앤

아버지는 평양 근처, 황해도 진남포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가 들려준 할머니 이야기는 언제나 비슷했다. 시집오기 전엔 땅도 많고 집도 큰 부잣집 외동딸이었는데, 막상 시집을 와보니 사정이 달랐다고 했다. 시댁에는 부모와 딸린 동생들이 줄줄이 있었고, 부엌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좁은 솥방엔 아무것도 없었다.


"냄비 하나가 덜렁 있길래 다행이다 싶었더니, 잠시 후 옆집 아줌마가 '빌려간 냄비 찾으러 왔어요' 하더래." 그 얘기를 아버지는 어릴 적 할머니한테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날 이후, 두 번 다시 빈 부엌을 그냥 두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손이 부지런한 여인이 되었다. 고된 살림 속에서도 아이를 낳고, 살림을 다시 일구며 버텼다. 겨울이면 닭이나 돼지, 때로는 멸치나 북어를 넣고 끓인 국물에 동치미국을 한사발 붓고, 삶은 면을 휘휘 저어 먹었다. 할머니는 그것을 ‘평양식’이라 불렀다. 아버지는 ‘평양냉면’이라 했다. 어디에서도 그 맛을 내는 집은 없다고 하면서도, 그는 늘 냉면집을 찾았다.


“평양냉면 먹으러 가자.” 그 말은 아마 고향의 기억을 불러내는 주문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 말을 할 때마다 조금은 어린 소년 같았다. 고향의 냄새는 그렇게, 한 그릇의 냉면 속에 숨어 있었다.


전쟁은 너무 빨리 닥쳤다. 그리고 누구도 길어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잠시일 거라며 어른들이 수군거렸고, 열두 살의 아버지도 그 말을 믿었다. 그러나 상황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며칠 만에 폭격과 징집, 보복이 이어졌고, 황해도의 마을은 잿더미가 되었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전장으로 나갔고, 홀로 남은 어머니(나에게는 할머니)는 두 아이를 데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인파 속에서 몇 번이나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다. 아버지는 열병이 난 동생을 업고 오래 걸었다고 했다. “죽은 줄도 몰랐지. 그저 살려고 걸었어. 같이 살려고.” 그 말을 할때마다, 나는 나를 업고 다니던 아버지의 등을 떠올렸다. 이제는 왜소해져버린 등이지만, 그 등에는 한 세대를 버틴 무게가 남아 있었다.


인천으로 향하는 항구는 이미 인파로 넘쳐났다.

사람들은 "남으로 가야 산다"며 미군 배로 몰려들었다. 아버지는 앞서 밀려 들어가고, 할머니는 여동생 손을 잡고 오다가 어느틈에 사라졌다. 할머니는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찾아 헤맸고, 아버지는 작은 짐보따리를 끌어안고 사람들틈에 불안하게 서 있었다. “Stay back, kid!” 미군의 손에 떠밀려 아버지는 배에 올랐다. 손끝의 체온이 식기도 전에, 그는 할머니의 시선마저 놓쳤다. “가지 마!” 아버지의 절규는 바다 위로 흩어졌다. 그날, 그는 결국 손을 놓쳤다.


바다는 비릿했고, 사람 냄새가 뒤섞였다. 토사물과 오줌 냄새가 섞인 그곳에서 사람들은 서로 기대어 잠들었다. 멀미는 이틀 동안 이어졌다. 누군가가 주먹밥을 돌렸다. 그걸 받은 손이 떨렸다.


“이리 큰 밥뭉치 안에 짭짤한 새우젖이 들어 있더라고. 어찌나 맛있던지.”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두 손을 모아 밥을 쥐는 흉내를 내며, 마치 그때로 돌아간 사람 같았다.


"그땐 정말, 그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이었어." 그는 웃었지만, 금세 눈가가 젖었다. 그 밥 한 덩이는, 살아남았다는 실감이자, 잃어버린 것들을 대신해준 위안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맛 하나가 아버지를 지금까지 버티게 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아버지를 바라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만이 따뜻했고, 그것만이 현실이었으니까.


그날의 바다는 바람보다 울음소리가 더 세찼을 것이다. 살아남았다는 안도의 울음, 가족을 잃은 절규, 배를 타지 못한 이를 부르는 통곡. 그 모든 울음이 바다에 뒤섞여 있었다.


배는 인천항에 닿았다. 단단한 땅을 밟았지만, 그 단단함이 오히려 두려웠다. 생각보다 이곳의 상황도 가히 좋지 않았다. 길 위에는 시신이 끊임없이 쌓였고, 트럭은 부상병과 짐을 실어 나르다 폭격을 맞아 아수라장이 되었다.

항구 근처 임시 수용소에서 지내며, 아버지는 엄마와 여동생을 끝내 찾지 못했다. 전쟁의 참혹함만이 눈앞에 펼쳐졌다. 처음엔 두 눈을 가렸지만, 그런 일은 너무 흔해져서 나중엔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아버지 또래의 죽은 소년과 소녀들이 날마다 쌓여갔고, 묻을 여력조차 없어 길가에 나뒹구는 시신들을 그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죽음은 사방에 있었다.


그런 하루들이 쌓여 어느 날, 한 미군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Hey, you. What’s your name?” 아버지는 때 묻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 미군은 자신을 “제임스 바넷”이라 소개하며, 편하게 “짐”이라 부르라고 했다. 그가 처음 건넨 건 군용 비누 하나와 초콜릿 한 조각이었다. 그것이 아버지가 남쪽에서 처음 받은 친절이었다.


그렇게 전쟁은 끝났지만, 아버지에게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내가 미국 연수를 떠나기 한 해 전, 아버지와 나란히 밥상머리에 앉았다. 콩나물국을 한 숟갈 뜨며, 그는 여전히 몸 어딘가에 전쟁의 잔해를 품은 얼굴로 밥을 씹었다. 또 전쟁 이야기였다. 이제 그에게 고통은 마치 몸의 일부처럼 붙어 있었다. 나는 밥을 삼키며 아버지의 이마 주름에 손을 얹었다. 깊게 새겨진 주름은 오래된 골짜기 같았다. 그 골은 오래전 바다의 물결이 다녀간 자국이기도 했다. 살기 위해 악착같이 매달려 들어간 큰 배의 바닥에서, 그날 이후 그의 얼굴에는 아주 느리게 주름이 자라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버지는 남한으로 와서 하우스보이가 되었다고 말하려는 거죠?” 수십 년째 들어온 이야기인데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런 전쟁 이야기 때문이다. 몸으로 전쟁을 지나온 사람으로서 말을 전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는 나. 이제 이런 생생한 기억은 나의 세대에서 끝날 것이다.


나는 그냥,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버지의 평범한 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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